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흠숭 하올 삼위일체이신 우리 주님,
오늘 3월 30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평화방송 오전 11시 30분을 선택하여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미사 전에 아랫배에 힘을 주어 목구멍으로 가스를 토해냅니다. 아래 직장과 S상 결장 그 가운데에서 가스가 목구멍을 통하여 나옵니다. 입을 크게 벌리어 눈에 눈물이 고이도록 압박하여 입을 더 크게 벌리자 눈에 눈물이 조금 고입니다. 두 번째 더 입을 크게 벌릴 때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하품으로 연결되는 느낌이 잠깐 왔으나, 저의 압박의 힘으로 눈에 눈물이 약간 고이게 다스려주십니다. 입안의 침샘 구멍에서 솟아오른 침을 목구멍 위로 보내어 삼키게 다스려주십니다. 유전인자 죄의 상처가 대장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저처럼 장기간 가스를 목구멍으로 토해내고 입을 크게 벌리어 압박하여 눈물이 고이도록 하고, 침샘 구멍에서 침이 솟아올라 목구멍 위로 보내어 삼키게 하는 이 행위를 하는 것이, 죄의 상처를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확실히 느낍니다.
미사가 시작되자 저의 두 눈 사이 콧날 수평 경사 끝 뼈 양쪽 끝 뼈에 머물러 만져주십니다. 그리고 두정엽 정수리에서 오른쪽으로 가까운 전두엽 우뇌에 머물러 아래로 사선 오른쪽으로 내려와 저의 오른쪽 측두엽과의 경계 전두엽 우뇌 귀 위의 뼈에 머물러 만져주십니다. 측두엽 안에 청신경 시신경 말초신경 상처를 척수와 연결하여 치유하여주신다고 상상합니다. 그리고 아래 귀밑샘과 연결하여 귀밑샘에서 장액성 침을 분비하여 파생 상처가 있는 귀에 내이의 조직의 기관에 보내주어 귀 안에서 중이의 고막이 울리는 소리가 약하게 들립니다.
그리고‘거룩하시도다’에서부터는 저의 전두엽 우뇌 앞이마 살갗 뼈 위 머리털과 경계선에 머물러 오른쪽으로 옮겨가시면서 오른쪽 끝 뼈에 머물러 만져주시면서 아래 두 눈 사이 콧날 오른쪽 경사 끝 뼈와 연결하여 다스려주십니다. 말초 신경을 뇌 신경과 연결하여 말초 신경 상처가 있는 방광과 전립샘과 그리고 직장에 말초 신경의 상처를 장액성 침을 보내어 치유하여주신다고 상상합니다. 역시 오늘도‘성체성사 축성 기도’를 드릴 때부터 입안이 약간 건조하여지는 것을 느낍니다. 장액성 침을 많이 분비하여 상처가 있는 장기들을 치유하여주십니다. 지금 성장 과정을 기록하기 위한 이 녹음 기도를 드릴 때 방귀가 나왔습니다. 장액성 침을 직장 말초 신경 상처에 보내주어 방귀가 나왔습니다.
그리고‘영성체기도’를 드릴 때도 입안이 건조합니다. 계속 장액성 침을 상처가 있는 방광 전립샘 직장에 보내주므로 건조합니다.‘파견 성가’를 부르고 난 후에 비로소 입안의 침샘에서 침이 솟아올라 그 침을 듬뿍 목구멍 위로 보내어 삼키어 상처를 치유한 장기에 보내주어 장액성 침의 부족을 보충하여 주십니다.
오늘도 미사통상문 기도에 나오는‘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생각하시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기도의 근거가 되는 복음 요한복음 5장 17절부터 30절 사이에 말씀이 있습니다.
복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7-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17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22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27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29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9절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부활하더라도 다시 또 심판을 받는다는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30절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무덤에서 나와 부활하였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공심판이야말로 상당히 엄격한 심판입니다.
흠숭 하올 우리 주 성체 예수 그리스도님.
