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섭취하는 자연적 생명의 일용할 양식인 음식에 조화로운 활동적 생명을 주시고 다스려 주시어 저의 영과 몸이 성장하고 건강해집니다
10월 5일 목 평화방송 미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흠숭 하올 삼위일체이신 우리 주님,
10월 5일 목요일 연중 제26주간 평화방송 유튜브 미사에 오전 11시 40분에 참례하였습니다.
오늘 미사 참례하기 전에 힘들게 배변을 하였습니다.
힘이 들더라도 배변 요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실행하여 배변이 이루어졌습니다.
아주 단단한 동글동글한 것이 뭉쳐서 나왔습니다.
오늘 미사에서 성령님께 위임하여 미사 중에 저의 생명을 다스려주시는 그 강도가 약하여 또는 약하게 느껴저
미사 중에 사제가 성체 성사 축성 기도를 할 때, 틈새 기도를 더욱 집중하여 드리고, 또 오늘도 미사 통상문 기도를 사제가 기도드릴 때에 저도 눈을 감고 사제와 함께 정신을 더욱 집중하여 기도를 드리는 것을 계속하였습니다.
그 영향인지 미사가 다 끝난 후에 저의 입안이 아주 건조하였습니다. 이는 미사 중에 다스려주신 성과로 장액성 침이 상처가 있는 장기, 직장 에스상 결장 콩팥에 충분하게 보내주시어, 저의 입안이 상대적으로 건조하여 진 것입니다. 소변을 자주 보는 것은 피가 온몸을 순환하여 양쪽 콩팥에서 그 피를 걸러 주어 나온 불순물을 오줌으로 방광에 보내줍니다.
오늘도 미사 전에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미사가 다 끝난 후에 시간이 좀 지난 후에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또 보았습니다.
피를 걸러주어 만들어진 그 오줌의 양도 적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저의 느낌으로는 저의 유전인자 죄의 상처를 빛의 생명을 주시어 치유하여 주시고 새 생명을 주시어 태초의 생명인 영원한 생명으로 점진적으로 질서와 조화와 균형에 따라 되돌려주신 성과가 이루어자기 시작한 느낌입니다.
미사 중에 이 못난 작은이도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를 느끼면서 미사통상문 기도에 더 집중이 이루어 졌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에 귀 안에 내이의 조직의 건조한 기관에 장액성 침을 보내어 치유하여 주실 때에도
왼쪽 귀 안에 건조한 기관에 장액성 침을 보내어 부드럽게 그 고막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었습니다.
오늘 평화로운 마음으로 온 마음 다 바쳐서 그 성과에 감사를 드리며 기도로 드립니다.
내 온 마음 다 바쳐서 주를 경배하오리 나의 기쁨 나의 희망 오 주여오소서 내 마음에.
내 온 마음 다 바쳐서 주를 경배하오리 나의 사랑 나의 평화 오 주여 오소서 내 마음에.
눈물이 약간 맺힙니다.
이어서 가장 제가 오랫동안 기도를 드리어 눈물 감흥을 많이 주시었던 마침 영광 송 기도를
온마음 다 바쳐서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를 제 가슴 안에 듬뿍 담아 그 감사를 드리면서 힘차게 마침 광송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몸을 90도로 굽히어 머리를 깊숙이 숙여 하느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눈에 눈물이 약간 또 고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찬미합니다. 하느님 찬양합니다. 아멘.
하느님 뜻의 사랑과 하느님 뜻의 평화, 참 평화를 주시어. 사랑과 평화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으로부터 신성한 덕성인 참평화를 받으면서 평화로운 마음, 평온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사랑과 평화 안에서 기도를 드린 후 기도가 끝나면, 자연적 생명의 일용할 양식인 음식을 먹습니다.
그 음식을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피조물과 조물 중에서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그 많은 것 중에서
조화롭게 선택하신 다양한 활동적 생명을 저에게 주십니다.
