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여행기
앙코르 톰 4.쁘레아칸 사원
한영구 실명입니다. 닉네임이 아닙니다
2007. 12. 8. 15:24
쁘레아칸 사원
앙코르 톰 성곽외부로 나갔다. 쁘레아칸 사원을 보기로 했으나 걸음걸이가 불편한
노인분들을 고려하여 시간이 부족해서 잠깐만 보고 발길을 돌렸다. 아쉬워 자료를
수집하여 이곳에 올린다.
쁘레아칸 사원 입구의 문
역할).인도네시아 족쟈카르타에 있는 보로부드르 유적에 이 모양의 스투파와 앉아 있는 부처
의 조각상이 많았다. 보로부드르가 먼저 건축됨
* 바이욘사원 보다 불교적 색채가 강하다.
- 트래블 게릴라와 goangkor에서 인용
쁘레아 칸은 자야바르만이 그의 아버지를 위해 지은 사원이다. 동쪽은 왕이 출입하는 곳이라
신하들은 서쪽 출입구로 출입을 했는데, 사원의 중앙으로 갈수록 문의 높이가 낮아져서 머리
를 점점 숙이게끔 되어있다. 이것은 신성한 중앙 사원에 들어가고, 또 왕을 접견하기 위해
중앙 사원으로 들어갈 때는 복종의 의미로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4개의 큰 통로가 사원으로 연결되며, 경계에는 큰 뱀을 갖고 있는 거인과 신들을 조각하였다.
이는 앙코르 톰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건축구조는 왕궁에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사원은 1177년 참족을 물리친 후 왕궁을 새로 보수하는 동안 자야바르만 7세의 임시 왕궁
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쁘레아 칸은 따 쁘롬과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사원의
대부분이 매우 심하게 손상되어 있으며, 일부 복원된 것도 건축 구조상 매우 복잡하게 보인다.
1939년에 발견된 기록 문구에는 쁘리아 칸이 "나가라자야크리"의 고대도시였다고 한다.
"자야크리"라는 말은 태국말로 "신성한 검"이란 뜻으로 크메르어로는 쁘레아 칸이 된다. 신성한
검에 대해서는 크메르 역사에 그 전설이 남아 있다. 9세기 말 자야바르만 2세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왕자에게 신성한 보검인 쁘레아 칸을 물려주었는데, 아직까지 그 효험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쁘레아 칸의 원래 설립 목적은 불교 사원과 승려 학교 용도였으나 전쟁 중 그리고 파괴된 수도
앙코르톰의 복구 작업 시 왕은 이곳에 머물어 쁘레아칸은 왕궁을 대신한다.
덕분에 일반 사원과는 달리 왕궁의 위엄을 상징하는 각종 부속물이 추가되어 있어 볼만하다.
특히나 승리를 기원하는 왕의 마음을 알게하듯 벽감에 부처상을 수 없이 새겨넣었다. 단순한
사원이 아니라 왕의 거처를 겸하는 곳이라 다양한 건물들이 함께 부속되어 있다는 점도 이채
롭다
쁘레아 칸은 그 넓이가 56.7ha(0.567평방키로미터)에 이르며 4개의 성벽이 겹겹이 싸고 있다.
내부 성은 700*800m 의 직사각형 성벽에 둘러 싸여있다. 그리고 해자도 있으며, 내부에는 정자,
큰방, 성소들이 미궁과도 같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신화 속의 괴물 머리를 새긴 돌들과 부처
상이 앉아 있었던 벽감이 늘어서 있는 사열을 위한 도로가 신들과 악마들이 경계를 선 통로 앞
에 앉아 있는데, 이 사열도로는 외부 담벽이 있는 곳까지 연결된다.
3km나 되는 긴 라테라이트 벽에는 큰 가루다와 큰 뱀의 부조가 50m간격으로 새겨져 있다.
동쪽에 난 입구 탑에는 세 개의 현관이 있으며 가운데 현관으로 중앙사원까지 통하게 되어
있다. 벽들은 매듭 무늬의 두꺼운 카페트 같이 장식되어 있으며 작은 사원까지 통하게 되어
다. 작은 여신들도 있고, 가짜 문들이 커튼을 내린 것처럼 조각되어 있다. 외부 벽과 연결되는
오른쪽 길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휴식처 터가 남아 있다. 이곳은 두꺼운 벽과 2층 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사원의 외벽은 가루다의 사원이라고 불릴 수도 있을 정도로 가루다가 많이 조각되어
있다. 외벽에 가루다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이 사원을 보호하고 있다.
