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에서 스티브 잡스가 나오려면
중앙일보 | 정지훈 | 입력 2011.02.28 00:18 | 수정 2011.02.28 00:23
[중앙일보 정지훈]
정지훈관동대 의대 명지병원 융합의학과 교수
췌장암을 앓았던 스티브 잡스가 세 번째 병가(病暇) 중이다. 얼마 전 내셔널 인콰이어러라는 주간지에서 6주밖에 못 산다는 이야기와 함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고, 백악관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에릭 슈밋, 마크 저커버그 등 유명 IT CEO들과 저녁을 함께하는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머리카락 등의 상태로 보았을 때 건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엔지니어라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열정을 전파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예술적인 감각과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능력 등을 갖추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그의 창조적인 능력은 오늘날 꼭 필요한 미래형 인재의 롤 모델로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인지 2010년 스티브 잡스는 우리나라의 교육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쳐, 소위 '스티브 잡스 육성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과거처럼 천편일률적인 형태의 전문가를 양성하기보다는 기술기업의 전략을 책임질 수 있는 실무능력과 전문성 등을 갖춘 인재를 기술경영 전문대학원 등의 고등교육을 통해 양성한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은 육성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런 인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기업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치고 올라올 수 있으며, 최소한 왕따를 당하거나 불이익만 당하지 않도록 도와준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다시 말해 환경과 분위기, 철학의 문제라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의 대성공은 우리나라 기업과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본적으로 근면한 국민성과 높은 교육수준을 바탕으로 대기업이 앞장서고 중소기업들이 뒤를 받치는 형태의 경제성장을 굉장히 단기간에 이뤄냈다. 그러다 보니 사고방식이나 철학, 경영과 사회 분위기 모두가 지나치게 생산수단의 소유와 자본에 집중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런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고 앞으로 미래를 읽어내는 창조적인 인재와 이런 인재들이 커갈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못한다면 결국 미래를 주도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안겨준 것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미래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본다.
다소 엉뚱하고 독특한 사람들을 보듬어 안고, 그들의 성공을 도와주며, 여러 기업체와 사람들의 협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문화를 하루 빨리 받아들여 기존의 우리나라 발전을 이끌어낸 장점과 융화시키는 노력을 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세계적인 혁신기업이 나오지 않을까.
정지훈 관동대 의대 명지병원 융합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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