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수 평화방송 미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흠숭 하올 삼위일체이신 우리 주님,
1월 3일 수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수요일 오전 11시 30분에 평화방송 유튜브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오늘은 미사 끝난 후에 저의 전두엽 우뇌와 좌뇌에 대칭으로 앞이마 살갗 뼈, 머리카락 아래 양쪽 끝 뼈에 머물러 만져주시면서 빛의 생명을 주시어 다스려 주십니다. 이는 지금 저의 오른쪽 발바닥의 혈액 순환이 왼쪽 보다 잘되지 않습니다. 무거운 물건을 양손에 들고 계단을 오를 때에, 오른쪽으로 몸이 쏠리는 현상을 경험하였습니다. 최근에 두 번 넘어진 적이 있습니다. 두 번 다 오른쪽으로 넘어졌습니다. 그것도 치유하여 주시어 바로잡아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저의 오른쪽 측두엽의 안으로 들어와 머물러 시신경과 청신경, 그리고 말초 신경에 상처를 빛의 생명을 주시어 치유하여 주십니다.
오늘은 모처럼 오른쪽 측두엽 안에 들어와 머물러 만져주시면서 시신경, 청신경은 물론 말초 신경의 상처를 치유하여 주십니다.
이처럼
몸의 균형을 잡아주시고, 오른쪽 측두엽에는 전에도 흑백 영상으로 상처가 있는 그 위치를 두 개의 원이 합친 모양으로 동그란 작은 그 원을 보여주신 바 있습니다. 왼쪽으로부터 작은 원 두 번째 원은 조금 큰 원 마지막 세 번째 원은 두 개의 원이 합친 모양입니다.
오늘 이처럼 빛의 생명을 주시어 치유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못난 작은 이를
각별이 사랑하여 주시어, 이처럼 미사 끝난 후에 정신을 집중하여
성령님께서 다스려 주시는 그 내용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제가 성 삼위 하느님께 기도 드리는 순서대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내 온 마음 다 바쳐서 주를 경배하오리 나의 기쁨 나의 희망
오 주여 오소서 내 마음에.
머리를 약간 수그려 기도를 드립니다.
내 온 마음 다 바쳐서 주를 경배하오리 나의 사랑 나의 평화 오 주여
오소서 내 마음에. 눈에 눈물이 약간 맻힙니다.
일어서서,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미합니다. 하느님,하느님 뜻의 사랑과 평화를 동시에 주시니 하느님, 하느님 찬양합니다. 아멘
평화는 신성한 덕성으로 사람은 소유할 수 없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만이 평화를 소유하여 평화를 주십니다.
이 못난 작은 이도 하느님 뜻 안에서 살고 있으므로 루이사 피카레타에게 주신 그 평화를 저에게도 주신다고 믿습니다.
사랑과 평화 안에서 참 평화를 주시기를 청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그 평화 안에서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참 평화를
청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성장 과정을 기록하는 작은 고통을 받는 저에게 평화를 주시어, 전보다 고통을 덜 느낍니다.
이 기도가 끝난 후에 자연적 생명에 일용할 양식인 음식을 먹습니다.
음식과 함께 활동적 생명을 저에게 주십니다.
이 땅 위에
제 안에 머물러 계신 하느님의 뜻이 해의 빛과 열을 받아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성장한 조물 중에서 선택하여 음식으로 조리를 하여 먹습니다. 음식과 함께 활동적 생명을 주십니다.
활기차고 활력이 넘치는 생활을 하여
저의 생명 유지를 위하여,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왕성한 활동을 하여 활기차고 활력이 넘치는 완벽한 활동적 생명을 점점 더 주시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다스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뜻은 사람에게 봉사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 하느님 뜻 안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왕 노릇을 하며
멋대로 활동적 생명을
봤습니다.
이 못난 작은 이는 하느님 뜻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고한 ‘피앗의 나라’, 하느님이 완벽하게 다스리는 그 나라가 오며는 그 나라에는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사람만 생존함으로 그때 서야 비로소 하느님 뜻의 나라 안에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 뜻과 제 안에 계신 하느님 뜻이 지고한 ‘피앗’의 나라의 자녀들로부터 흠숭을 받으며 하느님의 뜻으로 봉사하여 주시는 완벽한 활동적 생명을 주시어 생활하게 하여 주십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 와 항상 영원히. 아멘.
