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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자료

중국 경제 황금시대는 끝났다

[이철호의 시시각각] 중국 경제 황금시대는 끝났다[중앙일보] 입력 2011.01.05 19:15 / 수정 2011.01.06 09:

 

중국 간쑤(甘肅)성의 왕샹(王祥) 동굴에는 작은 석순(石筍)이 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의 석회질이 쌓여 죽순처럼 굳어진 것이다. 과학잡지 사이언스는 “이 석순이 중국 역대 왕조의 수천 년간 흥망성쇠의 비밀을 풀었다”고 보도했다. 강우량이 많은 해에는 떨어지는 지하수가 풍부해 석순이 빨리 자란다. 가뭄이 들면 정반대다. 사이언스는 “석순을 연대별로 분석한 결과 당(唐)과 원(元), 명(明)나라는 수십 년씩 지속된 가뭄 끝에 멸망했다”고 결론지었다.

 1949년 장제스(蔣介石·장개석)가 중국 본토에서 쫓겨난 것도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때문만은 아니다. 국민당을 패퇴시킨 가장 큰 원인은 악성 인플레이션이었다. 국공 내전 기간 동안 물가상승률이 200만%를 기록했다. 민심이 돌아서면서 국민당은 군대와 노동자의 지지를 잃었다. 그나마 본토 화폐의 유통을 막고 별도로 관리한 대만의 인플레만 안정적이었다. 국민당이 대만에서 둥지를 튼 배경이다.

 어디 그뿐이랴. 1989년의 천안문(天安門) 사건도 마찬가지다. 중국사의 거장인 마리 클레르 베르제르(Marie Claire Bergere)가 접근하는 시각은 독특하다.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라는 일반적 상식과 달리, 중국의 유서 깊은 민중 저항의 연장선으로 이해한다. 경제 근대화의 성공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라 부작용에 의한 것으로 본다. 그녀는 “중국의 10년간 개혁·개방으로 고성장과 함께 물가불안과 사회불만이 누적됐다”며 “87~88년의 20%가 넘는 인플레가 민중 봉기의 결정적 구실을 했다”고 진단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면 왜 중국 공산당이 인플레에 그토록 예민한지 이해할 수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넘자 크리스마스 휴일을 틈타 기습적으로 금리를 올리기까지 했다. 중국에서 인플레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다. 과연 중국의 긴축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러나 승리를 장담하기 쉽지 않다. 우선 낮은 인플레와 저임금, 급증하는 해외수요(수출)에 의존해온 중국 경제의 황금시대가 끝물 조짐이다. 매년 두 자릿수 임금인상으로 저임금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낮은 인플레도 마침표를 찍었다. 전 세계가 차이나플레이션(중국발 인플레)에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흔들리는 것이다.

 부동산은 골치 아픈 문제다. 중국의 인기 드라마 ‘워쥐(蝸居)’는 달팽이집이란 뜻이다. 집을 마련하느라 젊은 처녀가 부자집 첩(妾)이 된다는 비극적 줄거리다. 유행어인 ‘팡누(房奴)’도 그렇다. 집의 노예라는, 주택대출금에 허덕이는 젊은 층의 체념이 깔려 있다. 사회 불만이 묻어나는 표현이다. 외부 환경도 중국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의 양적 완화로 풀린 엄청난 달러가 쓰나미를 이루고 있다. 중국은 위안화 가치 상승과 금리 인상 등 핫머니가 몰려들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중국은 지난 2년간 너무 많은 돈을 풀었고, 너무 많은 투자를 했다. 언제 과잉설비와 부실대출로 둔갑할지 모른다. 인플레를 막으려 금리를 시원하게 올리기도 힘들다. 위안화가 절상되면 수출이 치명상을 입기 때문이다. 중국은 “양약(洋藥)을 강요하지 말라”며 “우리식 처방으로 풀 문제”라며 자신감을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나라도 고속성장의 길을 일직선으로 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국 경제의 아슬아슬한 고공 줄타기도 예외일 수 없다.

 1994년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생산요소 투입이란 양적 확대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는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 경고했다. 4년 뒤 우리는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런 크루그먼이 요즘 “중국은 더 이상 수출 주도로 성장할 수 없다”고 예언했다. 중국이 한국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불길하다. 솔직히 한국만큼 차이나플레이션이나 차이나 리스크가 두려운 나라도 없다. 대중 교역(홍콩 포함) 비중이 30%를 넘는다. “한국을 한번 손봐야 한다”는 중국의 삿대질도 불안하다. 올해도 무사히 왕샹 동굴의 석순이 제대로 잘 자라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예감이 좋지 않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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