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림의 친구였다"-북한민주화위원회 고문 김영순
저는 1937년 중국 요녕성에서 태어나 6.25 전쟁 당시 낙동강에서 전사한 오빠 덕분에 당성이 좋은 가정으로 분류되어 평양예술대학 무용학부를 졸업하고 인민군 협주단 무용배우(중위)로 13년을 근무했습니다.
그 후 북한의 고위급만이 살고 있는 보통강 구역에서 외국여행사 상점 지도원으로 근무하던중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는 채 온 가족이 끌려가, 함남 요덕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9 년 동안 짐승 같은 삶을 살고 나와 2001년 탈북을 하여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2003년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습니다.
요덕 수용소 생활 중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 하나까지 잃고 나중에서야 제가 정치범 수용소에 가게 된 죄목이 성혜림에 대해서 무언가 알고 있다는 것이었고 수용소에 들어 갈 때 젖먹이였던 막내 아들 마저 1989년 탈북을 시도 하다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북한을 벗어나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해방후 스타린주의 프로레티아 독재를 통해서 지주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무상분배하고 남녀평등권을 내 걸며 김일성을 위하여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몰아갔으나 60년대 말경부터 하강세를 걷기 시작하였는데 김일성 유일사상체계를 가일층 강화시키기 위하여 정치범 수용소인 요덕수용소를 만든 것이 1970년입니다. 김일성 유일사상체계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중앙집권제이어서 엘리베이터를 수입하는 것도 당 중앙에 보고하느라 늦어져 계약을 못하기도 하고 부모가 우리 집에 와도 분주소에 가서 싸인을 받아야 잘 수 있는 세상입니다.
김일성 김정숙 등 이름이 같은 것도 허용이 안 되어 모두 바뀌고 저도 김영자였는데 1호 가계 (김일성 가계) 에 같은 이름이 있어서 김영순으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타이타닉 영화를 보고도 1912년 4월 14일 타이타닉호의 침몰과 함께 자본주의가 침몰하고 같은 해 4월 10일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이 태어났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태양같은 김일성의 유일지도체제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되는 것은 가차 없이 처단하여야 하기 때문에 김일성 목에 혹이 있다고 말한다던지, 김일성 석고상을 실수로 깬다든지, 김일성 사진틀에 파리똥이 묻어 있다 던지, 김일성 사진이 나와 있는 신문지로 장판 초배를 해도 반동분자가 됩니다.
자식이 남한 방송을 들었다는 이유로 장성급 간부가 요덕수용소에 들어와 서툰 삽질을 하는 것을 보았고 ,희극배우로 유명하여 영웅칭호를 받던 신불출씨도 무슨 죄를 지었는지 요덕수용소에서 1973년 여생을 마쳤습니다.
요덕수용소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쥐를 잡아먹는 것은 물론 독버섯을 먹고 죽거나 뱀을 잡아 먹고 피부가 온통 부풀어 오르는 병에 걸리기도 하는데 최민수 배우의 외할아버지인 강홍식(강효실의 아버지)은 비타민결핍증으로 페라그라라는 병에 걸려 죽어 나갔습니다.
9년 2개월 만에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보니 세상은 더 살기 어려워 져 있고 부패도 만연하였습니다.
달러를 받아도 1년에 걸쳐 두 번에 나누어 바꾼 돈을 받게 되고 엔화의 경우도 바꾼 돈으로 바로 찾아 쓸려면 뇌물을 고여야 (바쳐야 ) 하며 달러와 엔을 당 비서에게 고이면 운명까지도 갱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김정일에게 개방은 나라를 망하게 하고 선군정치를 계속하라고 유언을 해 놓은 덕분에 3백만명이나 굶어 죽고 "강영실" (강력한 영양실조 )이란 유행어가 나올 정도이기 때문에 이제 북한은 전쟁을 일으키려 해도 힘이 없어서 못합니다.
제 남편은 제가 요덕수용소에 가기 전에 행방불명이 되어 아직도 생사를 모르는데 후에 알고 보니 조선백과사전 편집장을 지낸 심광수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제 남편을 밀고를 해서 잡혀간 것이었는데 그 심광수는 남한에서 간첩으로 13년 언도를 받고 복역하다가 2000 년에 비전향 장기수로 북송되어 영웅칭호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심광수의 부인이 저와 같이 최승희의 제자였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데, 김대중 대통령 방북시 공식석상에 나와 마이크로 인터뷰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빨갱이가 서울에 4천명 전국에 20만이나 있다고 하는데 지난 10년간 좌익세력에 힘을 실어 주던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김정일이 좋아하는 촛불시위를 몇 달식이나 하고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을 때리는 현상을 보면서 우리들 2세 ,3세들에게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의 실상을 낱낱이 밝히는 증언을 하는 것입니다.
일인 독재자 김일성 김정일에 의해 2,300만의 운명이 피로 물들고 생지옥으로 굴러 떨어져 지구상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이 인권을 유린한 탓에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열등 민족으로 만들고 있는 현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널리 알려야 합니다.
몇 년 전 탈북자 정성산 감독의 뮤지컬 '요덕스토리' 가 나올 때 서울상대 1.7 포럼에서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 주시었는데 그 뮤지컬에서 저는 최승희 선생의 제자인 무용가로써 안무지도를 하였습니다.
제가 한국에 온 후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인권활동을 주로 해 왔지만 앞으로는 무용 관련 후대교육과 창작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싶은데 이미 칠십이 넘은 나이가 되어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
탈북자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아픔 그리고 수많은 이산가족을 만들어 내게 한 역사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는 온 세계의 자유민주주의 인사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상의 모든 인사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하나로 화합하여 뭉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S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나누어 드린 책 "나는 성혜림의 친구였다"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글은 2009년 3월10일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17회 포럼에서 김영숙여사가 연설한
내용을 심명기 동문이 요약한 것을 이곳에 전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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