몸을 90도로 굽히어 머리를 깊숙이 숙여 큰 경배를 하느님께 드립니다.
눈에 눈물이 맺힙니다.
성령님 눈물 감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찬미합니다. 사랑합니다. 찬양합니다. 아멘.
향주 삼덕을 확고하게 믿습니다. 그 믿음이 점점 더 굳건해집니다.
감사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상의 책 제20권 30장 1926년 11월 27일
한 사명의 어머니나 딸이 되는 조건.
일반 덕행들은 빛인 반면 하느님 뜻 성덕은 태양이고,
이 성덕의 기초는 예수 님의 인성이다.
1. 흠숭 하올 뜻의 품에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다정하신 예수님께 그분 능력의 하나를 쓰시어 지고하신 의지가 인류를 휘덮으시기를, 그리고 그들을 그 의지에 묶어 지고하신 의지의 첫 자녀들을 기르시기를 빌었다. 이는 그 의지 자신이 너무나 열망해 온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2. 그러자 내 지고한 선이신 분께서 나의 내면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르셨다.
“딸아, 어떤 사람이 특수한 사명을 받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어머니 또는 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다. 또 그 사명이 완수된 한 점에서 출발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어머니의 딸이라고 불릴 수 있다.
3. 참어머니는 자기 안에 잉태된 아기를 자기의 피로 기르며 고통과 희생을 참아 견디고, 필요하다면 아기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 내놓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아기가 그 모태 안에서 자라나 세상에 나오게 되면, 그때에는 사람들이 마땅하고 옳게도 그를 아들이라 부르고, 그를 낳은 여인을 어머니라고 부른다. 그러니 어머니가 되려면 먼저 모든 자녀들을 자기 안에 잉태하여 자신의 피로 길러내어야 하고, 자녀들의 행위는 바로 그들 어머니의 마음에서 태어나는 것이 되어야 한다.
4. 그런데, 딸아, 너는 내 뜻의 딸이 되도록 내 뜻 안에 잉태되었다. 그리고 내 뜻 안에서 길러졌으니, 내 뜻의 빛과 사랑이 피 이상으로 너를 기르면서 내 뜻의 방식과 성향과 활동을 네 안에 접목하여, 네가 만인과 만물을 싸안을 수 있게 하였다.
5. 이처럼 내 뜻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내 뜻이 너를 ‘내 뜻의 갓난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내 뜻의 작은 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내 뜻에 의해 태어난 사람만이 내 뜻의 자녀들을 낳을 수 있다.
그런고로 너는 내 뜻의 자녀들 세대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
6. 나는 “저의 예수님,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딸도 제대로 될 줄 모르는데, 어떻게 어머니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너에게서 그 자녀들의 세대가 오는 것이 마땅하다. 어떤 어머니가 그리도 많은 고통을 겪었느냐? 누가 사랑으로 생명을 잉태하여 자기에게서 자녀들의 세대가 태어나게 하려고, 무려 사십 년이 넘도록 침상에만 붙박여 지냈느냐? 그런 사람은 없다.”
7. 또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떤 어머니가 자기 태 안의 아기에게 생명을 주기를 원하면서 아기의 생각과 심장 박동과 활동을 전부 자기 안에 담고 이 모든 것이 다시 정돈되게 할 정도로 자신의 온 존재를 바쳤느냐? 그것도 오직 한 번이 아니라, 아기가 하는 행위
다 번번이 말이다? 그런 어머니는 없다.
8. 너는 네 안에 이 자녀들의 세대가 느껴지지 않느냐?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과 발걸음을 전부 내 뜻 안에 다시 정돈하려고 하나하나 따라다니면서? 그리고 그들이 내 뜻을 알고 내 뜻 안에 새로 태어나는 한, 그 각자에게 생명을 주고 싶어 하는 너 자신이 느껴지지 않느냐?
