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기

일본 시코쿠 카가와현 젠쓰지 절(善通寺)

한영구 실명입니다. 닉네임이 아닙니다 2007. 4. 17. 10:08
 일본 시코쿠 카가와현 젠쓰지 절(善通寺)
세또대교에서 남쪽으로 차로 이동하여 마루카메 시 남쪽에 있는 젠쓰지 절(善通寺-790년대 
건립)로 들어갔다.약 23만평방미터(약 7,600평)평지에 자리 잡은 절로 일본 불교 진언종
(眞言宗)의 창시자 고보다이시(弘法大師 -空海 구카이 774~835)가 창건한 절이다. 이곳이 
그의 고향이므로 젠쓰지는 총본산 절이며 교토의 교오코쿠지(敎王護國寺-796년 건립), 
고야산(高夜山)의 금강봉사(金剛峰寺)와 함께 고보다이시의 3대 신령스러운 터로 꼽힌다.
동쪽에는 금당(金堂)을 중심으로 상행당(常行堂), 오중탑(목조건물), 명신오사(明神五社), 
삼제왕묘(三帝王廟) 등이 있고, 서쪽에는 어영당(御影堂), 성령전(聖靈殿), 지장당(地藏堂), 
표서원(表書院), 본방(本坊) 등이 있다.
일본 불교는 천태종(天台宗)과 진언종(眞言宗)으로 크게 나뉜다. 나라시대(겐메이왕 元明天
王의 나라-奈良 천도이후 70여년,710~780년)에는 불교가 국가의 보호로 크게 융성하였으
나 794년 간무 왕(桓武天王)의 헤이안쿄(平安京:京都)천도 이후에는 사원세력의 비대화를 
경계하여 불교에 대하여 통제정책을 폈다. 헤이안 시대이후 절들이 산으로 들어갔으며, 산
신이나 민간 신앙과 결합하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불교에 새로운 경향이 일어났다. 덴다이시(傳敎大師) 사이쪼(最澄)는 도다
이지에서 수계한 뒤 불교의 성지인 히에이잔에서  수행하여 명망이 높았다. 그는 천태종의
경전을 구하기위하여 당나라로 파견되는 사신들과 함께 당나라에 들어가 다음해에 귀국하
여 일본 천태종의 사조가 되었다.
고보다이시(弘法大師)는 사이쪼(最澄)와 함께 당나라로 들어가 1년 늦게 귀국하여 일본 진
언종의 창시자가 되었다.
진언종은 기도를 중시하는 밀교로서, 국가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종교, 개인에게 복을 가
져다는 주는 종교를 강조함으로써 귀족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에 반해 천태종은 법화경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철리적 교파로서 불성의 평등성을 인정하여 노비들의 성불을 인정함
으로써 기존의 교파들과 대립하였다. 그러나 이후 사이쪼의 제자들인 엔닌(圓仁)과 엔진(圓
珍)은 밀교적 경향을 받아들여 이때부터 진언종을 동밀(東密), 천태종을 태밀(台密)이라 부
르게 되었다.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인 충북 단양에 있는 구인사를 구경한 적이 있다. 역시 법화경(妙
法蓮華經)을 근본 경전으로 하는 것은 일본 천태종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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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투바 - 본래는 화장묘이나 불교에서 예배의 대상이나 봉헌의 상징으로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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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를 본존부처로 모신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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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건너편 산에 신사가 있다.

오래된 절이지만 지붕은 현대식 기와로 교체 되었다. 단청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와 다르
다. 본방(本坊)은 본당, 우리의 대웅전에 해당하는 데 이상하게도 본존불(本尊佛)이 석가모 
니가 아니고 약사여래다. 내부를 들여다보았는데 약사여래 한 분만 모셨다. 
젠쓰지 절에서 매년 2월 하순 밤에 알몸축제가 벌어진다. 1,000여명이 넘는 훈도시만 찬 알몸
의 남자들이 한해의 복을 비는 의미에서 자웅 2개의 보목(寶木)을 서로 빼앗는 거대한 축제
가 절 경내에서 이루어진다. 구경꾼과 참가자 모두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는 4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계절의 축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