자연적 생명의 일용할 양식인 이 음식을 먹을 때 활동적 생명을 주시어. 저의 생명을 유지하여 주십니다. 하느님 뜻 안서 사는 저에게는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 내 뜻인 조화가 가득한 활동적 생명을 주십니다.
자연적 샘명의 일용할 양식인 이 음식을 섭취하여 저의 생명을 유지 합니다. 활동적 생명을 충분하게 받아 왕성한 생명 활동을 하여 활기차고 활력이 넘치는 의욕적인 생활을 하여 작은 고통을 이기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느님 뜻의 사랑과 하느님 뜻의 평화 참평화를 받겠습니다. 사랑과 평화 안에서 기도드려 평화로은 마음으로 평온하게 차분하게 음식을 섭취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활동적 생명을 받겠습니다. 조화롭고 풍부한 활동적 생명을 점점 더 저에게 주시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 와 항상 영원히 아멘.
몸을 90도로 굽히어 머리를 깊숙히 숙여 하느님께
큰 경배를 드립니다.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성령님 눈물 감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 찬양합니다. 눈물 감응은 성삼위 하느님에 대한 믿음, 희망, 사랑을 더욱더 확고하게 굳건하게 주십니다. 감사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의 평화 참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 사랑합니다.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습니다.
천상의 책 제20권 31장 1926년 11월 29일
종들의 종노릇을 하게 된 왕의 비유.
인간이 매사에 하느님 뜻의 도움을 받을 때.
1. 늘 하듯이 흠숭하올 뜻에 계속 나 자신을 맡기고 있노라니, 모든 조물이 눈앞에 나타나 보였다. 큰 것이든 더없이 작은 것이든 그 모든 조물 안에는 지고하신 뜻이 승리자로 개선하시어 빛과 원초적 생명으로서 다스리고 계셨다. 너무나 큰 매력과 질서, 드문 아름다움과 조화가 그들 가운데에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을 다스리는 뜻이나, 그들 안에 들어가서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그들을 묶는 뜻이나, 하나의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2. 내가 그 광경을 보며 놀라워하고 있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경탄을 중단시키며 이르셨다.
“딸아, 내 뜻은 각 조물 안에 활동적인 생명으로 남아 있었다. 완전한 승리를 거두어 아무 거리낌 없이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내 뜻은 태양의 빛과 열의 활동적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늘에서는 내 뜻의 무한성의 활동적 생명과 내 뜻이 만든 다양한 작품들의 활동적 생명을 가지고 있고, 바다에서는 내 뜻의 능력과 정의의 활동적 생명을 가지고 있다.
3. 사실, 내 뜻은 피조물의 뜻과 같지 않다. 피조물은 일을 하고 싶어도 손이 없으면 못하고, 걷고 싶어도 발이 없으면 못 걷는다. 또 벙어리이거나 소경이면, 말을 못하거나 아무것도 못 본다. 그 대신 내 뜻은 모든 행위들을 단일 행위로 한다. 이를테면 일을 하면서 걷는다. 또 정신을 집중해서 보는 행위를 하면서 동시에 말하는 것에 온통 주의를 기울인다. 그런데 어찌나 유창한 능변인지 이에 필적할 만한 이는 아무도 없을 정도다.
4. 내 뜻은 또한 요란한 천둥소리로, 번쩍 하는 번갯불로, 휘파람 비슷한 소리를 내는 바람으로, 바다의 드센 파도소리로, 작은 새의 지저귐으로 말한다. 어디서나 말한다.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천둥소리 같은 내 뜻의 목소리를 모든 이가 듣게 하려는 것이다.
5. ‘내 뜻아, 너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구나! 누가 너만큼 피조물을 사랑해 왔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 점에 있어서는 내 인성마저 너보다 한참 뒤처진다! 나는 네 안에 가려져 있고, 너는 시작도 끝도 없는 네 활동 안에 남아 있다. 너는 언제나 네 자리에 있으면서 모든 조물에게 생명을 준다. 인간에게 너의 생명을 가져다주게 하려는 것이다.
