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라파엘침술원 원장 이창원 토마스 아퀴나스의 글입니다. 그분의 홈페이지에서 전재한 것입니다.한자루 사랑의 양초되어! 2007.10.21 18:05 | 대표글 | 토머스 http://kr.blog.yahoo.com/songfa21c/1388 한 자루 사랑의 양초되어 저는 언젠가 여러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을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러 유명 강사님들의 말씀을 메모하고 그 말씀은 이러하고 이런 부분은 좋았고 ... 이런 상념을 한 적이 있었지요. 허나 저는 곧 깨달았습니다. 제가 무슨 자격이 있어 여러 사람들 앞에 서서...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말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주제 파악을 했다는 말이지요.. 저는 곧 그 동안 메모를 했던 자료를 모두 버렸지요. 앞으로 그런 기회는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런 것은 저에게 아주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단정을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신부님께서 한번 강론을 해 보지 않겠느냐고 하시더군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지요 정말 내노라고 하는 유명한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제가 과연 해도 되나요. 신부님께서 형제가 체험한 하느님에 대해서 말을 하면 된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체험이라면 그 동안 주님께서 무수히 많은 체험을 하게 하시지 않았는가? 그런 이야기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하리라. 저는 겁도 없이 대답을 하고 말았군요. 하기는 원래 겁이 없는 사람이기는 합니다. 보이는 것이 없으니 겁을 낼 필요가 없지요. 그래서 저는 무슨 이야기를 할 까 하다가 실명을 하고 서울맹학교 고등부를 다니던 어느 날 아리랑 고개에 있는 한 피정 센터해서 주님께 한 기도가 떠올랐지요 그 기도는 제가 주제를 잡은 내용인데 '한 자루 사랑의 양초되어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게 하소서!' 저는 그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도 모르면서 정말 겁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그런 기도를 했지요. 아니 기도라기보다는 일종의 서언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 이후 저의 마음속에는 그 기도가 자리 잡고 있지요 때로는 취소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였습니다. 허나 그것은 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저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부정 할 수가 없음을 알고 이제는 받아 들이기로 했지요. 그 의미는 구구하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느 새가 자신의 살을 자식에게 먹이고 자신은 생을 마친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말은 거창하지만 내용은 결국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양초의 덕을 본받자는 것이지요.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성서의 말씀도 있지요 좀 손해를 보면 어떻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조금 손해를 보면 안되나요.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라 하신 말씀은 어둠을 밝히되 양초처럼 자신을 불살라 세상을 밝히고 소금처럼 자신을 다 녹여서 맛을 내라는 말이 아닌가요. 자신을 드 내지 않고 타를 위해 존재하는 소금과 같은 삶은 참으로 멋있지 않아요. 아 사설이 너무 길었군요. 이제 제가 살아 온 이야기를 할 까 합니다. 저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한 생을 시작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너무 과분했는지 아버지의 얼굴을 알아보기도 전에 편모슬하에서 자라게 되었지요. 저는 아버지 하고 불러 본 기억이 없어요. 내 고생은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았지요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저는 학교를 다녀와서 가을걷이를 하기 위해 보를 치러 논에 들어갔다가 독사에게 물리고 말았지요. 초등학교 졸업하던 해 한 눈을 실명했는데 독사까지 물리고 나니 이거야 원 제가 청소년기에 독사에 물려 끊임없이 밀려오는 통증을 겪으면서 느낀 것은 아무도 나의 고통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도 의사도 아무리 호소해도 통증을 가라않게 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 앞에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절망을 해야 했지요. 추석 1주일 전에 독사에 물려 부패해 가는 다리를 보면서 아무 치료 방법이 없다는 현실은 무서운 공포 그것이 죽음을 부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할 수조차 없었지요. 죽음보다 지독한 고통 잠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 밀려오는 통증은 내 마음에 분노 절망 잠을 자려해도 잘 수가 없고 통증을 잊으려 해도 잊을 수없는 순간순간들 어찌어찌하여 병원에 입원을 해서 치료를 해도 수술을 해도 그치지 않는 통증은 내 마음에 불신 그것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의사에게 호소를 해도 진통은 되지 않았어요. 