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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책 20권 27장 1926 11 20 기도
천상의 책 제20권 27장 1926년 11월 20일, 저의 해석
1. 늘 하는 방식대로 모든 피조물 사이를 순례하면서 그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지고하신 뜻의 행위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그 각 조물을 통하여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천상의 책 제20권 31장 1926년 11월 29일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모든 조물 안에서의 하느님 뜻의 생명 활동은 피조물 인간에게 하느님 뜻의 생명을 가져다 주기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물인 태양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태양빛을 통하여 인간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시는 봉사활동을 하게 되어있으나, 인간이 자기 뜻대로 행하기 위하여 하느님 뜻에서 물러감에 따라, 하느님은 하느님 뜻이 인간에게 주시는 생명의 통치권을 갖지 못하고, 하느님의 뜻은 인간에게 생명을 가져다는 주어야 하므로 사람의 종살이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각 조물(造物)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조물은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피조물 인간이 하느님 뜻에서 물러감에 따라 조물이 인간을 섬기고 인간의 종살이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자기가 창조하신 조물을 통하여 루이사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루이사는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느님과 소통을 할 수 있지만, 하느님 뜻에서 물러간 사람과는 소통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2. "누가 내 사랑을 부르고 있느냐? 내 사랑이 그의 사랑 안으로 내려가든지, 그의 사랑이 내 사랑 안으로 올라오든지 하여 서로 함께 녹아 오직 하나의 사랑을 이루려고, 또 내 사랑에게 활동 영역을 제공하려고, 그리하여 영혼 안에 그 사랑의 작은 새 바다를 일으키려고 내 사랑을 부르고 있는 자가 누구냐? 내 사랑은 (그에게서) 배출구와 활동 영역을 받은 까닭에 승리감과 축제 기분에 젖어 있다."
하느님의 뜻에서 물러간 사람들과는 소통이 안 되므로, 하느님 뜻 안에서만 사는 루이사는 하느님의 사랑을 달라고 하느님을 부릅니다. 루이사의 영혼 안에 하느님의 사랑의 작은 새 바다 - 하늘나라 문명은 이 지상문명과 다릅니다. 바다는 물이 아닙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 되어 있는 존재 -를 일으키려고 하느님의 사랑을 부릅니다. 하느님은 하느님 사랑의 배출구(排出口)와 활동 영역(領域)을 받은 까닭에 승리감과 축제 기분에 젖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주시는데, 사랑의 작은 새 바다를 영혼 안에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사람만 하느님의 큰 사랑의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 조물을 통하여 말씀을 하시면서 주십니다. 하느님의 통치권을 피조물에게서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오! 창조주 성부하느님,
하느님의 뜻에서 물러간 영혼들이
하느님의 뜻 안으로 돌아오지 않으므로,
기다리다 지치셔서 영원한 피앗의 자녀들인
하느님 뜻의 자녀들을 새로이 양성하시기 위하여
하느님의 지고한 ‘피앗’을 이미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피조물 사람 중의 하나인 이 못난 작은이가
통회(痛悔)를 하며 애원(哀願)하오니
지금이라도 하느님의 뜻 안으로 돌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3. 또 내가 태양과 하늘과 바다 속으로 옮겨감에 따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 왔다. "누가 나의 영원한 빛과 무한한 감미로움과 비길 데 없는 아름다움과 흔들림 없는 확고함 및 나의 무한성을 부르며 그들을 수행하는 행렬을 이루고자 하며, 그들에게 활동 영역을 제공하여 피조물 안에 같은 수의 빛의 바다와 감미로움의 바다, 아름다움의 바다와 확고함의 바다 등등이 나타나게 하고자 하느냐?
4. 그리고 누가 그들에게 무위(無爲)로 있는 데서 피조물의 작음을 써서 그들의 모든 속성들을 그 피조물 안에 담는 만족을 주고자 하느냐? 그 사람이 누구냐? 아! 그는 바로 우리 뜻의 작은 딸이다!"