9. 네가 내적으로 행하며 겪는 모든 것은, 온전히 천상적인 그 생명을 기르고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여러 번 말하였다. 너의 사명은 위대한 것이며 이에 필적할 만한 것은 도무지 없으니, 최고도의 주의 집중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10. 그 후 나는 편지 한 통을 받고 무척 괴로웠다. 디 프란치아 신부님이 나의 ‘유년 시절 회상기’와 그 다음에 오는 것을 전부 인쇄에 부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통스러워하면서 사랑하올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의 사랑이시여, 저 사람들이 저에게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좀 보십시오.
11. 그들은 당신이 덕행들과 당신의 흠숭하올 뜻에 대하여 저에게 말씀하신 것을 알리는 일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저 자신에 대한 것도 인쇄에 부치려고 합니다. 그것은 제가 죽은 뒤에나 할 일이지 적어도 지금은 아닙니다. 저에게는 다만 이 당혹과 극심한 고통이 있을 뿐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아, 아닙니다.
예수님! 이 일에서도 당신의 거룩하신 뜻을 따를 힘을 저에게 주십시오.”
12. 그러자 예수님께서 힘을 주시려고 나를 양팔로 꼭 껴안으시고, 더없이 인자하신 음성으로 이르셨다.
“딸아, 그렇게 너무 괴로워하지 마라.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성덕들은 영혼 안에 형성되는 작은 빛들이다. 이 빛들은 성장하거나 쇠퇴하거나 소멸되기 쉽다.
13. 그러므로 사람이 아직 현세에 살아 있는 동안, 즉, 빛이 소멸되지 않는 후세 삶으로 건너가기 전에, 그것을 인쇄에 부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만약 그 빛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14. 그 반면에 내 뜻 안에서 사는 삶이란 성덕은 하나의 빛이 아니라 태양이다. 그러므로 빛이 약해지거나 소멸되는 일은 겪지 않는다. 누가 태양에 손을 댈 수 있느냐? 누가 태양에서 단 한 방울의 빛이라도 가져갈 수 있느냐? 아무도 그럴 수 없다.
15. 또 누가 그 열을 단 한 톨만큼이라도 식힐 수 있느냐? 아무도 그럴 수 없다. 누가 그것을 그것의 자리에서 - 그것이 온 땅을 다스리며 지배하는 그 높은 자리에서 천분의 일만큼이라도 아래로 내려가게 할 수 있느냐? 아무도 그럴 수 없다.
16. 만일 내 ‘지고한 피앗’의 태양이 없다면, 나는 너의 그 ‘회상기’가 인쇄에 부쳐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서두르고 있다. 태양이 행할 수 있는 선을 빛이 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빛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설령 드러나 보인다고 해도 별로 대단한 선이 아니고, 떠오를 허락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대단한 해악이 되지는 않는다.
17. 이에 반하여 태양이라는 선은 만물을 싸안고, 만인에게 선을 행한다. 그러니 되도록 일찍 떠오르게 하지 않으면 큰 해악이 되고, 하루 일찍 떠오르게 하면 큰 이익이 된다. 실제로 햇빛이 환한 낮이 생산할 수 있는 좋은 것들에 대하여 누가 다 말할 수 있겠느냐?
18. 내 영원한 뜻의 태양은 훨씬 더 그러하다. 이 태양이 늦게 뜨면 뜰수록 그만큼 더 많은 낮을 피조물에게서 앗아가고, 내 뜻의 태양에게서도 앗아가는 셈이 된다. 그 광선들을 천상 아버지의 나라 안에 억류해 둔 채 말이다.”
19. 그러나 예수님의 그 모든 말씀에도 불구하고 내 괴로움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하찮고 무가치한 내 존재가 - 이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마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그대로 매장되어야 할 내 존재가 - 그 수가 얼마인지도 모를 사람들의 눈앞에 놓이고 그들의 손에 넘어가리라는 것을 생각하자, 마음이 침통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 야단났다! 야단났다! - 이 무슨 난처한 일이람?’
