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 김 명 호 ( 성공회 대학 교수)
저는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련하여 한국 사람들이 중국인을 보는 눈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편협하다는 사실에 곤혹스러워 한 적이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중국인들은 지저분하고 국제적인 적응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무시하기 시작한 것은 식민지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930년대 말 만주사변, 중일전쟁 시기에 당시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교육부 장관에 해당) 시오바라(鹽原)는 식민지 교육의 귀재로서 우리나라 각급 학교에 중국인을 매도하는 교육을 시켰습니다.
중국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1년에 목욕을 두 번만 할 정도로 더러운 민족이라는 것을 주입시킨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인에 대한 인상이 나빴던 것은 당시 중국에서 넘어온 화교가 19세기 산동지역 민란에서 도망 나온 농민 출신으로서 대부분 교육 혜택을 못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역사적으로 일찍 개방시대를 거쳤습니다.
1958년 모택동이 모스크바를 방문하였을 당시 모스크바에는 6천명이나 되는 중국 유학생이 나와 있었으며
1979년 발행된 " 독서(讀書)" 라는 잡지는 120만부나 팔렸는데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주창하고 있었습니다.
내년이면 미국 닉슨의 중국 방문 40주년이 되는데 근 40년 전 1970년대에 중국은 문화대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고 제국주의 타파의 깃발이 휘날릴 때 키신저가 비밀리에 북경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보름 전에 당시 닉슨과 주은래의 연설문을 입수하여 읽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내용이 골자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이 소위 "주권"에 관하여 많은 신경을 썼던 것으로 보이는데 닉슨의 북경 방문시에도 주권 다툼이 치열했다고 합니다.
닉슨의 공군 1호기가 자국 영토를 비행하여 직접 북경까지 올 수는 없다고 주장하여 상해에서 중국 관헌 4명을 전용기에 탑승하여 북경까지 비행하는 것으로 절충을 보았고, 중국 내에서의 승용차도 미국제가 아닌 임표가 썼던 소련제 방탄 리무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자기 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유럽으로 유화를 배우러 간 사람도 나이가 들면 수묵화로 전향하고 칸트와 헤겔을 공부하던 사람도 공자와 장자 공부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르면 나쁜 사람이라고 매도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겉과 속이 같으면 동물이지 그것이 사람이냐고 할 정도 입니다.
우리는 중국인들이 대부분 좌파에 물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오히려 좌익풍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사유재산 제도는 중국이 세계에서 제일 빠를 것입니다.
중국의 좌익풍조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선포 이래 10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만 홍색 깃발이 나부꼈지 중국 사람들은 자기들은 원래 사회주의에 안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적 사회주의라고 하지만 중국식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의 자유주의 풍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뿌리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는 혈맹관계라고 하는데 우리는 한국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혈맹관계는 훨씬 전 8년간 치러진 중일전쟁 때 시작되었습니다. 중국인이 수백만명 죽었지만 우리 동포도 그 전쟁에서 많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청년 장군 임표의 20만 대군이 북한지역으로 쫓겨 왔을 때 북한 노동당이 먹여 살리지 않았으면 동북전쟁에서의 승리와 전 중국의 통일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김일성은 중국에 대하여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입니다.
며칠 전 중국에서 10 여년 생활을 한 삼성인이 그 동안 자기의 중국에 대한 관념은 모두 틀렸다고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만난 중국 사람들은 한사람이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보는데 자기들은 오히려 한국이 더 사회주의적이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연평도 사건도 그들은 남북한이 휴전중인데 그런 사건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그들의 동북공정도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라는 그들 나름대로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 사람들이 발해를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데 중국인은 잠시 정복한 로마를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식입니다. 조선족은 수많은 소수민족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외교에서도 능청을 잘 떱니다.
중국이 UN에 진출 할 당시 본국에서는 문화혁명이 진행 중이고 대사가 운전수와 같은 일당을 받을 정도 재정이 궁핍하던 시절, 교관화 대사는 아버지 부시와 만날 때도 복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교관화 대사는 각국 대사 부인을 만찬에 초대하는 것이 아니고 공원 산책을 하자고 하여 나중에 중국에서 좋은 장미 종자를 보내 준다고 약속을 하고 공원의 허락을 받아 장미꽃을 꺾어 한 송이 씩 대사 부인들에게 선물하여 인기를 끌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두서없이 중국에 대하여 몇 말씀 드렸는데 로마인 이야기를 출판한 한실사에서 저에게 "중국인 이야기"를 책으로 내자고 하여 그 동안 신문에 연재했던 것을 엮어 출판할 계획이니 그 책을 참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글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17회 포럼에서 김명호 교수가 강의한 내용입니다. 심명기 동문이 요약한 것을 이곳에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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