우리 뜻의 작은 딸, 루이사는
1.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2.하느님의 영원한 빛과
3.무한한 감미로움과
4.비길 데 없는 아름다움과
5.흔들림 없는 확고함 및
6.나의 무한성을
하느님에게서 부르며
루이사 안에
위의 여섯 가지의 바다 - 물의 바다가 아니고 하늘나라의 무엇인 존재(기체(?))로 상상되는 바다- 등이 나타나게 합니다.
루이사가 무위(無爲)로 있는 데서, 작음을 써서, 위의 여섯 가지가 내포하는 모든 속성들을 루이사안에 담는 하느님의 만족을 줍니다.
5. 나중에, 그러니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각 조물 안에서 나로 하여금, "누가 나를 부르고 있느냐?" 하시는 소리를 듣게 하신 뒤에,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나를 꼭 끌어안고 이르셨다. "내 딸아, 네가 내 뜻 안을 돌아다니며 각 조물 안의 내 뜻을 따라갈 때 내 모든 속성들은 네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각 조물에게 그 속성들의 작은 바다를 만들어 주려고 현장으로 들어간다.
루이사가 하느님 뜻 안을 돌아다니며 각 조물 안의 하느님의 뜻을 따라갈 때, 하느님의 모든 속성(屬性)들은 루이시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각 조물에게 그 속성들의 작은 바다를 만들어 주려고 현장으로 들어갑니다.
루이사의 따라감과 부르는 소리가 있어야 하느님의 뜻도 각 조물에게 주시려고 현장으로 들어갑니다.
피조물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서 물러감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피조물에게 주시는 모든 속성들이 멈추어 버렸습니다. 이제 하느님 뜻 안에서만 사는 루이사를 직접 키우셔서 모든 속성들을 주십니다.
6. 이 속성들은 각자에게 그 자신의 작은 바다를 만들 수 있기에, 그렇게 활동하는 자신들을 보며 승리감을 맛본다. 하지만 그들의 최상의 기쁨과 즐거움은 작은 피조물 안에 그들의 사랑의 바다와 빛의 바다와 아름다움의, 애정의, 능력의 바다 등등을 만 들 수 있을 때에 증가한다.
하느님의 속성들이 조물 각자에게 속성 자신의 바다를 만들어 주시는 승리감을 맛보지만, 속성들의 최상의 즐거움은 작은 피조물 루이사안에 그들- 속성 -의
1.사랑의 바다와
2.빛의 바다
3.아름다움의 바다,
4.애정의 바다,
5.능력의 바다 등등을
만들 수 있을 때에 증가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7. 나의 지혜는 재능 있는 장인(匠人)처럼 놀라운 솜씨로 그 자신의 무한히 크고 끝없는 특성을 피조물의 작음 안에 넣어 준다. 오!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은 내 속성들과 얼마나 조화로운 일치를 이루는지! 그 속성들 하나하나가 일삼고 있는 것은 스스로의 신적 특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네가 내 뜻의 모든 행위 안에서 내 뜻을 따를 때 너에게 오는 큰 선을 안다면, 또 내 뜻이 네 안에서 어떤 일을 시행하는지를 안다면, 너 역시 지속적인 축제의 기쁨을 느낄 것이다."
창조주 성부하느님 삼위일체하느님의 지혜를 피조물 루이사 안에 넣어 주십니다. 이 은총을 루이사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넣어 주시는데, 인간들이 자기 뜻대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하느님의 다스림을 받는 영광을 지금이라도 엎드려 통회하고 용서를 빌며 청해야합니다.
“네가 내 뜻의 모든 행위 안에서 내 뜻을 따를 때 너에게 오는 큰 선을 안다면, 또 내 뜻이 네 안에서 어떤 일을 시행하는지를 안다면, 너 역시 지속적인 축제의 기쁨을 느낄 것이다."
참된 선의 본성이신 창조주 성부하느님으로부터 받는 크나큰 선(善)을 안다면, 하느님의 뜻이 루이사 안에서 시행하는 일을 안다면, 너 역시 지속적인 축제의 기쁨을 느낀다고 말씀하십니다.
오! 창조주 성부하느님은 모든 선을 주시는 분
교만하여 하느님에게서 물러갔습니다.