20.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에 사랑 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 나타나셨는데, 반듯이 누우신 모습이었다. 그분의 거룩하신 인성이 내 작고 하찮은 영혼 안에서 기초 노릇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분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21. “딸아, 마음을 풀어 놓지 마라.
네 안에 있는 ‘영원한 피앗의 나라’의 기초는, 내 발걸음과 내 활동, 내 뜻의 영예를 위한 사랑으로 고동치는 내 심장, 내 격심한 탄식과 내 뜨거운 눈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네게 보이지 않느냐? 나의 삶 전체가 네 안에 있으면서 그 기초를 이루고 있다.
22. 그러므로 이토록 굳건하고 거룩한 기초 위에서 너의 작은 활동을 방심 상태로 하거나 지고하신 의지 안의 네 순례를 흐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아니다, 아니다, 딸아. 네 안에 그런 것이 있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두 려워하지 마라. 너는 내 뜻의 태양 속에 파묻힐 것이다. 누가 너를 내 뜻보다 더 잘 숨겨,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할 수 있겠느냐?
23. ‘지고한 피앗의 태양’이 매우 잘 보살펴 줄 것이니, 그 결과 네 영혼의 작은 등불이 내 뜻의 광선들에게 둘러싸이고, 내 뜻의 태양이 네 영혼의 등불을 그 자신 안에 숨겨 간직하는 한편, 네 영혼 안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네가 네 예수를 흐뭇하게 하려면, 평화로이 머물러 있어라.
무엇이든지 다 내게 맡기면, 내가 모든 것을 돌보아 주겠다.”
천상의 책 제20권 31장 1926년 11월 29일
종들의 종노릇을 하게 된 왕의 비유.
인간이 매사에 하느님 뜻의 도움을 받을 때.
1. 늘 하듯이 흠숭하올 뜻에 계속 나 자신을 맡기고 있노라니, 모든 조물이 눈앞에 나타나 보였다. 큰 것이든 더없이 작은 것이든 그 모든 조물 안에는 지고하신 뜻이 승리자로 개선하시어 빛과 원초적 생명으로서 다스리고 계셨다. 너무나 큰 매력과 질서, 드문 아름다움과 조화가 그들 가운데에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을 다스리는 뜻이나, 그들 안에 들어가서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그들을 묶는 뜻이나, 하나의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2. 내가 그 광경을 보며 놀라워하고 있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경탄을 중단시키며 이르셨다.
“딸아, 내 뜻은 각 조물 안에 활동적인 생명으로 남아 있었다. 완전한 승리를 거두어 아무 거리낌 없이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내 뜻은 태양의 빛과 열의 활동적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늘에서는 내 뜻의 무한성의 활동적 생명과 내 뜻이 만든 다양한 작품들의 활동적 생명을 가지고 있고, 바다에서는 내 뜻의 능력과 정의의 활동적 생명을 가지고 있다. (“My daughter, my Will remained as operating life in each created thing, in order to dominate freely with Its full triumph. So, It has the operating life of the light and heat of the sun, the operating life of Its immensity and of the multiplicity of Its works in the heavens, the operating life of Its Power and of Its Justice in the sea.)
3. 사실, 내 뜻은 피조물의 뜻과 같지 않다. 피조물은 일을 하고 싶어도 손이 없으면 못하고, 걷고 싶어도 발이 없으면 못 걷는다. 또 벙어리이거나 소경이면, 말을 못하거나 아무것도 못 본다. 그 대신 내 뜻은 모든 행위들을 단일 행위로 한다. 이를테면 일을 하면서 걷는다. 또 정신을 집중해서 보는 행위를 하면서 동시에 말하는 것에 온통 주의를 기울인다. 그런데 어찌나 유창한 능변인지 이에 필적할 만한 이는 아무도 없을 정도다.
4. 내 뜻은 또한 요란한 천둥소리로, 번쩍 하는 번갯불로, 휘파람 비슷한 소리를 내는 바람으로, 바다의 드센 파도소리로, 작은 새의 지저귐으로 말한다. 어디서나 말한다.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천둥소리 같은 내 뜻의 목소리를 모든 이가 듣게 하려는 것이다.