오늘도 이처럼 다스려주시고 복음 말씀에서도 중요한 말씀을 하여주시어 이 못난 작은 이의 영혼과 몸이 성장하고 발전하게 하여주시고 저의 하느님 뜻에 생명을 주시고 다스려주신 그 생명 지식을 제가 오늘도 새롭게 아는 것과 이 모두를 주님께 바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흠숭 하올 우리 주 성체 예수 그리스도님,
하느님 뜻 안에서 생활하면서 미사에 참례하여 미사통상문 기도를 함께 기도드리면서 제가 느끼는 것은 독서 말씀뿐만 아니라 화답송과 복음 환호성 등 모든 것을 완벽하고 주도면밀하게 만드셨습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라는 믿음이 점점 확고하여집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처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야말로 하느님이 만드신 유일한 종교임을 점점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생각하면 너무 어려운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한 개신교가 태어났고 그 후에 더 간소한 교리의 이단 개신교가 계속 탄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가톨릭교회에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만드신 이 미사통상문 기도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자구 수정만 하여 그대로 지금까지 실행하여 오고 있습니다.
흠숭 하올 창조주 성부 하느님. 우리 주 성체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님. 더욱더 깊이 하느님께 흠숭을 드립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찬미합니다. 사랑합니다. 찬양합니다.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 뜻의 빛이 하나로 통합하는 일치의 으뜸가는 기적 안에서 하느님은 하느님 자신의 힘으로 이 못난 작은 이는 저를 휩싸고 있는 빛이 하나로 통합하는 일치의 힘을 더 소유하게 하여주시어 하느님 뜻의 영원하고 무한한 사랑으로 이 못난 작은 이를 사랑하여주시어 저를 선택하여 하느님 뜻의 생명을 주시고 다스려주시는 단일 행위를 능력과 힘을 주신 성령님께 위임하여 성령님께서 저와 함께 24시간 밤낮으로 함께 생활하시면서 하느님 뜻의 기본이 되는 질서와 조화와 균형에 따라 정하신 순서로 저를 오늘도 단순하게 다스려 상처를 치유하여 주시었습니다. 그러나 성과는 크다고 느낍니다. 이단일 행위를 성령님과 저와 단둘이서 함께 하여주시는 크나큰 영광의 빛을 주십니다. 더 높고 더 넓고 더 깊은 그리고 더 두터운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이 솟아오르는 기쁨과 희망과 영혼의 행복을 느끼며 하느님을 더욱더 확고하게 믿는 믿음이 저의 영혼과 마음과 정신 안에 더욱더 가득 찹니다. 이 못난 작은 이를 선택하여 은총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 생활하면서 하느님 뜻을 점점 더 이해하고 알아가는 이 못난 작은 이가 이제 온 마음 다 바쳐서 머리를 크게 숙여 하느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하느님 뜻의 사랑과 신성한 평화(주 참조)를 받으면서 이 사랑과 평화 안에서 하느님께 더욱 깊은 흠숭을 드립니다. 기쁨이 가득 찬 저의 마음으로, 영광의 빛을 받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러나 겸허히 하느님께 마침 영광 송을 바치겠다고 마음을 정하자 저의 심장과 가슴에 영광의 빛이 가득 차는 느낌입니다. 제 안에 가득 찬 영광의 빛으로 내 마음 다하여 하느님께 마침 영광 송을 바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 와 항상 영원히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영원하고 무한한 사랑을 주시는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그 모든 것에 영예와 영광을 바칩니다. 이는 영원한 영광입니다. 아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감응을 주신 성령님 감사합니다. 아멘.
22 03 30 수 아침 식사전기도
3월 30일 수요일 오전 6시 30분에 아침 식사 전 기도드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흠숭 하올 창조주 성부 하느님.
이 못난 작은 이를 하느님 뜻의 영원하고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하여주시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어제도 오후 6시에 탄천 평지를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10분이 지나자 왼쪽 종아리에 통증이 오면서 당겨지고 오른쪽 종아리도 역시 당겨져 약간의 통증이 옵니다. 15분 지난 후에 의자에 앉아서 1분 동안 주무르고 계속 걸었습니다. 어제는 왕복 36분을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3년 전에는 제가 이처럼 종아리가 땅기는 불편은 없었는데 이제 많이 하체가 그동안 운동을 하지 않아 오히려 노화가 빨리 왔습니다. 걸으면서 체중을 뒤꿈치에 두고 아랫배에 약간 힘을 주어 아주 꼿꼿한 자세로 걸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을 보폭에 집중하여 보폭을 넓히어 걸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힘은 부족하지 않은데 하체가 좌우로 흔들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반환점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았습니다. 전과 다른 것은 소변을 참을 수가 없으며 소변이 바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체 운동을 하며 방광을 자극하였으므로 또 방광과 전립샘에도 소변이 차 있으므로 소변을 참지 못하여 보게 된다는 것을 점점 느낍니다. 반환점 화장실에 꼭 소변을 미리 보려고 합니다. 발걸음 운동기구에 돌아와 소변 공포증 없이 마음 놓고 하체와 몸 전체를 이완시킬 수 있습니다.
