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기

일본 미야지마섬(宮島)의 이츠쿠시마(嚴島)신사(神社)

한영구 실명입니다. 닉네임이 아닙니다 2007. 5. 1. 10:13

일본 미야지마섬(宮島)의 이츠쿠시마(嚴島)신사(神社)
이츠쿠시마 신사가 있는 미야지마섬은 육지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섬의 미센산이 530m
이므로 오전에는 산 그림자에 가려져서, 오후나 석양의 경치가 아름답다.  그래서 우리도 
오후 4시경에 관람을 시작했으나 구름이낀 흐린 날씨에다 오도리이(大鳥居)가 물에 잠기지 
않아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없었다.
허전한 마음에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여 반가운 글을 발견했다. 국민대학교 실내디자인과 교
수이며 동국대학교대학원 선학과 박사학위를 받았고, 교회와 법당을 건축한 경력이 있는 김
개천(58년생) 교수가 하룻밤을 묵으며 쓴 “이츠쿠시마 신사 - 태양의 환영”을 이곳에 전재
를 한다. 글에 전혀 사진이 없어 나의 사진을 넣었으므로 이해에 도움을 주리라 기대한다. 상
업목적이 아니므로 김개천 교수도 양해주시기를 바란다.여행에 참가하신 동문은 물론 일본에
관한 지식을 얻기를 바라는 모든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일본 삼경(三景)의 하나이며 유네스코지정(1996년)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이곳을 불과 몇시
간 구경으로 아름다움의 모두를 감상하려는 우리일행의 욕심이 무리였나 보다. 등록된 신사
가 8만7천개, 비등록까지 합치면 10만여개는 될 것이라고 한다. 목석같은 것에도 영혼이 있다
고 생각하는 신앙(animism-精靈信仰)의 대표적 상징인 이곳 오도리를 보고 신사가 어떤것이라
고 정의를 내려보려는 나의 의도도 모험이라고 여겨진다.

