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영의 시시각각] 스티븐 호킹의 ‘창조하지 않는 신’ [중앙일보]
2010.09.07 00:3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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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론의 신은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이건 자식의 대학 진학을 위한 기도이건 관심이 없다. 이신론은 기독교나 유대교의 ‘이단’일 수는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무신론(無神論)은 아니다. 다윈·아인슈타인·칸트·워싱턴·링컨을 비롯해 이신론자로 분류되는 수많은 인물들이 서양 근대와 과학과 정치에서 큰 흐름을 형성해 왔다.
이신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창조마저도 하지 않는 신’을 상정할 수 있을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하느님은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主宰)한다고 믿어지는 초자연적인 절대자”다. 신이 창조도 주재도 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신은 오로지 ‘초자연적인 절대자’로서만 남는다.
신과 창조를 분리하는 내용이 포함된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라는 책이 오늘 미국에서 출간된다. 스티븐 호킹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와 레너드 믈로디노프 캘리포니아공대 교수가 책의 저자다. 호킹 박사는 현존 최고 우주물리학자, 21세기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불린다. 영국 유력지 ‘더 타임스’는 2일 책의 내용을 발췌해 소개하며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제목을 달았다. 호킹 교수가 1988년에 내논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는 900만 부가 팔렸다. 이런 전력이나 호킹 교수의 비중으로 볼 때 『위대한 설계』도 과학계·지성계·종교계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
파문은 이미 시작됐다. 성공회·가톨릭·유대교 등 종교계 인사들이 책의 결론을 비판했다. 미국·유럽의 주요 언론 중 일부는 호킹 교수가 우주 탄생에서 신이 한 역할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무신론으로 선회했다고 보도했다. 『시간의 역사』에서 ‘신의 마음’ 운운하던 그가 배신했다며 서운해 하는 신앙인들도 있다. ‘신은 곧 창조주’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오해다. 호킹 교수가 주장하는 것은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아니다.
호킹 교수의 주장에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 그가 가진 의문은 ‘종교적’인 의문이다. 『위대한 설계』에서 호킹 교수는 “무(無)가 아니라 유(有)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한다. 종교적으로는 “신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 “신이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 답일 것이다. 호킹 교수는 중력을 비롯한 ‘물리학 법칙들’이 자신이 던진 문제에 대한 답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호킹 교수는 이신론자로 분류되기도 한다. 호킹 교수는 자신이 의도한 바와는 무관하게 ‘창조하지 않는 신’이라는 이신론적인 테제를 던졌다.
『위대한 설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서양의 과학은 과학과 종교 사이의 창조적 긴장 관계를 통해 발전했다. 종교가 과학을 탄압한 역사적 사례도 있으나 과학의 발견은 신을 오히려 더욱 위대한 존재로 만들기도 했다. 종교는 과학자들에게 의욕과 투지를 불어넣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서양의 많은 과학자들이 ‘천지창조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과학에 몰두한다.
『위대한 설계』는 과학과 종교의 연결고리가 끊기지 않고 오히려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예시한다. 우주라는 유(有)가 무(無)에서 나왔다는 것과 우주에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관념은 결국 기독교·유대교의 믿음에서 나왔다. 하지만 호킹의 경우처럼 점점 많은 수의 과학자들이 삼위일체나 인격적인 신은 믿지 않는다. 그들에겐 과학의 법칙이 신이요 우주가 곧 신이다. 그들의 과학 활동에는 강한 종교성이 발견된다.
우리나라는 기술 강국에서 과학 강국으로 발돋움하려 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과 사회와 개인의 호응이 필요하지만 과학과 종교 간의 창조적 긴장도 필요할 것인가. 『위대한 설계』가 던지는 질문이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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