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2.11.11. 이후 기도

◆11월 24일 금 아침 식사 전 보고와 기도 기도글 작성 게시에 대한 반성과 보완

 

 

11월 24일 금 아침 식사 전 보고와 기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흠숭 하올 삼위일체이신 우리 주님,

 

11월 24일 오전 6시 5분에 아침 식사 전 보고와 기도를 드립니다.

이 못난 사은이가

점점 아둔하여 저소 저의 컴퓨터가를 제가 제대로

그림 사진들을 너무 많이 복사를 하여 컴퓨터에 보관하고 있는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컴퓨터가 너무 과부하가 걸리어 요사이도

더 이상 내 자료 그림을 올리지 못하도록 하여 놓았습니다.

그것을 해소를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성장 과정을 기록하기 위한 기도를 녹음 을 하여 문장으로 바꾸어 바꾸는 작업을 매일 합니다.

매일 하는 것은 저에게 단점도 있습니다.

저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그 은혜와 은총들의 내용인 내용들을 책에 있게 천상의 책 인용을 하여

한 번에 문장이 아주 길어지도 지도라도 일목요연하게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기도글은 제가 작성한 것에 그러한 긴 문장들을 인용한 것까지 포함하면 아주 긴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 전에 기도를 드리면 빨리 기도를 끝내려는 마음이 항상 저 죄 안에서 자극을 합니다.

그러므로 녹음하여 주는 그 회사 입장에서도 저의 녹음을 보면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좀 불편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좀 과거 방법처럼

특히 천상의 책을 인용하는 것은 천상의 책 말씀이 점점 후반으로 갈수록 길어집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다 인용을 하여 작성을 하는 것이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매일 기도를 드리면 그 기도 매일 똑같아질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 저의 기도를 성령께서 들으시고 저에게 느낌으로 은연 중에 가르침을 주실 것이라고 주십니다.

그것을 기록을 하였다가 한꺼번에 나열하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과 금주 내에는 방법을 제가 작성하는 그 방법 작성하는 그 유형별로 검토를 하여 결정하려고 합니다.

지금 내사가 좀 잘 풀 안 풀릴 것도 같고 잘 풀릴 것도 같은

그 중간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의외로 잘 풀려가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과 우리 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님, 인성과 신성을 겸비하신 우리 주님과 또 성령님께서 저를 각별히 관심을 갖고 다스려 주시어 .이처럼 매사가 잘 풀릴 라고 저는 느낍니다. 오늘도 지금 배가 많이 고픕니다.

그러므로 제가 평소에 요사이 드리는 기도를 간단하게 기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성령님께서 가르침을 주신다고 주심으로 매일 기도를 드리는 그것도 소홀히 할 수가 없음을 없습니다.

내 온 마음 다 바쳐서 주를 경배하오리 - 머리를 수그리어 - 나의 기쁨  나의 희망 오 주여 오소서 내 마음에.

내 온 마음 다 바쳐서 주를 경배하오리 - 머리를 수그리어 - 나의 사랑 나의 평화 오 주여 오소서 내 마음에.  평화에서 눈물이 맺혔습니다.

이어서 매일 미사에 참여하여 마침 영광 송 기도를 드립니다.. 마침 영광송 은 저에게 크나 큰 은혜와 은총을 주신 것입니다.

내 온 마음 다 바쳤어 제 가슴에 가득 찬 감사하는 마음을 하느님께 바치면서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 원히 받으소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찬미합니다. 하느님, 하느님 뜻의 사랑과 평화를 주시는 크나 큰 은혜와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요사이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천상의 책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어 제가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일에 쪼들려 그 평화를 묵상하거나 정독하거나 그런 시간을 내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하느님 뜻에 사랑과 참 평화를 주시니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천상의 책을 읽지 않았다 면 못하였다 하면 평화는 항상 뱅뱅 돌기만 하고 그 뜻을 제가 몰랐을 것입니다.

천상의 책이 결정적으로 저에게 평화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여 주시었습니다.

사람의 덕성으로는 평화를 소유할 수 없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수도께서 신성의 신성인 덕성 하느님의 덕성을 루이사에게 피카레타에게 직접 주시었습니다.