앙코르 톰 성곽외부로 나갔다. 쁘레아칸 사원을 보기로 했으나 걸음걸이가 불편한
노인분들을 고려하여 시간이 부족해서 잠깐만 보고 발길을 돌렸다. 아쉬워 자료를
수집하여 이곳에 올린다.

쁘레아칸 사원 입구의 문
역할).인도네시아 족쟈카르타에 있는 보로부드르 유적에 이 모양의 스투파와 앉아 있는 부처
의 조각상이 많았다. 보로부드르가 먼저 건축됨
* 바이욘사원 보다 불교적 색채가 강하다.
- 트래블 게릴라와 goangkor에서 인용
쁘레아 칸은 자야바르만이 그의 아버지를 위해 지은 사원이다. 동쪽은 왕이 출입하는 곳이라
신하들은 서쪽 출입구로 출입을 했는데, 사원의 중앙으로 갈수록 문의 높이가 낮아져서 머리
를 점점 숙이게끔 되어있다. 이것은 신성한 중앙 사원에 들어가고, 또 왕을 접견하기 위해
중앙 사원으로 들어갈 때는 복종의 의미로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4개의 큰 통로가 사원으로 연결되며, 경계에는 큰 뱀을 갖고 있는 거인과 신들을 조각하였다.
이는 앙코르 톰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건축구조는 왕궁에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사원은 1177년 참족을 물리친 후 왕궁을 새로 보수하는 동안 자야바르만 7세의 임시 왕궁
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쁘레아 칸은 따 쁘롬과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사원의
대부분이 매우 심하게 손상되어 있으며, 일부 복원된 것도 건축 구조상 매우 복잡하게 보인다.
1939년에 발견된 기록 문구에는 쁘리아 칸이 "나가라자야크리"의 고대도시였다고 한다.
"자야크리"라는 말은 태국말로 "신성한 검"이란 뜻으로 크메르어로는 쁘레아 칸이 된다. 신성한
검에 대해서는 크메르 역사에 그 전설이 남아 있다. 9세기 말 자야바르만 2세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왕자에게 신성한 보검인 쁘레아 칸을 물려주었는데, 아직까지 그 효험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쁘레아 칸의 원래 설립 목적은 불교 사원과 승려 학교 용도였으나 전쟁 중 그리고 파괴된 수도
앙코르톰의 복구 작업 시 왕은 이곳에 머물어 쁘레아칸은 왕궁을 대신한다.
덕분에 일반 사원과는 달리 왕궁의 위엄을 상징하는 각종 부속물이 추가되어 있어 볼만하다.
특히나 승리를 기원하는 왕의 마음을 알게하듯 벽감에 부처상을 수 없이 새겨넣었다. 단순한
사원이 아니라 왕의 거처를 겸하는 곳이라 다양한 건물들이 함께 부속되어 있다는 점도 이채
롭다
쁘레아 칸은 그 넓이가 56.7ha(0.567평방키로미터)에 이르며 4개의 성벽이 겹겹이 싸고 있다.
내부 성은 700*800m 의 직사각형 성벽에 둘러 싸여있다. 그리고 해자도 있으며, 내부에는 정자,
큰방, 성소들이 미궁과도 같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신화 속의 괴물 머리를 새긴 돌들과 부처
상이 앉아 있었던 벽감이 늘어서 있는 사열을 위한 도로가 신들과 악마들이 경계를 선 통로 앞
에 앉아 있는데, 이 사열도로는 외부 담벽이 있는 곳까지 연결된다.
3km나 되는 긴 라테라이트 벽에는 큰 가루다와 큰 뱀의 부조가 50m간격으로 새겨져 있다.
동쪽에 난 입구 탑에는 세 개의 현관이 있으며 가운데 현관으로 중앙사원까지 통하게 되어
있다. 벽들은 매듭 무늬의 두꺼운 카페트 같이 장식되어 있으며 작은 사원까지 통하게 되어
다. 작은 여신들도 있고, 가짜 문들이 커튼을 내린 것처럼 조각되어 있다. 외부 벽과 연결되는
오른쪽 길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휴식처 터가 남아 있다. 이곳은 두꺼운 벽과 2층 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사원의 외벽은 가루다의 사원이라고 불릴 수도 있을 정도로 가루다가 많이 조각되어
있다. 외벽에 가루다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이 사원을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