흠숭 하올 창조주 성부 하느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외출을 자제하였고 성당에도 가지 않고 평화방송 미사에 만 참례하여 이처럼 걷는 운동을 하지 않은 후유증이 나타났고 회복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걸으면서 나이 많은 분들을 쳐다보면 노인들의 발걸음 속도는 다 저와 비슷합니다. 가끔 속도가 빠른 노인을 봅니다.
자연적 생명의 일용할 양식인 이 음식도 소화력이 3년 전보다 떨어지므로 소화 잘되는 음식만을 선택하여 먹으려고 하므로 영양 섭취에 불균형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으로 일용할 양식인 이 음식이, 제 안에서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는 하느님 뜻의 생명과 영원한 생명과 조화를 이루도록 다스려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늘과 땅에 가득한 영광의 빛을 아낌없이 주시는 하느님. 하느님께 이 영광을 바칩니다.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 와 항상 영원히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흠숭 하올 창조주 성부 하느님. 저의 아들 안토니오가 오미크론 감염 확진자가 되었습니다. 목구멍이 아프답니다. 목구멍 통증이 약해지고 있다고 어제 문자메시지 보내왔습니다. 저의 손자 미국에서 공부시키기 위하여 너무 고생을 많이 하는 저의 아들을 보살펴 주시옵소서. 아멘. 하느님 사랑합니다. 아멘.
22 03 30 수 점심 식사전기도
3월 30일 수요일 평화방송 미사 참례 후에 오후 1시에 기도드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흠숭 하올 창조주 성부 하느님.
이 못난 작은 이를 사랑하여주시어 하느님 뜻 안에서 생활하는 저에게 기쁨과 희망과 믿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자연적 생명의 일용할 양식을 하루에 두 번 두 끼만 섭취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두 끼 식사 섭취 영양소와 음식 섭취량에 관심을 점점 더 둡니다.
미사를 통하여 주시는 성체성사 축성 기도중 첫 번째 하느님 뜻의 양식 중에서, 하느님 뜻의 생명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행위는 성령님께 위임하여 완벽하게 다스려주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성사적 생명의 양식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생명을 제가 소유하였다고 5년 전에 주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거양성체에서 제가 청하는 기도, ‘천상의 책’을 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그 항구하심과 인내가 넘치시는 그 신적 생명을 제가 본받기를 원합니다. 다스려주시옵소서. 이 기도는 주님의 뜻으로 다스려주시는 것이므로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연적 생명의 일용할 양식인 이 음식은 저의 유전인자 죄의 상처와 파생 상처가 너무 크고 다양하므로 오히려 음식 섭취에 더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러나 하느님 뜻의 생명과 영원한 생명은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으로 주시는 것이므로, 이 두 가지 생명의 성장과 발전에 따라 조화를 맞추어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사람인 저의 뜻보다 더 잘 아시는 것이 자명(自明)하므로 조화롭게 음식을 섭취하도록 다스려주시기를 청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믿습니다.
오늘도 마침 영광 송을 드리는 기도로 대장이 건강해졌습니다. 가스도 없어지고 미사 전에 바로 대변도 보아 지금 아랫배가 가볍습니다. 이 음식을 과식하지 않도록 그리고 단백질을 과잉 섭취하지 않도록 하느님 뜻의 사랑과 하느님 뜻의 신성한 평화를 받아 이 사라과 평화 안에서 섭취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영광의 빛을 주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크나큰 영광에 머리 숙여 경배를 드립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 와 항상 영원히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 :
천상의 책 제9권 12장 1909년 7월 29일
신적 덕성인 평화
1. 평소와 같은 상태로 있던 중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왜 주님께서는 눈곱만큼의 소란도 내 안에 들어오지 않기를, 그래서 내가 모든 일 속에서 평화롭게 있기를 그리도 바라시는 걸까? (영혼에 평화가 없다면), 얼마나 위대한 일이고 영웅적인 덕행이며 혹독한 고통이건 그 무엇도 그분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그분은 마치 영혼의 냄새를 맡으시는 듯, 그런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평화가 감지되지 않으면 그 영혼에게 언짢음과 역겨움을 느끼시는 것이다."