저의 교만을 끝장내고 이제 하느님의
뜻 안에서만 살겠습니다.
엎드려 통회하오니
나의 모든 행실을 주여 기억마시고
바른 길로 안도하소서.
내 모든 잘못을 다 기억마시고
늘 나와 함께 하옵소서
나의 생명 주 앞에 남김없이 드리니
주여 나를 지켜 주소서.
주님 찬미합니다. 사랑합니다. 찬양합니다. 아멘.
8. 그 후에도 나는 창조된 만물을 계속 따라다녔는데, 결코 멈추지 않고 도처에서 달리는 저 영원한 (의지의) 활동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 안에서) 마음속으로, '지고하신 의지가 만물 안에서 저토록 빨리 달리시면, 내가 어떻게 그 의지를 따라갈 수 있을까? 나에게는 이 의지의 힘도 속력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지고하신 의지가 만물 안에서 계속하시는 영원한 속삭임을 따라가지 못한 채 아무래도 뒤처질 것이다.' 하고 생각하였다.
9.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거동하시며 이르셨다. "딸아, 만물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충만한 생명 활동을 내포한 지고하신 분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또 그런 하느님에게서 나온 결과, 만물 역시 결코 그치지 않는 생명 활동을 그들 안에 담고 있다. 그것이 그친다면 생명이 그치는 것이다.
‘충만한 생명 활동을 내포한 지고하신 창조주 성부하느님에게서 만물이 나왔기 때문에 만물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고 말씀하십니다. 창조주 성부하느님이 만물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창조하였다. 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성부하느님이 충만한 생명 활동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물 역시 결코 그치지 않는 생명 활동을 그들 안에 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닮게 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다스리실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 자신이 자신의 생명활동을 더 발전시키셨다면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통하여 만물에 그 발전된 것이 주어지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거나 물러가면 만물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느님과 만물은 하나가 되어 거대한 하느님의 뜻에 통합되는 단일 행위를 이루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10. 보아라, 너 자신도 하나의 속삭임, 하나의 끊임없는 활동을 네 안에 가지고 있다. 더욱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성삼위와 비슷한 모습을 인간에게 부여하셨다. 그분께서 인간 안에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 가지 활동을 넣으시어, 그들 창조주의 끊임없는 활동과 사랑의 속삭임에 그들을 결합시키신 것이다.
11. 그것은 바로 결코 그치지 않는 심장 박동이요, 멈추는 법 없이 언제나 흐르는 혈액 순환이며, 절대로 중단되지 않는 호흡 활동이다. 이 세 가지는 몸 안에서 일어나는 활동이고, 영혼 안에도 끊임없이 속삭이는 세 가지 활동이 있으니, 바로 지성과 기억과 의지다.
이 못난 작은이에게는 제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릴 때, 하느님께서 만드신 미사통상문 기도를 드릴 때에, 복음말씀을 듣거나 말할 때에, 하느님께서 하느님 버금가게 성화시키신, 성모 마리아께서 만드신 묵주기도, 삼종기도를 드릴 때에, 죽은 이들을 위한 상장(喪葬) 예식 기도를 드릴 때에, 천상의 책을 읽고 그 내용을 기도로 만들어 기도를 드릴 때에, 미사에 참례하여 성가를 부를 때에, 저의 심장 박동 안에서 창조주 성부하느님의 심장 박동이 고동쳐 주십니다. 그 고동의 강약은 다르며 강한 것은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 하느님께서 어떤 의미를 전달하시는 것으로 받아드립니다.
천상의 책 제20권 40장 1926년 12월 24일을 읽고 기도문을 만들어 아래와 같이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혈액순환과 관련이 있는 기도입니다.
흠숭하올 창조주 성부하느님
하느님 뜻이 저에게 생명을 주시어 다스려 주시옵소서.
하느님의 거룩한 힘과 피조물 사람에게 주신 보편적인 힘을
둘 다 소유하게 하여 주시어
그 힘으로 하느님 뜻이 저의 체내의 혈관 속을 순환하여
하느님 뜻의 빛을 받아, 생동감이 넘치는 피가 되게 하여 주시고
저의 몸을 영화(靈化)시킬 정도로 순수하고 거룩한 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호흡활동과 관련이 있는 기도는
태양이 주시는 빛과 열로부터 생명과 사랑을 받으며
대기 속에서 신선한 생명의 공기를 마시면서
전신 운동을 하여 몸에 활력을 불어 넣겠습니다.