이 못난 작은 이에게도 지금 직접 주시면서 다스려 주신다고 천상의 책 말씀을 믿습니 믿고 따릅니다.

사랑과 평화 안에서 평온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기도로 평화를 제가 충분히 이해하고 알아 소화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이 기도가 끝난 후에는 자연적 생명의 일용할 양식인 아침 식사를 먹습니다.

활동적 생명을

음식과 함께  저에게 주십니다.

제가 지금 하루 두 끼 식사만 하고, 하느님 뜻의 생명을 받아 아담에게 주었던 그 생명이 아담이 악의 유혹에 빠져 영원한 생명을 하느님께서 오히려 몰수하시는 지경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되돌려주시는 새 생명을 저에게 주십니다.

이 새 생명을 저에게 주시면서 활동적 생명을 제가 받아 저의 생명을 건강하게 그리고 활기차고 활력이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그 생명을 제가 받아 소유하게 하게 하여 주십니다.

활동적 생명을 제가 천상의 책을 읽고, 처음에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읽지를 않고 있다가 최근에 와서야 그 활동적 생명을 말씀하신, 24절이나 되는 긴 말씀을 제가 읽고 있습니다.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활동적 생명을 점점 이해하고 알아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활동적 생명을,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뜻과 이 땅의  제 안에 계신 하느님의 뜻, 두 뜻이 저에게 완벽하게 활동적 생명을 주시는 봉사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느님 뜻이 너무너무 희생을 하면서 봉사를 하여 주시는 그 크나 큰 은총을 제가 지금 받고 있습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몸을 90도로 굽히어 머리를 깊숙히 숙여 하느님께 큰 경배를 드립니다.

눈에 눈물이 맺힙니다. 일어서서, 성령께서 눈물 감응을 주시어 저에게 확고한 믿음을 주십니다.

그 믿음이 쌓여서 더욱더 굳건해집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발전과 성장이 없습니다. 저에게 이 모두를 주시는 하느님의 뜻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성령님 눈물 감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눈에 눈물이 바깥으로 흘러 내렸습니다.

 

천상의 책 제20권 31장 1926년 11월 29일

 

종들의 종노릇을 하게 된 왕의 비유.

인간이 매사에 하느님 뜻의 도움을 받을 때.

 

1. 늘 하듯이 흠숭하올 뜻에 계속 나 자신을 맡기고 있노라니, 모든 조물이 눈앞에 나타나 보였다. 큰 것이든 더없이 작은 것이든 그 모든 조물 안에는 지고하신 뜻이 승리자로 개선하시어 빛과 원초적 생명으로서 다스리고 계셨다. 너무나 큰 매력과 질서, 드문 아름다움과 조화가 그들 가운데에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을 다스리는 뜻이나, 그들 안에 들어가서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그들을 묶는 뜻이나, 하나의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2. 내가 그 광경을 보며 놀라워하고 있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경탄을 중단시키며 이르셨다.

“딸아, 내 뜻은 각 조물 안에 활동적인 생명으로 남아 있었다. 완전한 승리를 거두어 아무 거리낌 없이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내 뜻은 태양의 빛과 열의 활동적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늘에서는 내 뜻의 무한성의 활동적 생명과 내 뜻이 만든 다양한 작품들의 활동적 생명을 가지고 있고, 바다에서는 내 뜻의 능력과 정의의 활동적 생명을 가지고 있다.

 

3. 사실, 내 뜻은 피조물의 뜻과 같지 않다. 피조물은 일을 하고 싶어도 손이 없으면 못하고, 걷고 싶어도 발이 없으면 못 걷는다. 또 벙어리이거나 소경이면, 말을 못하거나 아무것도 못 본다. 그 대신 내 뜻은 모든 행위들을 단일 행위로 한다. 이를테면 일을 하면서 걷는다. 또 정신을 집중해서 보는 행위를 하면서 동시에 말하는 것에 온통 주의를 기울인다. 그런데 어찌나 유창한 능변인지 이에 필적할 만한 이는 아무도 없을 정도다.

 

4. 내 뜻은 또한 요란한 천둥소리로, 번쩍 하는 번갯불로, 휘파람 비슷한 소리를 내는 바람으로, 바다의 드센 파도소리로, 작은 새의 지저귐으로 말한다. 어디서나 말한다.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천둥소리 같은 내 뜻의 목소리를 모든 이가 듣게 하려는 것이다.