2. 그 순간 그분께서 당신 말씀을 들려주셨는데, 품위와 위엄이 넘치는 음성으로 나의 '왜'에 이렇게 대답해 주신 것이다.
3. “왜냐하면, 평화는 신적인 덕성인 반면 다른 모든 덕성은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무슨 덕이건 평화의 화관으로 장식되어 있지 않으면 선덕이 아니라 악덕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내가 평화를 이리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평화야말로 영혼이 나를 위해서 고통을 겪으며 일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표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화는 내가 내 자녀들에게 주는 유산이기도 하다. 이는 영원한 평화를 유산으로 받는 것이다. 내 자녀들이 천국에서 나와 함께 누릴 유산인 것이다.”
천상의 책 제13권 42장 1921년 12월 18일
영혼의 봄철인 평화
1. 예수님의 부재로 말미암아 마음이 몹시 무겁고 아팠다. 온종일 그렇게 지내고 나자 밤늦게 그분께서 오셔서 양팔로 내 목을 감아 안으시고 말씀하셨다.
2. “딸아, 이게 무엇이냐? 네 안에 우울한 그늘이 있구나. 이런 분위기는 네가 나를 닮지 못하게 하고, 너와 나 사이에 거의 언제나 있었던 지복의 흐름을 깨뜨린다.
3. 내 안에는 모든 것이 평화롭다. 그러니 네 영혼을 충충하게 하는 그늘이 하나라도 있으면 내가 잠자코 넘길 수가 없다. 평화는 영혼의 봄철이다. 모든 덕행이 봄볕을 받고 있는 나무와 화초같이 꽃피고 자라며 웃음을 짓는다. 봄철은 자연 속의 모든 것이 나름대로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는 계절이다.
4. 아름다운 미소로 초목의 동면 상태를 흔들어 깨우고, 화려한 꽃망토로 땅을 입혀 그 감미로운 매력으로 모든 사람을 불러 감탄하게 하는 봄이 없다면, 땅은 지긋지긋한 모습으로 있을 것이고 초목은 말라 죽을 것이다.
5. 평화는 영혼을 흔들어 동면의 마비 상태에서 깨어나게 하는 하느님의 미소다. 그것은 천상적인 봄과 같이, 격정과 나약과 무자각 등등의 마비 상태에서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그 미소로 꽃핀 들녘보다 풍성하게 온갖 꽃이 만발하게 하고, 모든 초목이 자라나게 한다.
6. 천상 농부께서 흐뭇해하시며 그 속을 거니시고, 그 열매들을 따서 음식으로 삼으신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영혼은 내가 좋아하며 즐기는 정원이다.
7. 평화는 빛이다. 영혼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그가 발산하는 빛이 된다. 그러니 원수가 접근하지 못한다. 이 빛에 호되게 얻어맞아 상처를 입은 느낌인데다 눈이 너무 부셔, 도망치지 않고서는 실명할 것 같기 때문이다.
8. 평화는 또한 지배력이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지배한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영혼 앞에서는 누구든지 정복되거나 아니면 당황과 수치에 떨어진다. 정복되어 친구로 있든지, 평화를 지닌 영혼의 품위와 침착과 온유를 감당할 수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로 있든지, 둘 중 하나라는 말이다.
9. 심지어 더없이 비뚤어진 이들도 그런 영혼이 지닌 힘을 느낀다. 이런 이유로 나는 ‘평화의 하느님’, ‘평화의 왕’이라고 불리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긴다. 나 없이는 평화가 없다. 홀로 나만이 평화를 소유하고 있고, 이를 내 자녀들에게 준다. 모든 재산을 상속하기로 되어 있는 적자(嫡子)에게 주듯이 말이다.
10. 세상이나 피조물은 이 평화를 가지고 있지 않다. 가지고 있지 않으니 줄 수도 없다. 기껏해야 속은 곯아 가는 겉치레의 평화를 - 독액을 내포한 거짓 평화를 줄 수 있을 뿐인데, 이 독은 양심의 가책을 잠재워 인간을 악덕의 나라로 유인한다.
11. 그런고로 참 평화는 나다. 내가 너를 내 평화 안에 숨겨 주겠다. 그러면 네가 심란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평화의 그림자가 눈부신 빛처럼 너를 지켜, 네 평화를 그늘지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이든 사물이든 네게서 멀리 달아나게 할 것이다.
