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3월 23일 토 아침 식사 전 보고와 기도, 진리의 영을 저에게 보내시어, 하느님과의 소통 통로인 저의 기억, 지성, 의지 중에 가장 ‘기억’이 뒤떨어지지 않도록, 진리의 영이 도와주시는 느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흠숭 하올 삼위일체이신 우리 주님,
3월 23일 토요일 오전 6시 예 아침 식사 전 보고와 기도를 드립니다.
이 못난 작은 이가 어제는 아주 시원스럽게 배변하였습니다.
신진대사가 이처럼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후에 비가 와서 탄천을 산책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제는 성장 과정 기록을 위한 녹음을 글로 바꾸는 작업이 밀려있어 그것을 하였습니다.
오늘 새벽 2시부터 정신이 맑아졌습니다. 잠을 자려고 하지만 성 삼위 하느님께서 진리의 영을 저에게 주시어 진리의 영 역할을 가르쳐 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어제는 누워서 잠을 자는 시간인데도 진리의 영을 저에게 보내시어, 진리의 영이, 하느님과의 소통 통로인 저의 기억, 지성, 의지 중에 가장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계속 긍정적인 생각만 떠올랐습니다. 그 기억이, 연결고리가 이어져서 기억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열려, 제가 사람들 앞에서, 저에게 그동안 천상의 책을 읽게 하여 주시고 가르쳐 주신, 하느님의 뜻, 하느님 뜻의 생명, 하느님 뜻의 사랑, 하느님 뜻의 자비, 하느님 뜻의 성덕 등을 모두 연결고리로 연결하여 건너뛰거나 막힘없이 말이 나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즐거워서인지 지금 배가 고픕니다.
소화도 잘되고 제가 원하는 대로 모든 기억이 떠오르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기억하기 위해서는 계속 반복하여 기도드린 내용도 읽는 것이 당연히 유익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비관적인 생각은 싹 없어지고 신바람이 나서, 진리의 영께서 안내하시는 대로 모두를 말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억력은 갖추어야 한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지금 저의 머리 정수리에서 만져주시면서 저의 기도를 듣고 있다는 표시를 하여 주십니다.
성령님 이처럼 만져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비관적이었으나 이제는 또 긍정적인 면만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과의 통로인 기억, 지성, 의지를 완전히 모두 가동하여, 하느님과 통로가 막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도 영광송에 대하여 말씀하신 천상의 책 말씀을 다 읽지는 못하였으나 그 말씀을 다시 또 프린트를 좀 큰 글씨로 하여 놓았습니다.
오늘도 아주 기쁘고 희망과 즐거움이 가득 찬 저의 마음으로 이 영광송을 성 삼위 하느님께 드립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 와 항상 영원히. 아멘. 몸을 90도로 굽히어 머리를 깊숙이 숙여 하느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눈에 눈물이 약간 맞힙니다. 일어서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찬미합니다. 하느님, 하느님 뜻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하느님 찬양합니다. 아멘
눈물 감응을 주시는 성령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성령님 저에게 비관적인 생각은 몰아내 주시고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느님과의 통로인 기역, 지성, 의지를 막히지 않도록 다스려 주시옵소서.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아울러 이 기도가 끝나면 자연적 생명의 일용할 양식인 음식을 조리하여 먹습니다. 활동적 생명을 왕성하게 활동하도록 다스려 주시는 지극히 높으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으로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뜻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 땅위에 하느님의 뜻이 제안에 머물러 주시어 해의 빛과 열로 성장하게 하여 주신 생명이 있는 먹을 수 있는 동식물을 음식으로 조리하여 섭취하게 하여 주십니다.
하늘의 하느님 뜻의 활동적 생명과 조화를 이루어 완벽한 활동적 생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상의 책 제19권 3장 1926년 3월 2일
하느님 뜻의 진리에 대한 침묵은 무덤을 만들고, 이에 대한 표현은 그 진리의 부활을 이룩한다. 하느님 뜻을 소유한 사람은 천상과 통교하며, 천상 세계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에 참여한다.