블로그 > 딸과 함께하는 건축기행 http://blog.naver.com/leecorb/120026989629

이츠쿠시마 신사 - 태양의 환영  
글 : 김개천 
자연과 인공의 동시적 형태


히로시마 만에서 미야지마행 배를 타고 10여 분 정도 드러가면 영기 서린 땅으로 여겨져온 미야지마 섬이 자리하고 있다. 신성함을 부여받은 사물은 특별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평지가 거의 없는 이 섬은 간직한 천연 그대로의 원시림은 자연 속에서 축복을 받은 듯 생생한 시원함을 느끼게하고 섬을 돌며 불어오는 미풍은 신의 숨결인 듯 따사로이 속계의 인간을 맞이한다.섬 한켠에는 해발530미터의 미센 산을 뒤로 하고 섬의 일부와도 같이 해안선을 따라 스며들듯 바다 위에 자리하고있는 이츠쿠시마 신사가 있다. 인간의 거주를 허락하지 않은 신성한 섬이었기에 바다와 섬의 경계 지점인 갯벌 위에 신사를 세웠다. 교조도 경전도 없는 원시적 애니미즘이 그대로 이어진 섬에 대한 숭배는 단지 신성한 자연에 대한 샤머니즘적 행위에 불과했다. 스이코 천왕 원년인 593년 사에키 구라모토에 의해 용궁을 형상화한 신사가 창건되면서 비로소 이곳은 인간의 격식이 깃든 세련된 양식의 종교적 옷을 입고 새로운 권위를 가진 곳으로 재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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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6년 헤이안 시대 말기 천황의 외조부이자 최고의 권력자이던 타이라노 기요모리가 이츠쿠시마가 있는 아키 지방의 수령으로 부임한다. 그가 부임하자 유력 가문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1168년에는 교토의 황족과 귀족들의 기부가 잇따랐고 기존 건물에서 본사 37동의 내부 건물과 19동의 외부 건물들을 거느린 신사 단지가 수년에 걸쳐 증축된다.11세기의 일본은 토지 국유제도와 공지공민 제도가 파기되고 귀족과 사원의 대 사유지인 장원의 발달로 중앙 귀족과 지방 호족세력인 무가의 대립과 교류가 활발히 이어진다. 교토 귀족문화는 지방으로 보급되고 대표적 무사 가문이던 겐지와 헤이시 가문은 신장된 세력을 바탕으로 중앙귀족의 교양에 뒤떨어지지 않고자 한다. 헤이시 가문의 기요모리는 이츠쿠시마 신사를 교토 천황궁 안에 있는 건물들과 같은 양식과 수준으로 성대하가 재흥시킨다. 개혁적 성향의 그는 바다에도 눈을 돌려 일본 최초의 수군인 무라카미 수군을 창시하고 처음으로 해상권을 도입한다. 신사의 건설과 함께 바다로 향하는 첫 걸음을 상징하는 신사 앞의 거대한 주홍색 오오토리이는 마치 쇼군처럼 그의 위상을 당당히 대변하는 규모로 푸른 바다 위에 떠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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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토리이(大鳥居)에 현판이 달려있다.양쪽에 다 달려있어 어느쪽이 정면인지?
오오토리이는 헤이안 시대부터 8대에 걸쳐 지어졌고 지금의 것은 메이지 8년(1875년)에 완성되었다. 거대한 기둥은 1874년에서 1875년 사이 큐슈와 시코쿠의 숲에서 베어낸 높이 16미터에 둘레가 약 10미터인 한 그루의 녹나무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나무의 표면 위에 붉은 칠을 하였다. 추상이나 상징대신 자연을 있는 그대로 차용해 마치 자연 스스로 창조한 것 같아 더욱 신성하게 느껴지고 더 큰 움직임으로 다가온다. 인위적인 하늘 천(天)자 형태를 띠는 문의 구획과 천연의 나무는 구조적인 조화를 이루며 신성한 기까지 뿜어낸다. 마치 자연의 영속적인 본질을 가지게 된 듯한 새로운 리얼리티다.자연 그대로의 거친 기둥 위에는 대조적으로 하늘을 벨 듯한 검과도 같이 정교하고 날렵한 지붕이 설치되어 토리이의 무게감을 하늘로 날려 보낸다. 야성적인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섬세한 인공 지붕은 본관 건물 전체에 사용된 히와다부키라는 나무껍질 소재의 뱃집지붕이다. 일견 소박한 듯 하지만 금속판 위에 목재 널을 겹쳐 쌓아 의외로 정교하면서도 예리한 지붕 선을 이루고 있다. 자연과 인공의 동시적이고 이중적인 형식으로 인해 오오토리이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미지의 힘을 드러내며 확정적 형태감을 거부한 채 하나의 이미지로만 눈앞에 존재한다.오오토리이를 신사 본당과 200여 미터 떨어진 바다 위에 배치함으로써 신사 건물은 멀리서는 작게 보이면서 산 전체와 함께 눈에 들어온다. 바다와 섬의 지형을 관계 짓고 확대시켜 섬 전체를 신사로 만들면서 바다를 신사의 열린 장으로 불러들인다. 인간은 그 안에서 용궁의 신을 맞는다. 파란 수면 위 진홍색으로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문은 썰물이 되자 물기가 걷힌 자신의 몸체를 드러낸다. 이로써 강한 대비감은 줄어들고 땅을 딛고 서 있는 육중한 무게를 지닌 지상의 문으로 변모한다. 오오토리이는 자신을 좀더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걸어서 다가오라고 길을 열어 맞이한다.