천상의 책 제23권 20장 1927년 12월 6일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의 비약적인 변화.
하느님 뜻이 들어와 살 수 없게 방해하는 것들.
어디에서나 통하는 하느님의 서명과도 같은 행위.
1 계속 ‘거룩하신 피앗’ 안에 나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는데, 내 지고한 선이신 예수님 없이 온전히 혼자 있었기 때문에 표현할 길 없는 비통과 고뇌를 느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고하신 의지의 빛에서 나오는 차분한 평화와 행복도 느꼈다.
2 그래서 마음속으로, ‘이 변변찮은 위인이 참 많이 변했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전에는 복되신 예수님께서 잠시라도 내게서 당신 자신을 감추시면, 다만 몇 시간만 지나도 불안해하고, 미친 듯 헛소리를 하거나 엉엉 울면서 자신을 사람 중에서 가장 불행한 자로 여기곤 했는데, 이제는 정반대가 아닌가.
3 몇 시간이 아니라 몇 날 며칠 그 분 없이 지내고 있는데도, 비록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불안해하거나 미친 듯 헛소리를 해대거나 소리 내어 울기는커녕 숫제 눈물이 다 마르기나 한 듯 극히 평온하고 담대하며 행복하기까지 한 것이다!
4 거룩하신 하느님, 제가 얼마나 많이 변했습니까! 예수님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숨이 끊어지는 것처럼 괴롭습니다. 그럼에도 제 행복은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습니다.
행복은 고통을 그대로 두고 고통도 행복을 그대로 두는 것 같습니다. 각각 저 혼자 식으로 나아갈 뿐 서로 관여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5 아! 예수님! 예수님! 어찌 저를 도와주지 않으실 수 있습니까? 불쌍하지도 않으십니까? 이 당신 뜻의 작은 딸을 끔찍이도 사랑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고서, 어찌 달려오지도 날아오지도 않으실 수 있습니까?’
6 하지만 내가 그렇게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고 있는 동안, 그분께서 나의 내면에서 거의 꼼짝도 않으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뜻의 딸아, 너는 왜 너의 평화, 너의 행복을 교란시키려고 드느냐? 알아 두어라. 내 뜻은 자신이 다스리는 모든 곳에 숭고하고 신성한 여왕처럼 있고, 무한한 기쁨과 가없는 행복을 소유하고 있다.
7 비통과 눈물과 고뇌는 다 시간 속에서, 인간의 뜻에서 태어난다. 그런 것들은 영원 속에서, 나의 뜻에서 태어나지 않는, 유한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내 거룩한 의지의 행복의 바다 속에는 단 한 발짝도 들어올 힘이 없다.
신적인 경지 - 바로 천상 여왕과 내 인성이 처해 있었던 경지는 이것이었으니, 갖가지 고통을 얼마나 많이 겪었건, 고통이 우리의 끝없는 기쁨과 행복을 감소시키거나 그 극치 속을 파고든 적이 없었다.
8 그러니 잠시라도 나를 보지 못하면 불안해하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의 평화를 잃곤 했던 너의 이전 상태는 너에게 남아 있었던 인간적인 뜻의 찌꺼기로 인한 것이었다.
9 나의 뜻은 그런 약점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본성상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내 뜻 자신이 다스리는 곳에서는 그 자신이 여왕으로서 고통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니 고통이 여기저기에 퍼지게 할 수는 있지만, 내 뜻의 행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내 뜻이 그 안에서 다스리는 사람을 그 행복으로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고통은 따라서 내 흠숭할 만한 뜻의 끝없는 행복의 바다 안에서 있을 곳을 찾아내지 못하기 마련이다.
10 그런데 너는 네 영혼 안에 느껴지는 변화에 대하여 걱정을 하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냐?) 내 뜻이 네 안에서 다스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11 내 거룩한 뜻은 그 고유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영혼이 자기 뜻의 문을 열고 내 뜻이 들어와서 다스리기를 바라면, 영혼 안으로 들어가서 내 뜻 자신의 생명 활동을 수행하는데, 그것은 완전히 신적인 생명이다.
또한 내 뜻은 사실 그대로 여왕이기에 영혼 안에 그 빛의 생명을 형성하고, 그 평화와 성덕과 행복의 생명을 형성한다.
