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송’은 그 의미를 생각하며 천천히
천상의 책 제19권 3장에서 루이사는 ‘예수님께 그분의 거룩하신 뜻을 이룰 은총을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영광송의 하느님의 뜻(의미)을 알려주시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아래에 천상의 책을 스캔 복사하여 올립니다.
신자들은 영광송을 할 때에 이 내용을 요약 함축하여 생각하며, 빨리하지 말고 천천히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상념(想念)도 빠른 속도로 전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약간 만 천천히 하더라도 이 요약 함축된 상념이 성삼위 하느님께 전달될 것입니다. 그러면 성삼위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천상의 책 제19권 3장 1926년 3월 2일
하느님 뜻의 진리에 대한 침묵은 무덤을 만들고, 이에 대한 표현은 그 진리의 부활을 이룩한다. 하느님 뜻을 소유한 사람은 천상과 통교하며, 천상 세계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에 참여한다.
1. 복되신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을 나타내 보이려고 마음을 여는 것이 어찌나 싫은지 아무것도 더 이상 알려지지 않도록 영영 입 다물고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토록 심한 부담감 때문에 다정하신 예수님께 이렇게 우는 소리를 하였다.
2. ‘오! 당신과 저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신다면 저는 정말 기쁘겠습니다. 너무나 큰 부담감에서 놓여나게 하실 것이니 말입니다. 제가 얼마나 꺼리는 일인지, 얼마나 애써 노력해야 그럴 수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3. 내가 그렇게 중얼대고 있었을 때,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걸음을 옮기시는 기척을 내시며 이르셨다.
“딸아, 너는 빛과 은총과 진리를 매장하고 싶으냐? 그렇게 네 예수에게 무덤을 마련해 주고 싶으냐?
어떤 진리에 대한 침묵은 그 진리를 매장하는 무덤을 만드는 반면,
이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그 진리의 부활을 이룩한다. 즉, 빛과 은총과 선을 다시 일으킨다.
진리에 대한 말은 '지고한 피앗'에서 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4. 말은 내가 ‘피앗’ 이라는 말로 모든 피조물을 창조했을 때에 그것의 신적인 영역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빚어낼 수 있었음에도 내가 ‘피앗’이라는 말을 쓰고자 했던 것은, 말 역시 신적인 기원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 말이 창조력을 내포하므로, 내게 속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말을 듣는 행운을 잡은 사람들에게 저 진리들을 전할 힘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5. 너에게는 더 강력한 이유가 있다. 사실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의 대부분은 내 지고한 뜻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원초적인 말일 뿐만 아니라 바로 ‘피앗’ 자신이다. 이 피앗이 창조사업에서처럼 다시 현장으로 들어가 내 뜻이 지닌 무한한 선을 알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드러내고 있는 모든 것에 매우 큰 힘을 주기에, 족히 영혼들 안에 내 뜻의 새 창조사업을 충분히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6. 그런데 네가 침묵으로 내 뜻에 무덤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면, 이것이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이 되겠느냐?”
7. 나는 덜컥 겁이 났고, 전보다 더 괴로운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이룰 은총을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그러자 격려해 주시기 위함인 듯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에 나를 붙여 안으시고 내 안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다.
8. 그때 하늘이 열리고, 모든 이가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를 일제히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다음은 내 차례였다. 그러므로 나는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하고 화답하였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말할 수 있으랴?
9. “성부”란 말이 발해진 순간, 그 창조력이 도처로 흘러들면서 만물을 보존하며 생명를 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낱말을 한 번 발하는 것만으로도 그분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순수하고 아름답고 항상 새롭게 유지하기에 족한 것이었다.
“성자”가 발해지자, ‘말씀’이신 분의 모든 업적들이 새롭게 정돈되어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면서 피조물의 선익을 위해 그들 자신을 내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령”이 발해지자, 만물이 사랑에 휩싸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사랑은 말이라도 할 듯 살아 있고 활동적이며 생명을 주는 사랑이었다. 하지만 누가 그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10. 나는 내 하찮은 정신이 영원한 지복에 잠겨 있음을 느꼈다.
그러자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나를 나 자신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시려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영광송’의 둘째 부분을 말하는 것이 어째서 너의 차례였는지 아느냐?
그것은 내 뜻이 네 안에 있으므로, 네가 땅을 하늘로 데려오는 것이, 그리하여
천상 주민들과 함께, 모든 이의 이름으로 ‘영원히’, 결코 끝나지 않을 영광을 주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었다.
11. 영원한 것, 결코 끝나지 않는 것은 오로지 내 뜻 안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고 내 뜻을 소유한 사람은 천상과 통교한다. 천상의 복된 이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처럼 천상 세계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에 참여하는 것이다.”
9절은 루이사님께서 영광송의 경험을 글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글의 표현은 말의 자세한 표현보다 아무래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이글을 읽으면서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깊이 생각하고 글의 한 소절을 읽고 눈을 감고 상상의 영상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다시 그 뜻을 생각해봅니다. 처음과 그 뜻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다시 눈을 뜨고 다음소절을 읽으면서 이런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글 전체가 암기가 됩니다. 암기가 되면 묵상하기가 편해지고 더욱 새로운 뜻을 발견하고 깨달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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