6. 오, 모든 사람이 만약 내 뜻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며 그들 모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안다면, 또 내 뜻이 생기 넘치는 숨이 어떻게 그 모두에게 생명을 주는지를 안다면, 그들은 정녕 내 뜻을 사랑하며 모두가 거기 내 ‘영원한 피앗’ 둘레에 빽빽하게 모여 있으련마는! 그리하여 그것이 그들에게 주고자 하는 생명을 받게 되련마는!
7. 하지만, 내 딸아, 내 지고한 의지가 모든 조물 안에 남아 다스리면서 그들 각자의 생명으로서 내 뜻 특유의 일을 해 온 까닭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내 뜻이 그 자신에게, 즉, 사람 안에서 생명과 통치권을 가질 내 뜻 자신에게 봉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뜻이 사람을 위하여 모든 조물을 창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8. 내 뜻은 왕궁을 지어 그 안에서 거처하며 나라를 통치하려고 여러 개의 방을 만드는 왕처럼 행동하였다. 왕은 수많은 등불을 달아 어둠이 궁 안에 깃들지 않게 하고, 생수가 솟는 작은 샘구멍들을 파고, 그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음악이 흐르게 하고, 쾌적한 정원들이 궁을 에워싸게 한다. 요컨대 왕은 자기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놓아두는데, 이는 그의 왕권에 어울리는 행동이다.
9. 왕인 그에게는 이제 종들과 대신들과 군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왕이 지배자가 되는 대신, 종들과 대신들과 군사가 주권을 잡는다. 그러니 그가 만든 것들이 그에게 봉사하지 않고 부당하게도 그의 종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보면서 왕은 너무나 큰 비통에 빠지지만 어쩔 수 없이 자기 종들의 종으로 처신하게 된다. 그가 만들거나 한 일이 그 자신에게 봉사하면 그를 종이라고 부를 수 없겠지만 말이다.
10. 내 뜻은 원래 사람들 안에 있는 그 자신에게 봉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내 뜻은 모든 조물 안에 그 자신을 고결한 여왕보다 더 고결한 것으로 남겨 두어, 사람 안에 있는 이 여왕의 왕권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게 하였다.
11. 사실, 내 뜻 외에는 내 뜻을 합당하게 섬길 수 있는 것이 달리 없었을 것이고, 내 뜻이 종들에 의해 섬김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내 뜻 자신의 고결하고도 거룩한 방식으로 내 뜻을 섬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2.이제 내 지고한 뜻의 크나큰 고통에 대하여 들어 보아라. 내 뜻의 딸인 네가 너의 어머니요 여왕이며 생명인 존재의 고통을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상 내 뜻은 창조된 만물 안에서 종들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 인간의 뜻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내 뜻의 다스림을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들을 섬기는 것, 그것도 오랜 세기에 걸쳐 그렇게 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13. 영혼이 자기 뜻을 행하려고 내 뜻에서 물러가면, 그때 그는 내 뜻으로 하여금 만물 안에서 종살이를 하게 한다. 그러니 여왕의 신분에서 추락하여 종노릇을 하고 있는 그의 고통이 얼마나 크겠느냐? 그처럼 모진 고통은 덜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14. 그럼에도 내 뜻이 종들을 섬기며 창조된 만물 안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은 내 뜻의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 뜻이 만든 것들이 그 ‘영원의 피앗’의 자녀들에게 봉사하게 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내 뜻으로 하여금 그들의 영혼 안에서 다스리게 할 그 자녀들은 내 뜻이 내 고결한 뜻 자신을 섬기게 할 것이니 말이다.
15. 아! 오로지 이 자녀들만이 그처럼 모질고 오랜 고통을 덜어 주리니, 오랜 세기에 걸친 종살이의 눈물을 닦아 주고, 내 뜻의 왕권을 되돌려 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 뜻을 알릴 필요가 있다. 내 뜻이 행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내 뜻이 전부이며 모든 선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리고, 내 뜻의 끊임없는 고통도 알려야 한다. 이 끊임없는 고통은 사람들이 내 뜻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지 않는 데서 오는 고통이다.”