 

5. ‘내 뜻아, 너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구나! 누가 너만큼 피조물을 사랑해 왔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 점에 있어서는 내 인성마저 너보다 한참 뒤처진다! 나는 네 안에 가려져 있고, 너는 시작도 끝도 없는 네 활동 안에 남아 있다. 너는 언제나 네 자리에 있으면서 모든 조물에게 생명을 준다. 인간에게 너의 생명을 가져다주게 하려는 것이다.

 

6. 오, 모든 사람이 만약 내 뜻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며 그들 모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안다면, 또 내 뜻이 생기 넘치는 숨이 어떻게 그 모두에게 생명을 주는지를 안다면, 그들은 정녕 내 뜻을 사랑하며 모두가 거기 내 ‘영원한 피앗’ 둘레에 빽빽하게 모여 있으련마는! 그리하여 그것이 그들에게 주고자 하는 생명을 받게 되련마는!

 

7. 하지만, 내 딸아, 내 지고한 의지가 모든 조물 안에 남아 다스리면서 그들 각자의 생명으로서 내 뜻 특유의 일을 해 온 까닭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내 뜻이 그 자신에게, 즉, 사람 안에서 생명과 통치권을 가질 내 뜻 자신에게 봉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뜻이 사람을 위하여 모든 조물을 창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8. 내 뜻은 왕궁을 지어 그 안에서 거처하며 나라를 통치하려고 여러 개의 방을 만드는 왕처럼 행동하였다. 왕은 수많은 등불을 달아 어둠이 궁 안에 깃들지 않게 하고, 생수가 솟는 작은 샘구멍들을 파고, 그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음악이 흐르게 하고, 쾌적한 정원들이 궁을 에워싸게 한다. 요컨대 왕은 자기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놓아두는데, 이는 그의 왕권에 어울리는 행동이다.

 

9. 왕인 그에게는 이제 종들과 대신들과 군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왕이 지배자가 되는 대신, 종들과 대신들과 군사가 주권을 잡는다. 그러니 그가 만든 것들이 그에게 봉사하지 않고 부당하게도 그의 종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보면서 왕은 너무나 큰 비통에 빠지지만 어쩔 수 없이 자기 종들의 종으로 처신하게 된다. 그가 만들거나 한 일이 그 자신에게 봉사하면 그를 종이라고 부를 수 없겠지만 말이다.

 

10. 내 뜻은 원래 사람들 안에 있는 그 자신에게 봉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내 뜻은 모든 조물 안에 그 자신을 고결한 여왕보다 더 고결한 것으로 남겨 두어, 사람 안에 있는 이 여왕의 왕권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게 하였다.

 

11. 사실, 내 뜻 외에는 내 뜻을 합당하게 섬길 수 있는 것이 달리 없었을 것이고, 내 뜻이 종들에 의해 섬김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내 뜻 자신의 고결하고도 거룩한 방식으로 내 뜻을 섬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2.이제 내 지고한 뜻의 크나큰 고통에 대하여 들어 보아라. 내 뜻의 딸인 네가 너의 어머니요 여왕이며 생명인 존재의 고통을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상 내 뜻은 창조된 만물 안에서 종들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 인간의 뜻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내 뜻의 다스림을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들을 섬기는 것, 그것도 오랜 세기에 걸쳐 그렇게 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13. 영혼이 자기 뜻을 행하려고 내 뜻에서 물러가면, 그때 그는 내 뜻으로 하여금 만물 안에서 종살이를 하게 한다. 그러니 여왕의 신분에서 추락하여 종노릇을 하고 있는 그의 고통이 얼마나 크겠느냐? 그처럼 모진 고통은 덜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14. 그럼에도 내 뜻이 종들을 섬기며 창조된 만물 안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은 내 뜻의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 뜻이 만든 것들이 그 ‘영원의 피앗’의 자녀들에게 봉사하게 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내 뜻으로 하여금 그들의 영혼 안에서 다스리게 할 그 자녀들은 내 뜻이 내 고결한 뜻 자신을 섬기게 할 것이니 말이다.

