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스님/조계종 교육아사리·동국대 HK 연구교수
승인 2022.03.27. 15:00
627년 만에 경복궁 벗어날 수 있을까?
‘용산’ 이름의 ‘용(龍)’도 이제
그 이름값을 할 때가 온 것이다
몽고부터 왜, 청, 일, 미국까지
용산에는 늘 외국 군대가 주둔
수 백 년 동안 우리는 이 땅을
제대로 활용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모임을 하거나 식사를
하기 위해서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을 때 보통 어떤
자리부터 먼저 선택하게 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
문을 열고 들어가서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문 앞자리부터 자리를
잡는 사람이 있던가?
대부분 입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내부 안쪽 공간의 빈자리를 찾아보고
되도록 벽면 하나쯤은 등지거나 창가
옆쪽의 자리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밖의 전망이 잘 보이면 금상첨화가 될 터이고.
풍수는 미신이 아닌 본능
이것이 바로 태어나면서부터 장착되어있는
모든 인간의 ‘풍수본능’이다. 땅을
선택하는 택리(擇里)의 본능이야말로
가장 생래적인 유전자이자 원초적인
잠재의식에 해당한다.
목동이 소에게 풀을 먹이다가 새참을
먹는 자리가 그 일대에서 가장 명당이라 하고,
새가 새끼를 까기 위해 알을 품는 자리가
최고의 혈자리라고 한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여닫는 문에 의해
생기는 바람을 맞기 좋아하는 이는 없을 것이며,
일하다 말고 간식을 먹으려면 바람이 덜 부는
양지바른 곳을 골라서 자리를 잡기 마련이다.
바람을 막는 것이 장풍(藏風)이요. 물을 얻고
좋은 전망을 확보하는 것이 득수(得水)이니
‘장풍득수’의 줄임말인 풍수(風水)라는 것도
실상은 모든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생기처(生氣處)를
찾고자 하는 타고난 DNA인 것이다.
최근 뉴스에서 청와대를 대신하여 용산의
국방부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대통령
당선인의 발표가 있었다.
이에 대한 논평 가운데 ‘요즘과 같은 과학의
시대에 풍수와 같은 미신과 무속에 의지해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닌가요?’라는 질문이 있었다.
조선조의 선비들도 낮에는 근엄하게 성리학 책을
보다가 밤에는 남몰래 풍수 서적을 탐독했다고 하던데,
뒤에서는 온갖 루트를 통해 풍수에 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이들이 정작 ‘과학’ 운운하며 풍수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참으로 정직하지
못한 처사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제임스 롭슨 교수는 중국
남악(南岳)의 종교성과 성산(聖山)의 특징을 연구하여
<장소의 힘(Power of Place)>이라는 책을 저술하면서
‘풍수’라는 용어 대신에 ‘종교지리학(Religious Geography) ’
이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서양에서도 이미 ‘명당(明堂)’에 대해서 ‘에너지’와
‘기(氣)’의 집결처로 설명한지 오래되었고,
실제 현실에서 이 방면의 지식을 방대하게 활용하고 있다.
청와대 풍수 논쟁
기왕에 대통령의 집무실을 이전한다면 당연히
풍수지리학적 고려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며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선을 개국할 때 태조 이성계가 끝내 무학대사의
말을 듣지 않고 정도전의 주장을 따른 과보로
우리 민족은 험난한 환란들을 줄기차게 겪어야
했다(믿거나 말거나).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북악산을
좌청룡으로, 남산을 우백호로 하여 낙산을 안산으로
삼아 동향으로 궁궐을 지을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정도전이 왕은 북극성처럼 북쪽에 앉아
남면(南面)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주장하여
정남향으로 경복궁을 짓기를 관철했다.
남산을 안산으로 삼으려면 자좌오향(子坐午向)이
아니라 해좌사향(亥坐巳向)으로 조금 각도를 틀어야
함에도 무조건 정남향을 주장하여 결국 조선의
경복궁은 안산이 없이 객산인 관악산을 마주 보게 되었다.
관악산은 과천과 안양 쪽을 바라보는 산으로
서울에서 보이는 광경은 뒷모습으로 마치 불이
활활 타는 형국이다.
관악산의 이러한 화기로 인해 경복궁은 채
완성하기도 전에 이미 세 번의 화재가 있었음에도
건축을 중단하지 않았고 결국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어 275년 동안 공터로 쓸쓸히 남아 조선조
내내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결국, 조선의 왕들은 무학대사의 말처럼 창덕궁이나
창경궁에서 동향을 하거나 남산을 정면으로 보면서
생활했다.
사진에서 보듯 북악산은 광화문 정면에서 바라볼 때
좌우대칭이 맞지 않고 동쪽으로 향해 내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뒷산은 ‘어병(御屛)’이란 풍수 용어대로 병풍처럼
뒤를 감아서 바람이 불어 넘어오는 것을 막아주어야 하는데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창의문이나 자하문터널은 매우 낮아
뒤의 북한산이 몰래 담장을 넘어서 훔쳐보는 매우 흉한
규봉(窺峯)을 형성하고 있다.