단순함 저편의 화려함
 
12세기 말경 기요모리의 권력이 확장되는 것에 위기를 느낀 겐지 가문의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위상을 떨치던 그를 몰락시키게 되는데 이후 가마쿠라의 지배세력으로 이어지는 겐지 가문 역시 교차하는 권력의 와중에서 이곳의 신성한 분위기에 압도된다.비록 이 곳이 기요모리에 의한 건축일지라도 그들의 권위를 연결시킨 신사의 위상은 흔들림 없이 유지되었다. 정작 신사에 누를 끼치게 된 것은 두 차례의 화재와 가마쿠라 시대의 잦은 내전이었지만 전체적 배치는 처음 모습 그대로 유지되었고 1325년의 거대한 태풍으로 반 이상이 훼손된 뒤에 다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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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대
코우지 원년인 1555년 이츠쿠시마 전투에서 승리한 모리 모토나리는 고상한 권력의 원천이었던 이곳에 애착을 갖고 내전으로 방치되어 있던 신사를 다시 부흥시키기로 마음먹는다. 사운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였고 건물들은 1571년 재건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승자의 권력과 종교적 권위의 미학은 이곳에 예술적 심취를 더하였다. 심미적이었던 모리 모토나리는 신사의 노(일본의 전통 가면 무극) 전용극장을 세운다. 세월 속에 빛이 바랜 노의 무대는 진홍색 기둥들로 이루어진 다른 건물들에 비해 마치 말은 없어도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한 노처럼 신비하다. 소리와 세월이 던져주는 시공간의 환영 같은 이 극장은 해상에 세워짐으로써 통상 노 무대의 마루 밑에 설치하는 공명판이 없다. 대신 마루가 한 장의 판으로 되어 있어 북의 가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집이 악기가 되어 공연을 할 때는  배우들의 발장단이 크게 공명하며 곳곳으로 울려 퍼진다. 조수가 가득 차면 그 영향으로 음색이 바뀌기도 하여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깊어지는 긴장감 속에 전란의 와중에 수없이 겪었을 삶과 죽음의 경계는 종교적 의식과 더불어 더욱 희미해진다.전체적인 단순함과 더불어 부분적으로는 치밀할 정도의 섬세함과 화려함을 갖춘 일본미의 특징은 노의 표현 양식 속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동작들은 정적이면서도 단절적이며 그 하나하나가 완결된 구조를 가지는 동시에 다음 동작과 연결된다. 단소한 동작의 배후에는 많은 함축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의도된 모든 표현 방식은 눈에 보이는 형식미이며 표현의 절제속에 내재되는 긴장의 힘은 또다른 형식의 에너지이다.

대비 속 변화와 정지를 갖는 일본 미학 
신사 건물의 배치와 구조 또한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상에서 건물이 아닌 108칸 회랑의 비어 있는 구조로만 존재한다. 평면의 체계는 비대칭이나 공간의 체계는 대칭적 질서로 보이는 신사는 하루에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드는 환경의 변화로 두 가지의 모습을 갖는다. 두드러진 진홍색 회랑은 대칭적인 전체 구조와 함께 노처럼 도식적이며 의도적으로 보이게도 하지만 자연을 능동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가변성을 지닌 모습으로 자신을 확장하고 균형 잡힌 결정체로 자연을 포용한다.조수의 차이는 육지의 신전을 바다 속의 신전으로도 변모시킨다. 만조가 되자 신전은 시적인 마술을 부린 듯 모든 건물 군들을 바다의 풍요로운 환영 속으로 확장시켜 놓는다. 해면에 비치는 기둥들은 가볍게 흔들리며 살아 있는 해상부전으로 부유한다. 밤이 되어 회랑에 등이 걸리면 빛의 음영이 더해지고 신사는 신성한 섬과 더욱 하나로 채화되는 빛의 수묵화가 된다. 썰물이 바닥을 노출시키며 환영의 대상물들을 쓸어낸 후에도 건물은 여전히 화려한 듯 물기를 머금어 아름답다. 자연조건의 변화가 건물 스스로의 자발적 움직임이 없어도 조수 차에 의한 시간성의 상반된 이미지를 가짐으로 대비 속의 변화와 정지를 동시에 갖는 일본 미학의 이중구도를 절묘하게 표현해내고 있다.하얗고 풍성한 윗도리에 직선의 주름이 곧게 잡힌 빨간 하카마를 입은 '미코'라는 여신관이 회랑으로 걸어간다. 미코를 따라 일렬로 늘어선 붉은 기둥들은 마치 태양신의 힘과 에너지를 보는 듯 붉은 빛을 사방으로 내뿜으나 단색으로 고요하다.오오토리이의 뒤편 신사의 중심인 신전은 영원과 현재를 융합하려는 듯 건물을 전후 두 동으로 나누어 구별하였으니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신의 건물은 인간의 건물로 내려온 듯 합쳐져있으나 저 멀리 자리잡고 있다. 천상의 세계는 엄격히 분리되어 있는 동시에 지상으로 연결된 것이다. 두 건물 사이 회랑으로 스며든 햇빛으로 건축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피상적이며 환영 너머의 환영처럼 존재한다. 배례객은 멀고도 가까운 신의 세계에 밧줄을 흔들어 방울 소리를 내고 손뼉을 친다. 저 너머의 신에게 자신이 왔음을 알리고 머리를 숙인다. 신은 드러내지 않으나 신비스럽다. 그러나 그들은 더 광대하게 홀연히 사라지고자 하지 않고 이곳에 자리하여 자신의 본업을 다한다. 여전히 인간 삶의 연장선상에서 존재가치를 부여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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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담는 정지 이전의 움직임
 