(생명의 공기로 기도를 드리자 ‘생명’에서 강하게 심장 박동이
고동쳐 주십니다. 생명의 공기가 맞는 것임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몸 안에서 일어나는 활동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 하느님의 생명활동과 닮은 활동입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기도드려야 하느님께서 기쁜 마음으로 생명을 주십니다.
‘영혼 안에도 끊임없이 속삭이는 세 가지 활동이 있으니, 바로 지성과 기억과 의지다.’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이 못난 작은이에게는 하느님 뜻의 지성(知性)이 차근차근 제 영혼 안에서 성장합니다. 기억은 나이가 들면서 나빠집니다. 저는 지성으로 이를 보완하는 노력을 계속합니다. 의지(意志- 어떠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의식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내적 욕구)는 기억과 지성이 성장할수록 의지도 그들을 따라 성장합니다.
12. 따라서 모든 것이 너의 활동을 네 창조주의 활동에 묶어, 그분의 영원한 활동과 함께 속삭이게 한다. 이와 같이 너는 결코 멈추지 않는 내 뜻의 활동 안에서, 결코 그치지 않는 내 뜻의 행위 안에서, 내 뜻을 따를 일이다. 그러면 네가 너의 활동을 네 창조주의 배 속으로 돌아오게 한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작품들이,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속삭임이 돌아오기를 크나큰 사랑으로 기다리고 계시니 말이다.
‘모든 것’은 위의 여섯 가지 활동이 근간이 되어 파생되고 확대되는 것들이라고 상상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너(루이사)의 활동을 창조주 성부하느님의 활동에 묶어, 그분의 영원한 활동과 함께 속삭이게 한다.’‘속삭이게 한다.’는 언어뿐만 아니라 모든 소통수단을 다 활용하여 소통하는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결코 멈추지 않는 내 뜻의 활동 안에서’
활동(活動 -생명 현상을 유지하기 위하여 행동이나 작용을 활발히 함.)
‘결코 그치지 않는 내 뜻의 행위 안에서’
행위(行爲 -분명한 목적이나 동기를 가지고 생각과 선택, 결심을 거쳐 의식적으로 행하는 인간의 의지적인 언행.)
‘내 뜻을 따를 일이다.’전능하신 하느님의 뜻을 따르면서 모든 일을 해야 합니
다. 인간의 뜻을 따르면 전능하신 하느님의 뜻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의 교만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아 오랜 세월을 낭비하였으므로 계속 강조하십니다.
창조주의 뱃속(마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은 아주 거대하다고 상상합니다. 하느님과 피조물의 행위가 단일 행위로 통합되어 채워지므로 거대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자녀들의 선익을 위하여 그들을 여러 곳으로 보내는 아버지와 같이 행동하셨다. 하나는 도시에, 하나는 밭에, 하나는 바다 너머에 - 말하자면 가까운 곳에 보내는 자녀들이 있는가 하면 먼 곳에 보내는 자녀들도 있었는데, 그들 모두에게 저마다 완수할 임무를 주어서 보냈다.
14. 하지만 아버지는 그들을 보내는 순간부터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그들이 돌아오는지 보려고 언제나 사방을 휘둘러 살펴본다. 그가 입을 열면 자녀들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고, 그가 사랑하면 그의 사랑이 자녀들에게 달려가는 것이고, 그의 생각도 자녀들을 향해 날아간다.
15. 가련한 아버지! 그는 자녀들을 자기에게서 멀리 보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 기분이고, 그들의 돌아옴을 그 자신의 생명보다 더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만약 -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말기를! - 그들 모두가 돌아오지 않거나 일부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보이면, 위로할 길 없는 비탄에 잠겨 눈물을 흘리고 신음하며 오열을 터뜨린다. 마음이 더없이 완고한 사람에게서도 눈물을 끌어낼 정도로 목메어 우는 것이다.
