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씨엠립(태국에 의하여 점령된 곳이라는 의미-이런 의미의 지명을 계속 사용하는 것도 좀 이해어 려움)에서 북쪽으로 6km정도 떨어져있는 이곳 앙코르 유적지의 12월 날씨는 건기라 습도는 높지 않지만 섭씨 30도 전후의 고온이고 햇볕은 무척 따갑다. 점심식사후 호텔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오후 2시 부터 앙코르 와트 관광을 시작했다. 차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인공저수지(해자)의 규모가 작은 강처럼 보 여 큰 역사(役事)로 이루어졌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사원의 사방둘레를 인공저수지로 만들었으니 이 역 시 세계적인 것일 것이다. 우측으로 보이는 사원의 봉우리들과 넓게 옆으로 퍼져있는 건축물들의 규모가 커 보인다. 사원의 총면적(해자포함)이 2.1평방킬로미터(약 635천평-여의도 면적의 71%)나 된다고 한다. 입구에서 하차하여 다리를 건너서 사원을 향하였다. 입구에서 사원까지의 저수지의 폭은 200m이며 다리 의 길이는 230m이다. 바람 한점 없는 잔잔한 저수지 위의 천년 전에 만들어진 다리를 걷는 것으로 시작되 는 사원관광은 처음부터 우리를 즐겁게 한다. 연인과 함께 다리를 걸을 때 느끼는 즐거움처럼...


하늘에서본 앙코르 와트 - 인터넷 자료
앙코르는 크메르 어(산스크리트 어 계열)로 “도시 또는 수도” 와트는 태국어로 “사원”
을 뜻한다. 태국어가 사용된 것을 보면 1431년 태국의 아윳다왕조가 이곳을 점령하여
장기간 통치한 결과일 것이다. 1434년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기면서 이 곳의 주민들까지
떠나버려 비바람과 수목이 앙코르 톰 지역의 사원을 훼손시켰다. 양국간의 전쟁이 치열
했으며 태국으로부터 많은 조공을 받아 사원 건축에 사용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앙코르 와트 사원은 앙코르왕조의 수르야바르만 2세(1113~1150)에 의해서 건축된 힌두교
사원이다. 비슈누 신(維持의 신)을 모신사원으로 재위기간 37년 동안 이 사원을 심혈을 기
우려 건축하였다. 37년 동안에 이 거대한 사원을 완성하였다는 것도 불가사의한 점의 하나
다.

입구에서 바라본 앙코르 사원




다리에서 사원입구를 향하여 기념촬영

다리에서 바라본 서쪽회랑

사원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서쪽 인공저수지 - 넓어 보인다.
사원 입구에 들어서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압쌀라(춤의 여신)조각이다. 힌두교 3대신의
하나인 시바 신(파괴의 신)을 기쁘게 하는 압쌀라는 이 사원에만 약 1,700여개가 있다고 한
다. 같은 압쌀라가 하나도 없을 만큼 다양하게 표현했다니 그 정성과 노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서양여인들의 조각작품을 많이 보아서인지 압쌀라가 아름다운 미녀라고 느껴
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박한 동양인의 미소와 아름다운 몸매를 아시아의 작은 나라 캄보
디아의 장인들이 만들어 냈다는 것은 높이 평가된다.
앙코를 왕조시대는 남녀평등시대가 아니었을 터인데 압쌀라 부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 파괴의 신 시바가 여자를 좋아하고 춤을 좋아했나보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압쌀라의 춤이 아름다운 춤이라는 평도 받지 못하고 있다.압쌀라는 기쁨조인가?
그러나 힌두교의 창세신화 젖의 바다휘젖기(유해교반-乳海攪拌)를 보면 영원한 생명을 준
다는 암리타(감로수)를 얻기위해 신과 악마들이 치열한 싸움을 하다가 비슈누 신의 지시
대로 커다란 뱀 "바수키"의 몸을 밧줄삼아 젖의 바다를 젖는 것을 1000년동안 하였다.
이러한 과정중에 바다거품에서 천상의 무희 압쌀라,백마,사랑과 미의 여신 락슈미 등이
태어나고 마지막에 암리타를 끝내 얻게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크로노스가 아버지인 우라노스의 남근을 절단하여 바다에 던지자
남근 주위에 정액의 거품이 모여 그속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티테가 태어났다고 한다.
두 신화에서 압쌀라와 아프로티테는 다 같이 거품속에서 태어났다. 닮은 점이 있다.




입벌린 압쌀라

아프로디테
서쪽회랑(갤러리)으로 접어들었다. 힌두교 설화를 사암으로 된 벽에 양각으로 표현하였다.
힌두교 설화에 생소한 관광객들은 우선 답답함을 느낀다. 길이가 187m, 높이가 2m나 되는
벽에 연속해서 빽빽하게 들어찬 부조의 설명을 가이드가 대충 대충하고 넘어 가니 이해하기
도 어렵다. 아쉬운 것은 얕게 판 양각이어서 그림내용이 확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엄청난 크기의 조각작품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힌두교 신화와
설화가 인도에서 만들어졌지만 그 설화를 양각의 조각으로 이 곳 사원에 남겼다는 것도 큰
업적이다. 앙코르 왕조의 번영이 힌두교신화와 설화를 바탕으로한 거대한 유적을 남겼고
현대인들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니 업적인가 업보인가? 앙코르 왕조의 쇠락의 원인이
되었을 수 도 있으니 아이러니다. 현대의 문명과 문화의 잣대로 보면 한 갓 쓸데없는 짓에
불과 했다고 평할 수 도 있지만, 역사는 현명한 왕(통치자)보다는 현명하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어리석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왕들이 거대한 물적 유산을 남겼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것이 관광자원이 되어 후손들에게 막대한 관광 수입을 안겨주고 있다.

서쪽회랑 외부

부조가 시작되는 서쪽회랑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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