1. 복되신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을 나타내 보이려고 마음을 여는 것이 어찌나 싫은지 아무것도 더 이상 알려지지 않도록 영영 입 다물고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토록 심한 부담감 때문에 다정하신 예수님께 이렇게 우는 소리를 하였다.
2. ‘오! 당신과 저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신다면 저는 정말 기쁘겠습니다. 너무나 큰 부담감에서 놓여나게 하실 것이니 말입니다. 제가 얼마나 꺼리는 일인지, 얼마나 애써 노력해야 그럴 수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3. 내가 그렇게 중얼대고 있었을 때,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걸음을 옮기시는 기척을 내시며 이르셨다.
“딸아, 너는 빛과 은총과 진리를 매장하고 싶으냐? 그렇게 네 예수에게 무덤을 마련해 주고 싶으냐?
어떤 진리에 대한 침묵은 그 진리를 매장하는 무덤을 만드는 반면,
이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그 진리의 부활을 이룩한다. 즉, 빛과 은총과 선을 다시 일으킨다.
진리에 대한 말은 '지고한 피앗'에서 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4. 말은 내가 ‘피앗’ 이라는 말로 모든 피조물을 창조했을 때에 그것의 신적인 영역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빚어낼 수 있었음에도 내가 ‘피앗’이라는 말을 쓰고자 했던 것은, 말 역시 신적인 기원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 말이 창조력을 내포하므로, 내게 속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말을 듣는 행운을 잡은 사람들에게 저 진리들을 전할 힘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5. 너에게는 더 강력한 이유가 있다. 사실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의 대부분은 내 지고한 뜻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원초적인 말일 뿐만 아니라 바로 ‘피앗’ 자신이다. 이 피앗이 창조사업에서처럼 다시 현장으로 들어가 내 뜻이 지닌 무한한 선을 알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드러내고 있는 모든 것에 매우 큰 힘을 주기에, 족히 영혼들 안에 내 뜻의 새 창조사업을 충분히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6. 그런데 네가 침묵으로 내 뜻에 무덤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면, 이것이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이 되겠느냐?”
7. 나는 덜컥 겁이 났고, 전보다 더 괴로운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이룰 은총을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그러자 격려해 주시기 위함인 듯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에 나를 붙여 안으시고 내 안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다.
8. 그때 하늘이 열리고, 모든 이가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를 일제히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다음은 내 차례였다. 그러므로 나는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하고 화답하였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말할 수 있으랴?
9. “성부”란 말이 발해진 순간, 그 창조력이 도처로 흘러들면서 만물을 보존하며 생명를 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낱말을 한 번 발하는 것만으로도 그분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순수하고 아름답고 항상 새롭게 유지하기에 족한 것이었다.
“성자”가 발해지자, ‘말씀’이신 분의 모든 업적들이 새롭게 정돈되어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면서 피조물의 선익을 위해 그들 자신을 내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령”이 발해지자, 만물이 사랑에 휩싸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사랑은 말이라도 할 듯 살아 있고 활동적이며 생명을 주는 사랑이었다. 하지만 누가 그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10. 나는 내 하찮은 정신이 영원한 지복에 잠겨 있음을 느꼈다.
그러자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나를 나 자신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시려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영광송’의 둘째 부분을 말하는 것이 어째서 너의 차례였는지 아느냐?
그것은 내 뜻이 네 안에 있으므로, 네가 땅을 하늘로 데려오는 것이, 그리하여
천상 주민들과 함께, 모든 이의 이름으로 ‘영원히’, 결코 끝나지 않을 영광을 주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었다.
11. 영원한 것, 결코 끝나지 않는 것은 오로지 내 뜻 안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고 내 뜻을 소유한 사람은 천상과 통교한다. 천상의 복된 이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처럼 천상 세계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에 참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