16. 그러니 자녀들이 그의 부성적인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보일 때, 그리하여 자녀들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가슴에 그들을 부둥켜안을 때, 오직 그때에만 그는 만족을 느낀다. 그런데, 아, 우리의 천상 아버지는 여느 아버지들보다 얼마나 더 자녀들을 그리워하며 탄식하시고 애타게 기다리시며 미친 사람같이 절규하시는지!
17. 그들을 낳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사랑에 찬 팔에 안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하여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그런즉 '지고한 피앗의 나라'는 바로, 우리 (성삼위)의 자녀들이 우리의 부성적인 팔 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나라를 열망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18. 그 후 나는 하느님의 흠숭하올 뜻 안에 완전히 잠겨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선지 모든 사람이 이 거룩한 '피앗'을 알고 완수할 때 얻게 될 크나큰 선에 대하여, 또 그럴 때 그들이 우리의 천상 아버지께 드리게 될 크나큰 만족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입을 열어 말씀을 이으셨다.
19. "딸아, 창조 때에 우리는 우리의 창조적인 손으로 인간을 빚어내면서 기쁨과 만족이 우리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인간이 지상에서 우리의 즐거움과 지속적인 축제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 이바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20. 그러므로 인간의 발을 빚어내면서 우리는 이 발들이 우리의 입맞춤에 이바지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이 우리의 발걸음을 그들 안에 담고 우리의 만남의 수단이 되어 우리를 즐겁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손을 빚어내면서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입맞춤과 포옹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우리의 활동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존재를 인간 내부에서 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21. 또 우리는 인간의 입과 심장을 빚어내었다. 이들이 우리의 말과 우리의 사랑의 메아리에 이바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숨으로 인간 안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그 생명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임을 보면서 - 그것은 과연 완전히 우리 자신의 생명이었다. - 그를 품어 안고 입을 맞추었다. 이는 우리의 작품과 우리의 사랑에 대한 확인의 입맞춤이었다.
22.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우리의 발걸음과 활동 안에서, 우리의 말과 사랑의 메아리 안에서, 그의 내면에 찍힌 우리 모상의 생명 안에서 삶을 온전히 유지하게 하려고 그에게 우리의 거룩한 뜻을 상속 재산으로 주었다. 우리의 뜻이 우리가 그를 낳았을 때와 꼭 같이 그를 보전하여, 우리의 즐거움과 애정 어린 입맞춤을 계속하고, 우리의 손이 만든 이 작품과 다정한 대화를 계속하려는 것이었다.
23. 우리의 뜻이 피조물 안에 있는 것이 보일 때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우리의 발걸음, 우리의 활동, 우리의 사랑, 우리의 말, 우리의 기억과 지성이다. 그것은 우리의 지고한 뜻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은 하나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24. 우리는 따라서 우리의 소유인 모든 것을, 곧 입맞춤과 어루만짐과 호의와 사랑 및 부성애보다 더한 자애를 그에게 준다. 그리고 한 발자국이라도 그에게서 떨어져 있기를 원치 않는다. 약간의 간격만 있어도 계속적인 즐거움이나 입맞춤의 교환, 더없이 내밀하고 신비스러운 기쁨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까닭이다.
성경에 특히 시편에서 자주 나오는 ‘자애(慈愛-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도타운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따라서 우리의 소유인 모든 것을, 곧 입맞춤과 어루만짐과 호의와 사랑 및 부성애보다 더한 자애를 그에게 준다.”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우리소유의 모든 것을 부성애(父性愛) 보다 더한 자애를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우리소유의 모든 것을 주십니다.
모든 것을 주시는 하느님을 모르고 하느님에게서 물러갔습니다.
모르고가 아니고 악의 유혹으로 물질적 세속적 쾌락에 빠져서 물러갔습니다.
이제라도 하느님이 창조하신 태양을 바라보고 태양을 통하여
주시는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 못난 작은이는 하느님 뜻의 태양 빛,
빛 자체이신 하느님이 주시는 생명과 사랑을
미사 성체성사를 통하여 받고 있다고
확고하게 믿으며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합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생활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 못난 작은이는 가난해지자 은혜를 계속
베풀어 주시고 계십니다.
