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톰
1. 바이욘 사원
2004년 12월 8일 수요일 아침 8시경에 앙코르 톰을 향하였다. 쾌청한 날씨 아주 관광하기
좋은 날씨다. 경내에 들어섰다. 키가 큰 나무들이 밀집되지 않은 적당한 간격으로 숲을 이
루고 있다. 오전에 우리가 관광할 앙코르 톰의 면적이 약45만평으로 여의도면적(89만여평)
의 반에 해당한다. 앙코르란 도시, 톰은 거대하다는 의미, 즉 거대한 도시라는 의미다.




앙코르 톰은 정사각형이며 한 변의 성벽은 3km, 검붉은 색 사암(砂巖)과 라테라이트 돌(紅
土石)로 성벽을 8m 높이로 쌓았다. 주위에는 넓이 약 100m의 해자(인공저수지-적의 침입
을 방지하기 위함)를 만들어 놓았으나 물이 없다. 자료를 준비하여 읽어보고 갔으나 앙코르
톰 남문을 향하자 약간 흥분이 된다. 다리양쪽에 코부라 머리조각을 한 석상(나가-Naga:
일곱 개의 머리가 있는 큰 뱀)이 앞에 서있고 뒤에 54개의 사람의 모양의 조각상이 남문까
지 일열로 서있다.(양쪽을 합치면 108개) 왼쪽은 신, 오른 쪽은 악마(yaksha-夜叉) 들 두
무리의 사람들이며 앞으로 다가올 갑작스러운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위하여 지키
고 서있는 것이라고 한다. 왼쪽은 문관 오른 쪽은 무관처럼 보인다. 남문 위에 사람 얼굴의
석상 4개가 사방을 향하여 바라보고 있다.

앙코르톰 정중앙에 자리 잡은 바이욘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재위1181-1218?) 의해 건축된
사원으로 전체 앙코르 톰, 와트 사원 중에서 최후로 건설된 것이다.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
어 있고 단일 사원 규모로는 제일 큰 앙코르 와트 사원 보다 약 100년 후에 지어 졌다. 이
사원을 불교사원으로 보는 이유는 1925년 벽에 새겨진 기록에서 관세음보살에 관한 내용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자야바르만 7세는 직계왕손이 아니며 1170년 경 참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왕이 되었다. 다른 왕족과 귀족들을 견제하기위하여 스스로를 관세음보살로 부각
시키려는 의도에서 이 사원을 건축한 것으로 추측한다. 그는 1200년대 초 베트남의 참파
국을 복속시켰고 태국 북부지역도 다스렸으며 라오스의 비엔티엔 부근에도 그의 비문이 발
견될 정도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그는 군사, 정치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닌 지도자로 앙코
르 왕국을 번영시킨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가 사망한 후에 종교는 다시 힌두교로 바
뀌고 국력은 쇠퇴하여 앙코르 왕조의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집트 피라밑, 중국 진
시왕의 만리장성 등 큰 역사(役事)는 백성들의 고통과 막대한 경제력의 소모가 수반하여 왕
조들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앙코르 왕조 역시 마찬가지다.

입구에 들어서면 머리3개의 코끼리에 올라탄 힌두신 인드라(천둥 번개의 신,비의 신)
가 있다. 바이욘은 3층 구조로 되어 있다. 1층은 8개의코부라 문이 있는 정사각형 구조로
되어 있고 2층도 정사각형이며 3층은 원형탑 구조로 되어 있다. 각층은 복잡한 회랑(복도)
과 문 별실들로되어 있어 둘러보고 나서도 전체 윤곽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회
랑의 길이가 총 1.2km나 되며 약 11,00여점의 섬세한 부조(양각의 조각작품)가 있다고 한
다. 더구나 54개의 탑에 216개의 큰 얼굴 조각상이 사면으로 조각되어 있어 위엄과 과장
과 과시가 동시에 느껴진다. 1층 사방의 회랑벽면에는 양각으로 새겨진 부조(浮彫)가 있다.


크기가 다른 사암바위돌을 연결하여 벽면을 만든 후에 그 위에 조각을 하였다. 벽면에는 참
족과의 전투장면이 많으며 그 당시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는 부조인 시장, 고기잡이, 닭싸움
등 생활의 모습, 곡예사 등이 등장하는 축제 모습 등이 있다. 조각들은 앙코르 와트의 조각에
비해 깊게 파져 있어 윤곽은 뚜렷한 편이나 묘사기법은 거칠어 보인다. 사원 구조상 앙코르
와트사원 부조보다 풍화작용을 많이 받았기 때문일까? 양각으로 새겨진 부조들은 예술적으로
도 높이 평가된다. 조각한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을 묘사한 기술이 돋보인다.









2층으로 올라갔다. 복도가 미로처럼 되어 있고 좁고 낮은 천정들이 연속되어 있어 다 둘러
보기가 힘들다.3층으로 올라갔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석상이 우리를 반긴다. 자비의 관
음보살이며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의얼굴인 석상은 바이욘 사원 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눈, 코,입술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존되어 있어 친근감을 느낀다. 입이 커 보인다.
이곳 미소짓는 불상앞에서 예불행사를 올려 관음보살과 자야바르만 7세를 숭상하도록 한것
같다


실제로 캄보디아 인들의 입이 크다. 신라의 석굴암 본존불 석가모니 상(751-774)이 떠오
른다. 처음 보았을 때 온몸에 전율을 느꼈고 영적으로(?) 강한 충격을 받았던 깨달음의 잔
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석굴암의 석가모니 조각 작품은 세계 최고의 불상 조각 작품이다.
우리는 심신의 모든 정기와 정성과 작가의 혼을 불어 넣어 하나의 위대한 작품을 남겼고
앙코르는 다작으로 불상의 여러 모양을 표현하였다. 사원에 수 많은 불상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힌두교의 다신 사상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인도네시아 족쟈카르타의 보로 부두르
(언덕에 세워진 승방-8세기에 건축,세계 7대불가사의에 넣기도함)사원을 보았을 때에도
수많은 불상이 사원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바이욘사원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미소짓는 불상도 여러개가 있다.앙코르 와트 사원은 잘 보전되어있는 데 앙코르톰은
보존이 잘 안된 이유가 무엇일까? 지형보다는 종교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힌두교로 다시
환원하여 불교사원에 관심이 줄어들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사원들의 규모가 커서 대충
중요한 것만 둘러보고 다음사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큰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goangkor.com.ne.kr에서 옮긴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