5. ‘내 뜻아, 너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구나! 누가 너만큼 피조물을 사랑해 왔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 점에 있어서는 내 인성마저 너보다 한참 뒤처진다! 나는 네 안에 가려져 있고, 너는 시작도 끝도 없는 네 활동 안에 남아 있다. 너는 언제나 네 자리에 있으면서 모든 조물에게 생명을 준다. 인간에게 너의 생명을 가져다주게 하려는 것이다.
6. 오, 모든 사람이 만약 내 뜻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며 그들 모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안다면, 또 내 뜻이 생기 넘치는 숨이 어떻게 그 모두에게 생명을 주는지를 안다면, 그들은 정녕 내 뜻을 사랑하며 모두가 거기 내 ‘영원한 피앗’ 둘레에 빽빽하게 모여 있으련마는! 그리하여 그것이 그들에게 주고자 하는 생명을 받게 되련마는!
7. 하지만, 내 딸아, 내 지고한 의지가 모든 조물 안에 남아 다스리면서 그들 각자의 생명으로서 내 뜻 특유의 일을 해 온 까닭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내 뜻이 그 자신에게, 즉, 사람 안에서 생명과 통치권을 가질 내 뜻 자신에게 봉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뜻이 사람을 위하여 모든 조물을 창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8. 내 뜻은 왕궁을 지어 그 안에서 거처하며 나라를 통치하려고 여러 개의 방을 만드는 왕처럼 행동하였다. 왕은 수많은 등불을 달아 어둠이 궁 안에 깃들지 않게 하고, 생수가 솟는 작은 샘구멍들을 파고, 그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음악이 흐르게 하고, 쾌적한 정원들이 궁을 에워싸게 한다. 요컨대 왕은 자기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놓아두는데, 이는 그의 왕권에 어울리는 행동이다.
9. 왕인 그에게는 이제 종들과 대신들과 군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왕이 지배자가 되는 대신, 종들과 대신들과 군사가 주권을 잡는다. 그러니 그가 만든 것들이 그에게 봉사하지 않고 부당하게도 그의 종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보면서 왕은 너무나 큰 비통에 빠지지만 어쩔 수 없이 자기 종들의 종으로 처신하게 된다. 그가 만들거나 한 일이 그 자신에게 봉사하면 그를 종이라고 부를 수 없겠지만 말이다.
10. 내 뜻은 원래 사람들 안에 있는 그 자신에게 봉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내 뜻은 모든 조물 안에 그 자신을 고결한 여왕보다 더 고결한 것으로 남겨 두어, 사람 안에 있는 이 여왕의 왕권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게 하였다.
11. 사실, 내 뜻 외에는 내 뜻을 합당하게 섬길 수 있는 것이 달리 없었을 것이고, 내 뜻이 종들에 의해 섬김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내 뜻 자신의 고결하고도 거룩한 방식으로 내 뜻을 섬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2.이제 내 지고한 뜻의 크나큰 고통에 대하여 들어 보아라. 내 뜻의 딸인 네가 너의 어머니요 여왕이며 생명인 존재의 고통을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상 내 뜻은 창조된 만물 안에서 종들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 인간의 뜻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내 뜻의 다스림을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들을 섬기는 것, 그것도 오랜 세기에 걸쳐 그렇게 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13. 영혼이 자기 뜻을 행하려고 내 뜻에서 물러가면, 그때 그는 내 뜻으로 하여금 만물 안에서 종살이를 하게 한다. 그러니 여왕의 신분에서 추락하여 종노릇을 하고 있는 그의 고통이 얼마나 크겠느냐? 그처럼 모진 고통은 덜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14. 그럼에도 내 뜻이 종들을 섬기며 창조된 만물 안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은 내 뜻의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 뜻이 만든 것들이 그 ‘영원의 피앗’의 자녀들에게 봉사하게 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내 뜻으로 하여금 그들의 영혼 안에서 다스리게 할 그 자녀들은 내 뜻이 내 고결한 뜻 자신을 섬기게 할 것이니 말이다.