여행도 못 가게 되자 그 시간에
저에게 더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자 더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미사 후에 감실에 계신 성체예수님과 느낌으로 대화를
나누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매일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 속에서
하느님 뜻 안에서만 살기를 원합니다.
25. 반면에 우리의 뜻을 볼 수 없는 영혼 안에서는 우리가 즐겁게 지낼 수 없다. 우리의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 영혼에게서 느낄 수 있는 발걸음과 활동과 말과 사랑의 부조화와 불일치는 그가 자기 창조주에게서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 우리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무한한 거리를 잊게 할 정도로 강력한 자석인 우리의 뜻을 볼 수 없는 곳이라면, 그 영혼과 더불어 즐겁게 지내거나 그를 우리의 입맞춤과 총애로 가득 채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6. 인간은 그러므로 우리의 뜻에서 물러감으로써 우리의 즐거움을 중단시켰고, 우리가 만물을 빚어내면서 세웠던 계획을 망쳤다. 그러니 우리의 '지고한 피앗' 이 군림하여 그 '피앗의 나라'를 세울 때, 그때에야 비로소 이 세상에 우리의 계획이 실현되고 우리의 즐거움도 다시 시작될 것이다."
성모 마리아께서 스태파노 곱비 신부를 선택하시어 받아쓰게 하여 출판된 책 ‘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 521 1994년 5월 22일 베르린(독일) 성령 강림 대축일” 10절에서 ‘교만한 자들’을 영벌을 받을 1순위로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성삼위 하느님 뜻에서 물러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느님의 모상(模像)으로 인간을 창조하시었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조물들과 피조물들에 관한 지식이 축적될수록 인간들이 교만해 질 수 있습니다. 스스로 그 지식들을 찾아내었다는 자부심 자긍심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아담이 선과 악을 모두 선택한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닮았기 때문에 머리가 좋아서, 지식을 많이 소유하게 되었고 그 지식을 활용하여 물질문명을 발전시키어 부(富)의 축적을 이루자 교만에 빠지게 되었다고 상상을 합니다.
천상의 책을 읽고 있는 이 못난 작은이는, 창조주 하느님의 지고한 ‘피앗’의 내용을 알게 될수록 하느님과 사람의 격차가 점점 크게 느껴집니다.
겸손하여 질 수밖에 없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성모 마리아님이 교만을 영벌을 받을 1순위로 말씀하신 것은, 인간의 속성을 예수님 다음으로 잘 알고 계시므로, 저에게 확고한 믿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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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금) 오전 10시 죽전 1동 하늘의 문 성당 미사참례
영성체 후 묵상
천상의 책 내용이 주제로 떠오릅니다.
무한히 크고 끝없는 특성을 지닌 하느님의 지혜를 피조물 루이사의 작음 안에 넣어 주십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루이사에게 주십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에서 물러간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이 주시려고 하여도, 하느님 뜻에 관한 지식이 없어서, 닫혀있으므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무지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치열한 생존경쟁 때문에, 물질적인 부에 집착하기 때문에, 이들 모두는 부수적인 이유이지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 못난 작은이는 지식층에 속합니다.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식층의 교만 때문입니다.
감실에 계신 성체예수님
천상의 책 제20권 27장 1926. 11. 20. 은 읽었지만 이해하여 알기가 어려워 뒤로 미루었던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이 못난 작은이를 키워주시는 창조주 성부하느님과 성체예수님과 제안에 항상 머물러 계신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제 이해를 할 수 있어서 저의 해석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히 크고 끝없는 특성을 가진 지혜까지도 피조물 루이사의 작음 안에 넣어 주시는 말씀을 읽고 감복(感服)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주시는 하느님
인간들은 하느님 뜻에서 물러갔습니다.
성체예수님께서 루이사를 택하시어 반세기 이상동안 하느님 뜻의 모든 것을 말씀으로 설명하여 가르쳐주시고 받아쓰게 하였고, 루이사와 함께 영적순례를 하여 루이사를 성모 마리아처럼 성화시키셨습니다. 그 내용을 천상의 책으로 발간하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알려면 단계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것부터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 못난 작은이는 이 지식을 기억하여 저의 지성을 높이어나갔습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 살겠다는 의지가 점점 강해졌습니다.