이렇듯 심하게 불어오는 북서풍을 막아주는 장풍(藏風)의
역할을 하지 못하니 조선은 항상 외세의 침략에 속수무책이
되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말에도 흥선대원군이 다시 경복궁을 복원하는 무리수를
두어 결국은 또 일제강점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한 마디로
경복궁은 무학대사의 말대로 애초에 자리를 잘못 잡은 것이
명확하다.
경복궁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왕이 된 장자인 단종은 비명횡사했으며,
조선 왕조 전체에 맏아들로 왕이 된 이는 고작 6명에 불과했다.
조선 왕들의 비운은 현대의 청와대 주인들에게로 이어져
역대 대통령 가운데 불운하지 않은 이들이 없는데도
여전히 청와대를 명당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퇴임 후 행복하게 노년을 보내는 전직
대통령을 보기를 고대한다. 이를 위해서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옮기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광화문 시대를 연다는 것 역시 옳지 못한 선택이다.
외교부와 정부청사가 있는 지역은 앞서 말했듯이 북서풍이
직선으로 불어오고 규봉이 정확히 건네다 보고 있는 지형이라
이곳은 청와대 안에 머무는 것보다 오히려 더 흉하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탄허스님의 말씀처럼 대한민국이 국운이 좋아서인지
광화문 지역을 선택하지 않고 용산의 국방부 건물을
선택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만하다.
서울, 사방으로 그 영역 확대
현대의 서울은 조선의 사대문 안의 한양과는 판이하다.
사대문 안에서 청계천을 끼고 살던 소박한 조선의 한양과는
달리 대한민국의 서울은 사방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었고
거대한 강남의 개발에도 성공했다.
청계천을 내당수로 쓰던 한양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의 수도 가운데 가장 수량이 풍부한 한강이 서울의
중심을 관통하기에 이르렀다.
용산(龍山)은 현재 확장된 서울의 정중앙에 있다.
올해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여 모든 국가 대사의
서명을 이곳에서 하게 된다면 이는 627년 만에 경복궁
지대를 벗어나는 것이 된다.
남산의 3개 터널이 뚫려 도성의 기운은 강남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구룡터널이 뚫리면서 다시 강남의 기운은 분당으로 내려갔으며,
이어진 도로의 건설로 서울의 기운은 용인, 광교, 동탄까지 이어져
수도권은 거대하게 확장되었다.
이런 마당에 대한민국의 중심부가 저 깊은 북악산 밑에 계속 있을
이유는 없다.
대신 인왕산의 서촌과 북악산의 청와대, 삼청동과 가회동
북촌을 잇는 가로 라인과 경복궁, 광화문, 시청을 잇는 세로 라인이
활짝 열리게 되면 이곳은 아마도 문화예술과 관광명소가
어우러진 세계적인 고도(古都) 서울로 탈바꿈할 것이다.
용산은 서울의 새로운 중심
한강 중심에 자리 잡은 ‘노들섬’은 남산에서 용산으로 내려온
용이 달려가서 만나는 여의주에 해당한다. 한강대교가
이 노들섬을 갈라놓았고 일제는 용산역과 서울역으로
철로를 내어 우리 땅의 중심에 철심을 박았다.
향후 노들섬은 주위를 돌아가면서 가로등을 밝혀서 마치
여의주가 번쩍번쩍 빛나듯 해주고 야외 공연장에서
케이팝(K-Pop) 공연 등을 하여 불빛으로 밝게 빛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축구의 16강전이 열리던 날
노들섬에서 도반 스님과 둘이서 유주무주 애혼 고혼들을
위한 합동 천도재를 지내준 적이 있었다.
1·4후퇴 때 한강 철로에 떨어져 숨진 영가들과 동작동
국립 서울현충원에 모셔진 순국선열들, 2009년 용산참사 때
숨을 거둔 영가들, 한강대교에서 떨어져 자살한 영가들을
위해 정성껏 재를 지내 주었다.
거의 너덧 시간 동안 천도재를 지냈는데도 끝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이 용산 지역에는 한 많은 영가가 많았다.
재를 끝내고 오늘 ‘용(龍)자’ 들어가는 선수 한 명이
골을 넣지 않을까 했는데 신기하게도 이청용 선수가
동점 골을 넣어 주었다.
우리나라의 지명들은 예사롭지 않다. 높은 것으로 흥한다는
이름의 전남 ‘고흥(高興)’에서는 우주센터가 건립되어 누리호와
나로호가 우주를 향해 발사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용산’이라는 이름의 ‘용(龍)’도 이제 그 이름값을
한 번 할 때가 온 것이다. 몽고(蒙古), 왜(倭), 청(淸), 일본, 미국으로
이어져 오면서 용산에는 늘 외국 군대가 주둔해 왔다.
수백년 동안 우리 민족은 이 땅을 제대로 활용해 본 적이 없었다.
올해 안에 미군은 대부분 철수하는 것으로 안다.
이곳은 민족공원으로 하루속히 탈바꿈하여 우리
역사의 모든 아픔을 씻어내고 원한을 풀어낼 수
있도록 모든 국민이 한 번씩 나들이를 나와 지신밟기를
하듯 생기를 불어넣어야겠다.
이렇게 하여 용산이 살아나면 통일도 당겨지고 국운도
크게 융창할 것이다. 봄꽃이 피면 오랜만에 노들섬의
강태공들을 보러 나가봐야겠다.
[불교신문.3709호/2022년3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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