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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예측

추위 연구에 미친 극지연구소 김성중 박사

 

[사회 프런트] 추위 연구에 미친 극지연구소 김성중 박사 [중앙일보]

2010.01.19 02:41 입력 / 2010.01.19 05:15 수정

“재작년 녹는 북극 빙하 보며 한반도 한파 예감했어요”

김성중 박사가 2006년 7월 북극 다산기지 앞 피오르를 관측하면서 찍은 사진. 김 박사는 “ 극 지방에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중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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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서는 빙하가 녹아내려도 한반도의 겨울엔 언제든지 가공할 추위가 올 수 있다.”

올겨울 우리나라를 강타한 한파에 대해 극지연구소 김성중(45) 박사는 이렇게 경고했다. 김 박사는 18년 동안 극 지방을 연구했다. 남극과 북극을 다섯 차례 다녀왔을 정도로 추위 연구에 빠진 사람이다. 그는 ‘북극진동’이라는 이론으로 한반도의 강추위를 예상해 주목을 받았다.

김 박사는 2008년 7월 북극점에서 600여 ㎞ 떨어진 노르웨이령 니알슨 섬 다산기지에 있었다. 그해 북극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했다고 한다. 북극은 여름에도 영하의 기온이 유지되는데, 당시 영상 4~5도의 기온이 계속됐다. 그는 “빙하 물이 녹아내리는 피오르(빙하가 침식해 생긴 협곡)를 바라보면서 심상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폭설과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은 지난 5일, 김 박사는 2008년의 북극을 떠올렸다. 영하 15도까지 떨어진 한반도의 이상 한파와 북극의 이상 고온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김 박사는 곧바로 인터넷을 통해 미국해양대기청의 북극 진동 지수를 살폈다. 예상대로 이상 징후가 있었다. 지난해 12월 초부터 북극 진동지수가 과도하게 떨어져 있었다. 이 지수가 낮다는 것은 북극진동이 강해져서 냉기가 저위도 지역으로 더 이동한다는 의미다.

3~-3 사이를 오르내리는 지수가 이번엔 -6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미국해양대기청도 ±3까지만 표시하던 도표를 수정할 정도로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김 박사는 “북극의 냉기가 과도하게 남쪽으로 내려와 한반도의 강추위를 불러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북극진동이 이번 한반도 강추위를 설명하는 하나의 가설로 자리를 잡게 된 과정이다. 한파가 풀린 18일 북극 진동지수는 다시 정상을 회복했다고 한다.

김 박사가 극지의 기후를 연구한 것은 1992년 충남대 해양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A&M대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는 남극 지역의 바닷물의 흐름을 주제로 연구해 98년 텍사스A&M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로서는 최신 이론인 ‘바닷물 컨베이어 벨트’ 이론을 연구했다. 극 지방에서 시작된 거대한 해양 심층수의 줄기가 ‘컨베이어 벨트’처럼 전 지구의 해저를 순환하며 열과 에너지를 실어 나른다는 이론이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이 흐름을 약화시키면, 적도에서 극지로 전달되는 열 에너지가 끊기면서 중위도 지역에 갑작스러운 추위가 올 수 있다는 식이다. 이 가설은 뉴욕시가 남극처럼 얼어버린다는 내용의 재난 영화 ‘투모로우’의 모티브가 됐다.

김 박사는 북극진동 연구를 위해 캐나다 기후분석센터에서 일하다 2003년 해양연구소 부설 극지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요즘 봄철의 북극진동이 우리나라 여름철 강수량에 주는 영향을 연구 중이다. 북극진동이 여름 한반도의 폭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유령과 싸우는 지루한 작업 같지만 지구의 모든 부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메커니즘을 추적하는 흥미로운 연구”라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북극진동(振動)=북극의 기압 변화에 따라 북극의 냉기가 ‘진자 운동’처럼 저위도 지방으로 내려왔다가 올라가기를 반복하는 현상. 북극 진동지수는 기압의 편차를 근거로 산출되며 지수가 음의 값으로 작아질 때 북극진동이 강해져 냉기가 더 남쪽으로 내려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