성체예수님께서 지극하신 사랑을 저에게 베풀어 주시어 단기간(3년 반)에 (36권중 20권만 우리나라에서 출판 되었습니다.) 제20권을 읽고 이해하여 알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지금은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어 창조주 성부하느님, 성체예수님, 성령님께 기도드리고 있습니다.(성령님은 겸손하시어 기도를 받지 않으시려고 하십니다.)
성체예수님의 인성의 희생(십자가 죽음) 과 신성의 희생(2000년 가까이 감실에 갇혀 계신 성체예수님)과 봉사와 하느님으로서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시어 루이사를 성화시키시고, 인간 모두를 루이사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성화시키시는 인간 성화사업을 성령님과 루이사와 함께 수행하시는 지고한 ‘피앗’을 아버지 하느님께서 완성하시어 놓으셨습니다.
‘지고한 피앗의 나라’인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나라’를 이 땅에 이룩하여 주시는 내용이 천상의 책에 다 공개되어 있습니다.
성체예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찬양합니다.
성체예수님께서 인성과 신성을 발휘하시어 이루어 내신 이 신성한 행위들의 업적들이 적혀 있는 천상의 책을 읽게 하여, 이 못난 작은이가 이처럼 성장하고 발전하게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었습니다.
이 못난 작은이처럼 성체예수님의 은혜를 받아 성장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많지 않다면
성체예수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찬미합니다.
사랑합니다. 찬양합니다. 흠숭합니다.
(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집니다.)
천천히 영광송을 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안녕히 계십시오. 작별인사가 입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성체예수님 사랑합니다. 성체예수님 사랑합니다.
(흐느낌이 오려고 합니다. 참습니다. 잠시 침묵하며 앉아 있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안녕히 계십시오.
성호경을 하고 눈을 떴습니다.(눈에 고였던 눈물이 쏟아집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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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전 기도 15. 4.13.부터
이 땅을 낙원으로 만드는 행복의 보고(寶庫)인
태양을 창조하여주시어
태양빛이 내포하는 선의 효과와 그 효과들의 속성인
다양한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는 먹을 수 있는 식물과 동물을
자연적 생명의 일용할 양식으로 주시어
하느님의 뜻인 조화와 균형을 따르려고
열매와 채소와 생선들을 골고루 섭취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맛있게 먹겠습니다.
태양이 주시는 빛과 열로부터 생명과 사랑을 받으며
대기 속에서 신선한 생명의 공기를 마시면서
전신 운동을 하여 몸에 활력을 불어 넣겠습니다.
(생명의 공기로 기도를 드리자 ‘생명’에서 강하게 심장 박동이
고동쳐 주십니다. 생명의 공기가 맞는 것임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뜻이 저에게 생명을 주시어 다스리시며,
창조주 하느님의 힘과 피조물인 사람의 보편적인 힘은
둘 다 소유하게 하여 주십니다.
그 힘으로 하느님 뜻이 저의 체내의 혈관 속을 순환하여
하느님 뜻의 빛을 받아, 생동감이 넘치는 피가 되고
저의 몸을 영화(靈化)시킬 정도로 순수하고 거룩한 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20,40,15~17, 1926.12.24.)
저의 영혼이 저의 뜻을 끝장내고 하느님 뜻 안에서만 살기를 원하오니,
새로운 생명이, 빛의 생명이, 하느님 뜻의 영원한 생명이,
저의 안에서 시작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20,44,4.1927.1.1.)
하느님 감사합니다. 찬미합니다. 사랑합니다. 찬양합니다.
하느님께 이 못난 작은이를 봉헌합니다. 바칩니다.
더욱더 다스려주시옵소서.
하느님 뜻의 충실한 종이 되겠습니다.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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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기도 15. 4. 19.부터
(다음글 " 성령님의 가르치심으로 식사 후 기도를 수정하였습니다." 중요한 내용이므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드리는 내용을 15.5.3.부터 수정하여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수정된 기도문을 읽으셔야 잘못을 바로잡은 올바른 기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흠숭하올 창조주 성부하느님(20,31,1926.11.29.)