진통제가 듣지 않는 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하도 아프다고 하니까 의사가 마약을 쓴 것 같은데 그러나 그 약도 잠시 고통을 멎게 했을 뿐이지요. 결국 3개월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지나고 서야 그 고통에서 벗어 날 수가 있었지요. 아 그런데 저의 아픔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갑자기 남은 한눈마저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어요. 아 그 때의 절망감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처지곤 합니다. 이번 수술을 하면 보겠지 그렇게 한 것이 3번 3년의 세월은 세 차례의 수술 했지요. 죽자 어머니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아니 이 나라를 위해서 죽자. 우습지요 내가 죽는 일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 되나요. 지금은 아니지만 그 때는 된다고 생각을 해도 되었지요. 식량이 모자라던 시절이니까요. 무수히 많은 시간을 자살에 대해서 생각을 했지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 20대 초반에 격은 자살 충동들 하루에도 열 두.번을 더 했지요. 아무 의미 없는 삶 남에게 부담만 주는 삶 정말 살기 싫었지요. 그러다 어느 날 저는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지요. 그래 나는 이제 죽었다. 그래 죽을 각오로 산다면 눈을 보지 못해도 살아 갈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저는 곧 재활의 길을 찾았지요. 한 기관을 찾아가니 돈을 너무 많이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가지 못하고 종로구 신교동에 있는 서울맹학교를 찾았는데 아 거기서도 받아 주지를 않더군요. 나이가 너무 많다나요. 하기는 22살도 더 먹었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니 무리는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저는 결국 대전에 가서 2년간을 공부를 하고 서울로 오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말씀을 하셨어요. 영세를 받았다고 그러니 우리 모두 성당에 가자고 저는 실명을 하고 어머니께 해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하는 마음에서 성당에 나가기로 했지요. 그런데 학교에 와서 교리를 해 주신다던 수녀님은 오시지를 않았어요. 결국 주님의 자녀가 되는 일이 저에게는 쉽지가 않았어요. 어차피 신자가 되기로 했으니 여의도에 가 보고 싶었거든요. 당시 여의도에서 큰 행사가 있다고 방송은 거의 매일 떠들었거든요. 저는 할 수없이 통신 교리를 하기로 했지요. 그 때는 문제지가 오면 답을 써 보내면 다음 문제지가 왔지요. 그런데 문제지를 읽어 줄 사람이 없어서 고민을 했는데 소아마비를 앓고 있던 안나 누님이 읽어 주었는데 문제지가 너무 길어서 다 들을 수가 없었어요. 저는 할 수없이 내용은 읽지 말고 문제나 읽어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주문은 읽지 않고 문제만 듣고 답을 썼는데 나중에 채점을 받아 보니 적게 나오면 80점 어떤 날은 100점도 있었어요. 결국 빨리 영세를 받을 수 있는 성당을 수소문하니 명동성당은 매달 영세를 준다고 하더군요. 저는 곧 명동 성당에 문의를 하고 보충 교리를 받기 위해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지팡이를 짚고 혼자서 보충 교리를 받기 위해 효자동에서 명동까지 갔는데 그 때 담당 수녀님이 저에게 혼자 왔느냐고 하시더군요. 그렇다고 하니 보충교리를 받을 것 없이 하루 전에만 오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그렇게 해서 영세를 받게 되었지요. 그리고 소원대로 여의도에 갈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기억하시겠지만 1984년 5월 6일 그 날은 우리 교회사에 아주 중요한 날이지요. 우리나라 최초로 103위 성인 시성식이 있던 날이지요. 요한 바오로 2세 현 교황님이 직접 오셔서 시성식을 하셨지요. 100만이 넘는 인파가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있었던 그 날의 행사를 기억하시는 교우분들은 아마도 지금도 벅찬 감동에 마음이 흐뭇하실 것입니다. 저는 그러나 그 벅찬 감동만으로 만족 할 수는 없었습니다. 언젠가 김수환 추기경님이 맹인 선교회를 찾아 오셨는데 그 때 영성체를 하고 한 동안 영성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체가 바로 주님이라고 하시는데 아 내가 감히 주님을 제 안에 모실 수 있나 두렵고 무섭고 그리고 나는 모령성체가 되지나 않나 하는 마음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부님이 한번은 나를 불러서 말씀하셨습니다. 영성체를 왜 하지 않는가 하고 물으시더군요. 저는 사실대로 말씀드리니 저에게 상등 통회를 하라고 하시더군요. 지옥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살라고 그리고 영성체를 하라고 말입니다. 그 다음부터 다시 영성체를 하기 시작 했지요. 그런데 한 몇 년 동안 저는 신자생활이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맹학교를 다니면서 동네 본당에서 레지오를 하던 때에도 몰랐습니다. 하기는 그 때 레지오를 하다 아리랑 고개에서 피정을 하다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 한 서언을 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제가 생의 큰 전환점이 된 것은 영세 후 5년이 되던 88년이었지요.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안 되어 창문도 없는 가게를 하나 얻어서 어렵게 살고 있었는데 마침 그 집이 상당히 많은 부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겨우 자기 자본 150만원에 사채 350만원을 더해서 얻은 전세였는데. 아 내 재산 전부가 공중에 날라 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절망 바로 그것이었지요. 