12 그러면 사람은 내 뜻의 모든 재산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여기게 된다. 고통을 느끼더라도 신적으로 느끼기에, 내 거룩한 뜻이 그에게 건네준 모든 것이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내 뜻이 들어가서 다스릴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지 않는 사람 안에서는, 내 뜻의 생명이 보류된 상태로 있으면서 손상을 입기에 스스로의 생명 활동을 펼치지 못한다.
13 그와 비슷한 일이 내 ‘거룩한 피앗’에게 일어난다. 모든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 상대방은 끔찍한 배은망덕을 저지른다. 그의 손발을 묶어 자기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입을 틀어막아 말을 못하게 하고, 눈을 가려 자기를 못 보게 한다.
14 이처럼 상대방이 그의 발을 묶어 자기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그가 자기에게 가져오는 좋은 것을 받지 않으려고 그의 손을 묶고, 그가 무엇을 가져오고 있는지를 말하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고, 그의 눈길에 끌려 문을 열어주는 일이 없게 하려고 그의 눈을 가린다면, 이리도 비참한 꼴이 된 그가 어떻게 그 상대에게 베풀려고 했던 선을 베풀 수 있겠느냐?
이것이야말로 그토록 많은 선을 가져다주려고 했던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 큰 고통이 아니겠느냐?
15 내 뜻이 사람들에 의해 그런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은 그들이 그들 뜻의 문을 열지 않아 내 뜻이 그들 안에서 생명을 펼칠 수 없을 때다. 딸아,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모른다! 얼마나 큰 고통인지!”
16 그 뒤 나는 그렇게 많은 선을 가져다주시는 거룩하신 뜻에 대하여 계속 생각하였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딸아, 내 ‘거룩한 피앗’이 자기를 다스리며 지배하게 하는 사람을 나는 무척 사랑하기에, 그가 이 피앗 안에서 하는 각 행위마다 그에게 신적인 권리를 준다. 즉, 성덕의, 빛의, 은총의, 행복의 권리를 준다. 그리고 이 권리들로 그 영혼을 묶어 하느님 재산의 소유자가 되게 한다.
17 그러니 내 거룩한 의지 안에서 하는 행위가 하나씩 더 불어날 때마다 그 하나하나가 네 창조주의 서명이 된다. 창조주께서 마치 (양도) 증서에 서명하시듯 너를 당신 자신의 행복과 빛과 성덕과 은총의 소유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18 그것은 어떤 부자가 한 가난한 여인을 사랑할 때 일어나는 현상과 흡사하다. 그 여인은 그의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다.
나가는 것은 다만 자기 주인의 소유지로 가서 그 농장의 열매들을 가져오기 위해서일 뿐이다. 자기 주인을 주인 자신의 좋은 것으로 행복하게 해 주려고 그러는 것이다.
19 부자는 그 여인을 눈여겨본다. 그리고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자기의 집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자기 마음에 (사랑의 감미로운) 상처를 내는 그 여인의 행복을 보장하고 싶어서 그의 재산에 대한 공적인 양도 증서를 써 준다.
여인은 그러므로 언제까지나 그의 집에 머물면서 사랑하는 주인을 행복하게 하려고 주인 자신의 재산을 활용한다.
20 우리 (성삼위)의 거룩한 뜻 안에서 사는 사람도 그렇다. 그는 우리의 집에서 살고, 우리를 영광스럽고 행복하게 하려고 우리의 재산을 활용한다. 만약 그와 우리가 서로 대등하지 않으면 균형이 깨어질 것이고 그 고통으로 우리의 아버지다운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거룩한 의지 안에는 고통이나 불행이 들어올 수 없으므로 우리는 관대하게 처신한다. 즉, 그가 하는 행위마다 우리의 서명과 함께 우리 재산의 양도 증서를 써 주어, 우리 자신의 행복으로 그를 행복하고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21 이 때문에 내가 너에게 자주, ‘딸아, 주의를 기울여, 아무것도 너에게서 빠져나가지 않게 하여라.’ 하고 거듭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뜻 안에서 하는 너의 행위들은 저마다 어디에서나 유통되는 서명이고, 그것도 하느님의 서명이어서, 하느님의 뜻이 너의 소유이고 너는 하느님 뜻의 소유라는 사실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느님의 보증은 결코 파기되지 않는다. 영원한 보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