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개방과 경쟁을 통한 도약
2011년 3월 8일 김 현 종
現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
前 대한민국 통상교섭본부장
FTA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특히 한미FTA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협상과정에서 표출되었던 강력한 반대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아직도 한미FTA에 대하여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때에 당시 협상을 총지휘하고 협정을 체결한 장본인으로서 한미FTA와 관련한 여러 가지 배경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먼저 당시 국제 정세와 국내 상황이 한미FTA를 요구하고 있었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적으로는 성장잠재력이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아래에서 10년 이상 정체되어 있었고 청년실업률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미래 노동인구의 감소도 성장에 장애요소가 되어 가고 있었다.
과학기술 수준에서도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이고, 중국 등 신흥개발국들은 계속 치고 올라오는 양상이었다.
그야말로“샌드위치”위기를 맞고 있었다.
미래 한국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경제의 획기적인 도약이 필요했고, 우리나라의 통상수장으로서 이를 위해 우리나라가 어떤 통상정책을 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WTO의 다자협상을 통해 무역자유화에 대응하면 되지 굳이 양자 FTA를 체결하는 전략이 필요하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다자협상은 쉽게 진행될 것 같지 않았다.
150개가 넘는 국가들이 서로의 이해득실을 따져 가면서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냥 멍청히 다자협상에 목을 매고 있을 수는 없었다.
더욱이 다자협상은 관세인하 측면에서 선진시장이 신흥개발국보다 불리한 점이 많이 있다.
다자주의에 의존하기 보다는 양자간 FTA를 서둘러 체결하여 다자주의를 통해 얻을 수 없는 구체적인 이익을 선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외교안보상황이 한미 FTA를 더욱 필요로 하고 있었다.
당시 북핵 위기를 맞아 우리나라는 "북핵 Discount"라는 불리한 취급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경제에 큰 타격을 받았다.
한미 FTA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여 북한에 대한 우리의 외교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되었다.
근대사를 보면 우리나라는 패권에 관심 있는 주변의 대륙 및 해양 세력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임진왜란 이후로 극도로 폐쇄적인 외교를 펼쳐 온 조선은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이 동양에서 개항을 요구하며 불평등조약을 체결할 때까지도 세계흐름과 패권국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서양 열강의 침략에서부터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기까지 조선과 대한제국은 너무나 오랫동안 국제흐름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하였다.
FTA는 이제 필요불가결한 이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이 흐름에서 도태된다면 근대사를 통해 맛보았던 참담함을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될 것이다.
6,70년대 하루 14시간 이상 일해야 했던 여공들, 근로자, 기업인들, 중동의 사막에서 일했던 현장 건설노동자들, 월남전쟁에 파병되었던 군인들, 독일에 간 간호사와 광부들, 독재 타도를 외치던 민주주의 세력들, 이들의 땀과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고 우리의 미래세대에 살기 좋은 사회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지금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족하는 것은 개인에게는 미덕이 될 수 있으나 나라의 경우에는 미래세대에 대한 일종의 직무유기이다." 그래서 나는 미국을 포함한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FTA는 하려고 마음먹으면 여러 나라와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것이 유리하다.
촘촘한 FTA 그물망을 통하여 우리나라는 무역에 있어서 세계로 가는 전초기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한미 FTA는 물론이고 한EU FTA까지 비준되면 우리나라는 세계 양대 경제권을 연결하는 동아시아 FTA 허브가 될 것이다.
동시다발적 FTA 추진이 좋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한미 FTA와 한EU FTA를 둘러싼 미국과 EU의 선점 경쟁에서 볼 수 있듯이 동시다발적 FTA는 시너지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Global Standard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자기만의 기준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으면 Global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되었다.
1996년 유통업 개방과 1998년 미국과의 항공자유화협정도 많은 우려 속에 진행되었지만. Global Standard를 받아들임으로써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지금은 더욱 견고한 실적을 내고 있다.
유통업의 경우 개방 후 이마트가 국내125개, 중국 25개의 점포를 열고 높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런 경쟁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진출했던 월마트와 까르푸를 신세계와 이랜드가 각각 인수하였다.
항공시장의 경우에는 미국의 Northwest나 United Airlines와 같은 거대 항공사에 다 망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항공사가 미주노선에서 여객 93%, 화물 64%를 점유하고 있다.
이러한FTA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통치권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노대통령은 "한국이 개방을 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개방을 하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 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
나는 우리나라 통상정책의 최종 목표점은 통일된 한반도라고 생각한다.
한반도에 뿌리를 둔 대한민국 공동체가 세계 속에 견고히 자리매김하고 이것을 발판으로 다음 세대에 강건한 국가를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미FTA에 그친다면 우리나라는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미국에 끌려 다니게 되어 우리의 자주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FTA 로드맵은 통일을 지향해야 하며, 이러한 차원에서 남북 FTA는 통일 한국으로 가는 단초가 될 것이다.
독일 통일이 영국과 프랑스의 저항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독 지도자들의 강력한 의지와 효율적인 외교, 그리고 미국과 소련의 대타협으로 성사될 수 있었듯이 우리의 통일 문제도 워싱턴, 북경, 동경 및 모스크바 간 협상과 타협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결정되느냐 불리하게 결정되느냐는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의 능력과 의지, 대외정책의 방향에 좌우될 것이다.
직접 협상을 경험해보니 미국은 세 가지의 협상전략상 특징을 나타냈다.
첫째로는 마지막 협상은 반드시 미국에서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마감일을 눈속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특징은 추가협상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추가협상이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못 박은 바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통상교섭본부장직을 떠난 뒤 작년 말에 추가 협상이 있었다.
패권국은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다.
힘의 논리가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우리나라는 지금 선진국으로 진입하느냐 아니면 아르헨티나처럼 쇠락의 길에 접어드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쇄국정책을 잘못 선택하여 국운을 망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미래 한국을 먹여 살리고 후손들에게 살기 좋은 사회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문을 열고 주저 없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개방과 경쟁을 통한 도약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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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2011년 3월 8일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17회 포럼에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이상은 김현종 사장이 직접 작성해 보내주신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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