하느님의 뜻은 각 조물 안에 활동적 생명을 가지고 계시며
하느님의 뜻은 모든 그 조물 안의 활동적 생명에게
하느님 뜻의 생명을 계속 주십니다.
피조물 인간을 위하여 모든 조물들을 창조하셨으므로,
위의 조물 안에서의 하느님 뜻의 생명을 주는 행위는
피조물 인간에게 하느님 뜻의 생명을 가져다주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은, 사람에게 주신 생명과 그 생명의
통치권을 가질 하느님 뜻 자신에게 봉사를 하게 되어있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의지가 모든 조물 안에 남아 다스리면서, 하느님께서
조물 각자가 생명활동을 하게하여 만들어 낸 것들을,
피조물 인간들에게 가져다주는 생명의 봉사활동을 하게 되어 있었는데,
피조물 인간이 자기 뜻을 행하려고 하느님 뜻에서 물러감에 따라
조물들이 인간의 뜻을 섬기고 인간들의 종노릇을 하고 있으며
하느님 뜻은 인간들에게 생명을 주기위하여 만물 안에서
생명을 주는 활동을 계속하셔야 하시므로 하느님이
사람의 종살이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존재의 기본이 되는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모르고 떠나,
자기 뜻대로만 산다는 것은 무지(無知)이며 배은망덕(背恩忘德)입니다..
천상의 책에서 이 말씀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고
충격(衝擊)을 받았습니다.
‘영원한 피앗’의 자녀들인 ‘하느님 뜻의 자녀들’에게
하느님 뜻이 행복한 봉사를 하게 될 때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때가 오면 하느님의 종살이가 거룩한 봉사로 바뀌고
다스리시는 하느님과 다스림을 받는 하느님 뜻의 자녀들
모두가 영광과 행복을 느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못난 작은이는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을 하고
하느님 뜻의 자녀세대의 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하느님의 종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저의 영혼을 계속 성장 발전 시켜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어 이제 하느님 뜻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느님 뜻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영혼이 되었습니다.
하느님 뜻이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한 이 거룩한 생명행위를 알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하여
더욱더 하느님 뜻의 다스리심을 받기를 원하오니
하느님의 의지가,
제안에 있는 하느님 의지에 봉사하시고
제안에서 하느님 자신의 생명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시고
제안에서 하느님 자신에 대한 지식과 자신의 거룩함에 봉사하시고
제안에서 하느님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데 도움을 주시옵소서. 아멘.
제가 새벽에 일어나 천상의 책을 맑은 정신으로 정신을 보다
집중하여 읽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여 깨달으려고 할 때에
그리고 미사에 참례하여 미사통상문기도를 사제와 함께 하나가되어
최대한으로 정신을 집중하여 기도드리며 그 기도말씀의 뜻을 깨달으려고 할 때에
복음말씀을 읽고 사제로부터 강론말씀을 들으며 깨달음을 얻으려 할 때에
성체성사 축성문 기도를 사제와 함께 기도드리며
창조주 성부하느님께서 이 성체성사로
이 못난 작은이에게 하느님의 신적생명과
사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도를 드릴 때에
그리고 영성체 후에 묵상을 하거나 기도를 드릴 때에
하느님께서 도움을 주신다는 느낌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이 못난 작은이가 기도를 드리고 하느님 뜻 안에서의 행위를 할 때에
항상 하느님의 뜻이 제안에 머무르시어,
제가 하느님 뜻 안을 날아다니게 하여 주시고,
하느님 뜻의 행위를 하게하여 주시고,
하느님 뜻의 재산을 소유하게 하는 봉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아멘.
하느님의 봉사는 하느님과 이 못난 작은이 모두에게 영광이 되고
하느님 뜻의 승리가 되고 하느님 뜻이 지배력을 발휘하게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못난 작은이는 하느님의 충실한 종이 되겠습니다.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바칩니다. 맡깁니다.
더욱더 다스려 주시옵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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