16. 그 말씀을 듣고 나자, 내 마음에 지고하신 뜻의 고통이 매우 깊이 파고든 상태가 되었다. 그래선지 모든 조물이 계속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지극히 슬프게도 각각의 조물마다 그 고결하신 여왕이, 곧 지고하신 뜻이 베일로 가려진 채, 모든 인간의 종노릇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17. 이를테면, 그 지고하신 뜻은 태양 안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빛과 열을 주는 것으로 인간에게 봉사하시고, 샘물 속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인간의 목마름을 풀어 주려고 그들의 입술에 물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그들에게 봉사하시고, 바닷물 속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인간에게 물고기를 주시고, 땅 속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열매와 갖가지 먹을거리, 꽃들과 다른 많은 것들을 주는 것으로 그들에게 봉사하시는 것이다.
18. 말하자면 나는 지고하신 뜻이 만물 안에서 슬픔의 베일에 가려져 계신 것을 볼 수 있었다. 피조물의 종노릇을 하시는 것은 아무래도 그 품위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고하신 뜻의 여왕다운 고귀성이 배은망덕하고 비뚤어진 피조물의 종노릇을 하는 셈이기도 하니 그 귀한 신분에 합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 타락한 피조물은 지고하신 뜻의 종살이를 이용할 뿐, 이 뜻을 바라보거나 한 번이라도 ‘감사합니다.’ 하거나 그 어떤 보답도 한 적이 없었다. 종들에게는 적으나마 품값을 주는 것이 보통이지만 말이다. 그러니 ‘영원한 피앗’이 겪고 있는 그리도 모질고 오랜 고통에 대하여 내가 이해한 것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20. 그러나 내가 그 고통에 잠겨 있는 동안,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나를 껴안으시고, 정이 가득 서린 음성으로 이르셨다.
“딸아, 내 지고한 의지가 자기 안에서 다스리기를 거부하는 피조물의 종노릇을 하는 것은 정녕 비통하고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 의지는 다스려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 안에서 훨씬 더 큰 영광과 행복을 느낀다.
21. 네 안에 있는 나의 의지를 보아라. 너에게 봉사하게 되어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느냐! 그것은 네가 글을 쓰는 동안에도 네 안에 임해 있다. 내 의지에 대하여 알리는 글을 쓰도록 네 손을 잡고 인도하는 것으로 봉사하면서 이를 영예와 행복으로 여기는 것이다.
22. 또한 내 의지 자신의 거룩함을 네 정신 안에 두어, 네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내 지고한 의지에 관한 개념과 용어와 가장 좋은 예(例)를 주려는 것이요, 사람들 가운데에 길을 내어 내 의지의 나라를 세우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의지는 너의 시력을 도와 네가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하고, 너의 입을 도와 말씀을 먹여 주고, 너의 심장을 도와 바로 내 의지로 고동치게 한다.
23. 그런즉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느냐! 너에게 봉사하는 것은 내 의지의 행복이다. 왜냐하면 내 의지가 (네 안의) 내 의지에게 봉사하고, 그 자신의 생명을 형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그 자신에 대한 지식과 그 자신의 거룩함에 봉사하고, 그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24. 내 뜻은 또 네가 기도하는 동안에도 네 안에 임해 있으면서 너로 하여금 내 뜻 안을 날아다니게 하고, 내 뜻의 행위를 하게끔 하며, 내 뜻의 재산을 소유하게 하는 것으로 네게 봉사한다. 내 뜻의 그와 같은 봉사 방식에는 영광과 승리와 지배력이 있다. 내 뜻은 따라서 영혼이 이 뜻의 봉사를 모든 일 속에서 완전히 받고자 하지 않을 때에만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