 

15. 아! 오로지 이 자녀들만이 그처럼 모질고 오랜 고통을 덜어 주리니, 오랜 세기에 걸친 종살이의 눈물을 닦아 주고, 내 뜻의 왕권을 되돌려 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 뜻을 알릴 필요가 있다. 내 뜻이 행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내 뜻이 전부이며 모든 선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리고, 내 뜻의 끊임없는 고통도 알려야 한다. 이 끊임없는 고통은 사람들이 내 뜻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지 않는 데서 오는 고통이다.”

 

16. 그 말씀을 듣고 나자, 내 마음에 지고하신 뜻의 고통이 매우 깊이 파고든 상태가 되었다. 그래선지 모든 조물이 계속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지극히 슬프게도 각각의 조물마다 그 고결하신 여왕이, 곧 지고하신 뜻이 베일로 가려진 채, 모든 인간의 종노릇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17. 이를테면, 그 지고하신 뜻은 태양 안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빛과 열을 주는 것으로 인간에게 봉사하시고, 샘물 속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인간의 목마름을 풀어 주려고 그들의 입술에 물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그들에게 봉사하시고, 바닷물 속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인간에게 물고기를 주시고, 땅 속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열매와 갖가지 먹을거리, 꽃들과 다른 많은 것들을 주는 것으로 그들에게 봉사하시는 것이다.

 

18. 말하자면 나는 지고하신 뜻이 만물 안에서 슬픔의 베일에 가려져 계신 것을 볼 수 있었다. 피조물의 종노릇을 하시는 것은 아무래도 그 품위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고하신 뜻의 여왕다운 고귀성이 배은망덕하고 비뚤어진 피조물의 종노릇을 하는 셈이기도 하니 그 귀한 신분에 합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 타락한 피조물은 지고하신 뜻의 종살이를 이용할 뿐, 이 뜻을 바라보거나 한 번이라도 ‘감사합니다.’ 하거나 그 어떤 보답도 한 적이 없었다. 종들에게는 적으나마 품값을 주는 것이 보통이지만 말이다. 그러니 ‘영원한 피앗’이 겪고 있는 그리도 모질고 오랜 고통에 대하여 내가 이해한 것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20. 그러나 내가 그 고통에 잠겨 있는 동안,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나를 껴안으시고, 정이 가득 서린 음성으로 이르셨다.

“딸아, 내 지고한 의지가 자기 안에서 다스리기를 거부하는 피조물의 종노릇을 하는 것은 정녕 비통하고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 의지는 다스려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 안에서 훨씬 더 큰 영광과 행복을 느낀다.

 

21. 네 안에 있는 나의 의지를 보아라. 너에게 봉사하게 되어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느냐! 그것은 네가 글을 쓰는 동안에도 네 안에 임해 있다. 내 의지에 대하여 알리는 글을 쓰도록 네 손을 잡고 인도하는 것으로 봉사하면서 이를 영예와 행복으로 여기는 것이다.

 

22. 또한 내 의지 자신의 거룩함을 네 정신 안에 두어, 네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내 지고한 의지에 관한 개념과 용어와 가장 좋은 예(例)를 주려는 것이요, 사람들 가운데에 길을 내어 내 의지의 나라를 세우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의지는 너의 시력을 도와 네가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하고, 너의 입을 도와 말씀을 먹여 주고, 너의 심장을 도와 바로 내 의지로 고동치게 한다.

 

23. 그런즉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느냐! 너에게 봉사하는 것은 내 의지의 행복이다. 왜냐하면 내 의지가 (네 안의) 내 의지에게 봉사하고, 그 자신의 생명을 형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그 자신에 대한 지식과 그 자신의 거룩함에 봉사하고, 그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24. 내 뜻은 또 네가 기도하는 동안에도 네 안에 임해 있으면서 너로 하여금 내 뜻 안을 날아다니게 하고, 내 뜻의 행위를 하게끔 하며, 내 뜻의 재산을 소유하게 하는 것으로 네게 봉사한다. 내 뜻의 그와 같은 봉사 방식에는 영광과 승리와 지배력이 있다. 내 뜻은 따라서 영혼이 이 뜻의 봉사를 모든 일 속에서 완전히 받고자 하지 않을 때에만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