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아우슈비츠(auschwitz)의 비극
한영구 실명입니다. 닉네임이 아닙니다
2008. 12. 9. 02:49
- 아우슈비츠(auschwitz)의 비극
2002년 9월28일 아침 약간 음산한 날씨, 벌판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는 차별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수용소 안으로 들어서자 많은 학생들이 눈에 들어온다. 유태인 고등학생이라고 한다. 얼굴이 굳어진다. 유럽각지에서 나치들이 잡아온 유태인을 수용한 건물들이 꽤 많아 보인다. 3층(지하 1층)으로 된 붉은 벽돌집은 수용소치고는 잘 지은 건물 같았다. 그러나 전시관에 들어서는 순간 비참의 연속이다. 너무 비참한 사진의 연속이다. 죽은 유태인 머리카락을 모아놓은 곳, 그 머리카락으로 직조한 천을 보았을 때 인간의 잔인성의 극한에 몸서리가 쳐진다. 생체실험으로 희생된 어린아이 들, 성기가 잘려나간 사람, 각종 장애인들, 4명이 들어가서 서 있기만 했던 벌방, 가스 살인 실, 화장기구, 교수형 틀, 총살장소 등에서 인간의 무자비한 악마성을 엿볼 수 있었다. 가슴이 싸느랗게 식는다. 온갖 방법으로 인간을 괴롭히다 목숨을 빼앗았다. 150만명 정도가 비참하게 죽어 갔다. 잔인의 극치 전시장이다. 아침 몽둥이로 수용자들을 깨우면 좁은 대야에 수십 명이 모여 들어 세수를 하고 악대의 연주에 발맞추어 일터로 간다. 5인 1조로 일을 하다가 한 명이 쓰러지면 돌아갈 때 끌고 간다. 저녁에 수용소로 돌아오면 소고기 스프 한 그릇을 먹고 잠든다. 피골이 상접한 그들의 사진을 보면서 극한 상황의 연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니 인간의 생명역시 독하고 고귀하다. 불과 지금으로부터 5~6십년 전에 벌어진 일이다. 총, 독가스, 약물 등으로 인간을 살육하면 세계를 점령할 수 있다는 엄청난 착각 속에서 저질러진 히틀러, 게르만 민족의 만행이다. 전쟁은 적군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으니까 살육의 정당성이 보이 지만 아우슈비츠는 그게 아니다. 인간의 진화과정에 이처럼 인간에 잠재한 최악의 악마성, 잔인성이 표출되어야만 하는가? 그래야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깨달을 수 있는가? 경험주의,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인간을 지배하는 철칙인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을 극렬한 표현을 동원해가며 반대했던 글을 썼던 것이 아우슈비츠 관광에서 얻은 충격 때문이었을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인정되는 지금에 살고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 이다. 그러나 사랑의 실천으로 전쟁을 막고 빈곤을 퇴치하고 장애인의 고충을 덜어주는 선지자들 반열에 끼지 못하는 내가 부끄 럽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모습
굶주림속에서 죽어간 유태인들 아우슈비츠 수용소 모습 아우슈비츠 수용소 모습 아우슈비츠 수용소 모습 아우슈비츠 안내비문 유대인 사형수의 머리털 죽어간이들의 신발 굶어 죽어가는 유태인 조각상
총살 집행 장소 유대인들의 잠자는 곳 감시초소 가스 살인 샤워실
화장을 자행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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