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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진주-촉석루, 논개, 김시민 장군

촉석루(矗石樓) ,논개, 김시민 장군
2006년 8월29일 오전 청학동 관광을 마치고 시외버스로 진주에 도착하여 관광에 들어갔다.촉석루(矗石樓), 남강 바위 벼랑위에 높이 솟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밀양 영남루, 평양부벽루, 또는 남한 광한루와 함께 3대 누각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고려고종 28년(1241)창건하여 8차례 중건과 보수를 거쳤다. 진주성의 남장대(南將臺)로서 장원루라고도 했다. 전시에는 장수가 군대를 지휘하였으며, 평시에는 주민이 모여 놀고 즐기던 곳이며 향시를 치루는고사장으로도 쓰였다. 6.25때 불타버렸으나 전국에서 정자나무를 수집하여 기둥 26개의 재목으로 사용하였고, 대들보는 설악산 낙엽송을 군의 도움으로 옮겨와 중건하였다고 한다.문화재자료 8호이다.촉석루에서 바라보는 남강의 경치는 아름답다. 동쪽으로 아름다운 다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경치도 한 폭의 그림 같지만 서쪽으로 흐르는 강물과 나무, 멀리 보이는 다리까지 펼쳐지는 강물의 모습이 아름답다. 천천히 조용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 앉는다. 아담한 경치다. 다만 남쪽에 자리 잡은 고층 아파트가 오히려 눈에 거슬린다.

 







사진회장 작품

 

 

 





배롱나무 꽃이 아름답다.



 

 


                                 의암


[#IMAGE|a0107043_4973f53f521a3.jpg|pds/200901/19/43/|mid|750|563|pds10#]


촉석루 아래 쪽문으로 가파른 절벽을 내려가면 논개가 적장 왜군장수 게야무라 로쿠스케를껴안고 
강물로 투신한 바위가 의암(義巖)이라는 이름으로 얌전히 자리하고 있다. 거기에1629년 정대륭이 
새겼다는 義巖이라는 글씨가 있다.논개사당 의기사(義妓祠)로 발길을 옮겼다. 김은호 화백이 그린 
그림이 아직도 걸려있다. 김화백이 친일파라는 이유로 떼어냈다가 다시 제자리로 왔다.
 남강 남쪽에 논개의 동상을 만들 계획이어서 동상과 모양을 통일 하기위하여 새로운 그림을 마련
하고 있다고 한다.의기사에는 다산 정약용이 논개를 기리는 글을 나무판에 쓴 것이 걸려있고, 기생  
산홍(山紅)에관한 글도 걸려있다. 산홍은 친일파 이기용의 수청을 강물에 뛰어 들어 자살함으로서 
거절한 의기라고 한다. 천민 기생들이 목숨을 초개 같이 버리는 위대한 행동에 마음이 숙연해지고 
존경심이 생긴다.인간 평등의 참뜻을 새로 이곳에서 발견하여 한편으로는 흐뭇하기도 하다.
논개는 전북 장수 출신이며 성은 주(朱)씨라고 주장하여 장수에 논개 생가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지체 실시이후로 향토인물 발굴작업의 한 면으로 보인다. 진주와 장수 간에 논개를 
기리는 사업 주도권 잡기 경쟁이 볼만 할 것 같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논개)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을 기리는 대형 4각 축조물로 자리를 옮겼다. 임진년(1593)조선군 3,800명과 왜군 2만여명이 치열한 전투를 벌여 곽재우 장군의 응원군의 합세로 승전하였으나, 김시민 장군은 전사했다. 숙종 때 충무공으로 시호되었다. 임진왜란 3대첩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나 이듬해 계사년에 왜군 3만 7천명이 진주성을 공격하여 조선군 3,400여명과 대치하였으나 왜군이 승리하여 아군은 전멸하고 민간인도 6만여명이 불에타 죽는 참패를 하였다. 이순신 장군도 충무공으로 시호 되었으니 충무공이 여러분이다.이순신 장군의 업적 에 비교가 되지 못하지만 진주는 김시민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이렇게거대한 전쟁기념 축조물을 세웠다.지자체실시 후로 나이든 유지들이 자원봉사자 여행안내원으로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어 여행 객이 즐겁다.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