15. 아! 오로지 이 자녀들만이 그처럼 모질고 오랜 고통을 덜어 주리니, 오랜 세기에 걸친 종살이의 눈물을 닦아 주고, 내 뜻의 왕권을 되돌려 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 뜻을 알릴 필요가 있다. 내 뜻이 행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내 뜻이 전부이며 모든 선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리고, 내 뜻의 끊임없는 고통도 알려야 한다. 이 끊임없는 고통은 사람들이 내 뜻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지 않는 데서 오는 고통이다.”
16. 그 말씀을 듣고 나자, 내 마음에 지고하신 뜻의 고통이 매우 깊이 파고든 상태가 되었다. 그래선지 모든 조물이 계속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지극히 슬프게도 각각의 조물마다 그 고결하신 여왕이, 곧 지고하신 뜻이 베일로 가려진 채, 모든 인간의 종노릇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17. 이를테면, 그 지고하신 뜻은 태양 안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빛과 열을 주는 것으로 인간에게 봉사하시고, 샘물 속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인간의 목마름을 풀어 주려고 그들의 입술에 물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그들에게 봉사하시고, 바닷물 속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인간에게 물고기를 주시고, 땅 속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열매와 갖가지 먹을거리, 꽃들과 다른 많은 것들을 주는 것으로 그들에게 봉사하시는 것이다.
18. 말하자면 나는 지고하신 뜻이 만물 안에서 슬픔의 베일에 가려져 계신 것을 볼 수 있었다. 피조물의 종노릇을 하시는 것은 아무래도 그 품위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고하신 뜻의 여왕다운 고귀성이 배은망덕하고 비뚤어진 피조물의 종노릇을 하는 셈이기도 하니 그 귀한 신분에 합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 타락한 피조물은 지고하신 뜻의 종살이를 이용할 뿐, 이 뜻을 바라보거나 한 번이라도 ‘감사합니다.’ 하거나 그 어떤 보답도 한 적이 없었다. 종들에게는 적으나마 품값을 주는 것이 보통이지만 말이다. 그러니 ‘영원한 피앗’이 겪고 있는 그리도 모질고 오랜 고통에 대하여 내가 이해한 것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20. 그러나 내가 그 고통에 잠겨 있는 동안,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나를 껴안으시고, 정이 가득 서린 음성으로 이르셨다.
“딸아, 내 지고한 의지가 자기 안에서 다스리기를 거부하는 피조물의 종노릇을 하는 것은 정녕 비통하고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 의지는 다스려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 안에서 훨씬 더 큰 영광과 행복을 느낀다.
21. 네 안에 있는 나의 의지를 보아라. 너에게 봉사하게 되어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느냐! 그것은 네가 글을 쓰는 동안에도 네 안에 임해 있다. 내 의지에 대하여 알리는 글을 쓰도록 네 손을 잡고 인도하는 것으로 봉사하면서 이를 영예와 행복으로 여기는 것이다.
22. 또한 내 의지 자신의 거룩함을 네 정신 안에 두어, 네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내 지고한 의지에 관한 개념과 용어와 가장 좋은 예(例)를 주려는 것이요, 사람들 가운데에 길을 내어 내 의지의 나라를 세우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의지는 너의 시력을 도와 네가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하고, 너의 입을 도와 말씀을 먹여 주고, 너의 심장을 도와 바로 내 의지로 고동치게 한다.
23. 그런즉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느냐! 너에게 봉사하는 것은 내 의지의 행복이다. 왜냐하면 내 의지가 (네 안의) 내 의지에게 봉사하고, 그 자신의 생명을 형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그 자신에 대한 지식과 그 자신의 거룩함에 봉사하고, 그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24. 내 뜻은 또 네가 기도하는 동안에도 네 안에 임해 있으면서 너로 하여금 내 뜻 안을 날아다니게 하고, 내 뜻의 행위를 하게끔 하며, 내 뜻의 재산을 소유하게 하는 것으로 네게 봉사한다. 내 뜻의 그와 같은 봉사 방식에는 영광과 승리와 지배력이 있다. 내 뜻은 따라서 영혼이 이 뜻의 봉사를 모든 일 속에서 완전히 받고자 하지 않을 때에만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