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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하회마을

하회마을
산악지역에 건설되어 다리와 터널이 많은 중앙고속도로 덕분에 단양에서 안동 하회
마을까지 40여분 만에 도착했다. 긴 죽령터널을 나오자 산 높이가 낮아진다. 경상북
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마을은 야산과 평야가 어우러진 곳이다. 낙동강 상류에 자
리 잡은 하회마을은 삼면이 강으로 둘러 싸여 있어 농사가 잘 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풍산 류씨 집성촌으로 큰 기와집이 많고 마을이 크다(민속마을 지정당시
115호)는 것은 농사가 잘되어 부농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단양도 3면이 강으로 둘러 싸여있어 비교가 된다. 단양은 평야가 20%도
안되는 산악지역이지만 교통이 편리한 곳이다. 하회는 평야가 많고 산은 야산이다.
하회는 안동시에서 떨어져 있는 오지이다. 교통이 아주 불편하였던 곳이다. 농업에만
적합한 곳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시 차린 생일 축하 음식상

하회는 약 600여년전 조선조 초 류종혜(柳從惠)공이 자리를 잡은 이후 풍산류씨가 가
구수의 75%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씨족마을이 되었다. 예로부터 이 마을은 허씨 터전
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라는 말이 전해내려 왔다한다.

 

 

불멸의 이순신 대하드라마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해진 영의정 서애(西厓) 류성룡(柳
成龍)과 그의 형인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두 분을 배출하고 후에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외부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은행장과 국회의원을 지낸분의 비어있는 집 

삼신할머니가 있는 삼신당 느티나무

양진당 (보물 제306호) 조선 명종시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입암 류중영(1515~1573), 겸암 류운룡

(1539~1601) 선생 부자분이 살았던 집으로 풍산 류씨 하회 큰 종가이다

 

 

충효당 

 공부방의 모습 

하회마을지도

 

 하늘에서 본 하회마을

물이 마을을 감아돌아 흐른다고 해서 河回라고 불렀으며 물이 돌아가는 형태가 위의
사진에서 처럼 태극형 또는 S자 반대방향 형태로 흐르고 있어 수 태극이라고 보았다.
S자 모양의 강은 물의 흐름을 완화시켜주는 작용을 하여 홍수 가뭄 치수(治水) 등 유

리한 면이 많다고 볼 수있다. 

영모각 박정희 대통령 글씨 

영모각 옆모습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서 이순신 장군을 존경해온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다시 생각하였고 존경의 마음이 더 해졌다. 박대통령이 이곳에 영모각(永慕閣)을 지
어 이순신 장군을 적극 지원하여 일본과의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류성룡선생을 추
모하고 존경하는 증표를 남겼으니 다시 한번 지도자의 깊은 혜안을 느낄 수 있었다.

 

 만송정 솔밭

 

 부용대(芙蓉臺)-하늘에서 보면 연꽃 모양의 산

 

대충 둘러보고 남쪽 둑을 걸었다. 풍부한 낙동강물과 넓은 백사장, 만송정의

아름다운 솔밭, 강건너 부용대절경 등 이상적인 자연조건을 갖춘 마을이다. 비옥한
땅에서는 풍요를, 아름다운 경관을 보면서 자란 젊은이들은 호연지기를 품고 면학하
여 인재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1984년 민속마을로 지정당시 하회마을의 중요문화유산은 아래 내용과 같으며 우리
나라에서 최대의 문화유산을 보유한 마을이다.
<<하회마을의 중요 문화유산>>
국보 132호 원고본 징비록
국보 121호 민속 공예류 하회탈 및 병산탈
보물 160호 활자본류기타 류성룡종손가문적11종 22점
보물 460호 고문서류기타 서애유물 3종 27점
보물 306호 / 414호 고가 안동양진당 / 충효당
사적 260호 서원(사적) 병산서원
중요민속자료 122호 민속마을 하회마을
중요민속자료 84-91호, 177호 정사 / 가옥 정사-원지정사 / 빈연정사 / 겸암정사 /
옥연정사 가옥-남촌댁 / 북촌댁 / 주일재 / 작전고택 / 하동고택
중요무형문화재 69호 연극 하회별신굿탈놀이
보호수 노거수 삼신당 느티나무
비지정 문화유산 화천서원 / 정려각 / 상봉정 / 기타 고택 / 서낭당 등
<<하회마을의 고택들>>
양진당(養眞堂) - 보물 제 306호
하회 풍산 류씨의 대종택으로 문경공(文敬公)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선생의 종
택이기도 하다.

 

 마을에 있는 고목

지정 당시 115가구에 290명이 살았으나 지금은 51가구가 산다고 한다. 돈을 버신 분
들이 새로 호화롭게 보이는 한옥 기와집을 지어 놓았으나 과연 효용가치가 있을지 의
문이다. 많은 집이 비어있으니 말이다. 행장과 국회의원을 지낸분의 집도 비어있다.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의 방문으로 세계적인 관심의 마을로 등장한 하회가 앞으로 어
떻게 변화를 거듭할지 관심의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