진홍색으로 드러내는 뚜렷한 빛의 존재와 물 위의 환영과도 같은 신사의 정취는 하나의 물체이나 섬세한 인공미와 자연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자연과 인공이 결합된 이중적 미의 구도는 동아시아 3국의 공통적 특징이었다.중국은 자연과 인공을 합하여 모든 화려함과 크기를 다 가지려 하였다. 절제되어 보이지는 않으나 미적으로 과장되거나 지나치지는 않았다. 화려함 속에 문식으로 녹아든 절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선은 인위적 형식이 표현됨에 있어서 그 인위성과 자연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깊이 있는 예술적 표현으로 보았다. 그림자와 같이 드러내지 않는 형식일수록 깊은 내재성과 지극한 자연스러움을 함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이중적 미는 양편이 함께 있으면서 섞이듯 조화를 이루게 한다. 불일치의 유착에 의해 탄생되는 양가적 미는 극단의 긴장감과 정지된 듯 움직임을 동시에 만드러낸다. 정지속의 움직임은 정지만도, 움직임만도 아니다. 힘의 동력할 속에서 형태를 넘어 정지 이전과 움직임 이후까지 관조하게 하는 정적인 평화이다. 대부분의 사무라이 초상화에서 보듯 사무라이는 오른속에는 귀족임을 상징하는 패를 들고 우아함을 드러낸다. 왼손에는 스스로에게도 엄정한 칼을 갖고 있다. 이처럼 눈에보이는 동시적이고 이중적인 구도에 안도한다. 보이지 않는 내재성은 이들이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강하고 날이 선 섞이지 않는 경계로 모든 것을 담고 각자의 크기로 이야기하며 합쳐질 때 그들의 정신은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이것은 서정적 아름다움의 기후와 풍토를 지닌 일본인에게 알맞은 평화로 그들의 삶 속에서 힘을 발휘하고 완벽한 미를 상정한다.숱한 전투를 통해 얻은 삶의 무상함에 대한 통찰, 그럼에도 자유롭고 정신적이고자 한 사무라이들이 이루어내는 힘의 발산 속 미적 향연은 해마다 7월 중순에 열리는 선상 마츠리인 미야지마간겐사이 축제를 빛내준다. 교토의 귀족들과 무사들 그리고 악사와 무희들이 탄 색색의 웅장한 선단이 해면에 비친 화톳불과 황혼빛에 반사되는 거대한 오오토리이를 통과한다. 그러면 신은 붉은 태양빛과 환영과 같은 건축을 통해 그들의 모든 기쁨을 온세상에 나누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