전세금에다 은행융자를 더하면 집값보다 훨씬 더 많았으니 내 상식으로는 주인이 융자를 갚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사를 간지 얼마 안 되어 다시 이사를 가려고 했는데 상대적으로 가게 보증금이 저렴했는데 웬일인지 전혀 보러 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 그 때 가슴앓이를 심하게 해서 지금도 아찔하기만 합니다. 아무 방법이 없는 절망 미사를 하고 집에 올 때는 더욱 화가 났지요. 아 나는 왜 이리 살아야 하나. 극도의 분노 그것만이 나를 지배했지요. 아무 탈출구 없는 상태에서 당시 명동에 있었던 맹인 선교회를 찾았지요. 당시 그곳에서는 성령 세미나를 한다고 하더군요. 대부님이 세미나를 한번 받아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시더군요. 저는 그냥 대답을 했지요. 가슴도 답답하고 너무 막연한 삶을 극도의 빈곤 그리고 전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잠시라도 도피를 하고 싶었지요. 한 두달 동안 세미나를 하게 되었는데 세미나를 하는 동안 저는 착실하게 봉사자 분들의 지도에 따랐습니다. 아니 묵상을 15분하라고 하면 한 두 시간쯤 했지요. 그리하니 4주 안수를 받던 날 단 한번 세미나에 심령기도를 하게 되었지요. 그 다음 봉사자분들이 매일 심령기도를 하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조심해서 기도를 하라는 말도 잊고 큰소리로 기도를 했지요. 주위의 아주머니들이 그 이상한 소리가 무어냐고 물어도 저는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기쁨에 차서 하루하루를 살게 되었습니다. 아 그 절망 속에서 어떻게 그리 살 수 있었는지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두 달은 정말 아주 빠르게 지났지요. 그러고 나니 기도회에 가지 않겠느냐고 하시더군요. 철야기도회를 말입니다. 저는 아무 망설임 없이 대답했지요. 그러자고요. 그리해서 시작된 기도회는 후암동으로 면목동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그러기 시작하던 4주째 되던 어느 날 우리 여기저기 돌아다닐 게 아니라. 선교회에서 하자고 하시더군요. 저의 삶은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에 아니오 라는 말을 그 당시는 할 줄을 몰랐지요. 무조건 예라고만 했지요. 그래서 선교회에서 시작된 기도회는 오늘까지 이어지게 되지요. 시작은 5명이지요. 그저 촛불 하나 성모상 하나 그리고 5명이 둘러 앉아 찬미하고 성서를 묵상하고 그리고 청원기도를 했지요. 누구를 위해서했는가 하면 나라를 위해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 선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다른 맹인들을 위해서 했지요. 그 후 얼마 안 되어 기도회에 참석하는 숫자가 늘어 10명이 넘게 되었지요. 그리고 철야 기도회를 아무 것도 모르는 제가 진행을 맡아 보게 되었지요. 말이 진행이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유치하고 어리석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너무 부족했기에 저는 사랑의 주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지요. 매일 한 주에 하는 그 철야 기도회를 위해 묵주신공을 하고 심령기도를 하고 그리고 가면 무언가 마음 가득히 차는 것이 있었습니다. 신선 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지만 제가 그랬지요. 주님의 사랑에 푹 빠지다 보니 저 자신을 잊고 살게 되었지요. 그리고 마음속에 태산같이 밀려오던 걱정 근심은 저절로 해결이 되었지요. 굳이 청원기도를 하지 않았는데도 당시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하게 해 주셨지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저 뒤에 온 사람도 손해를 보지 않고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무난히 주님은 처리를 하셨지요. 저는 또 반장을 하라는 권고를 받고 기꺼이 수락을 했지요. 그리고 또 반장 모임을 위해 기도를 했지요. 한 달에 한번 하는 모임을 위해 매일 기도를 했지요. 그런데 그리도 힘들다던 모임이 아주 성황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기껏 모여야 4 ,5명이 모이면 고작인 모임이 10여명을 훌쩍 넘게 모이고 모임은 활력이 넘치고... 아 지금도 기도를 하면 주님은 도와주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요. 다만 주의 일을 할 때는 무조건 들어 주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레지오를 하고 다니던 어느 날 빈첸시오 아 바오로를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지요. 아 선교회에 필요한 것은 빈첸시오다. 저는 지인들과 의논하여 조직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빈자들을 위한 활동을 하던 어느 날 장마철로 생각되는데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가 제 마음을 어둡게 했지요. 아침에는 비가 오지를 않았는데 막상 활동을 하려하니 답십리에 갔다가 명동을 거쳐 신촌에 가야 하는데 아 하늘이 구멍이 났는지 마구 퍼 붓는 비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저는 풍랑을 가라앉히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하늘에 십자가를 긋고 십자가의 가로대가 무한히 커지는 상상을 하면서 심령기도를 했는데 차를 타고 명동 가까이 오니 내릴 사람이 있어 잠시 차가 멈추었는데 아 이게 웬일입니까? 그리도 마구 쏟아지던 비가 뚝 그쳤습니다. 오 주님은 맹인들이 당신을 위해 하는 수고를 보시고 비를 맞지 않게 하셨습니다. 저는 차에 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지요. 명동에서 한 사람을 내리고 나니 또 비가 억수같이 퍼붓기 시작했지요. 저는 우리가 내릴 때에는 비가 그친다고 했지요. 사람들은 모두 웃었지요. 허나 제가 다시 기도를 하자 금화터널을 가까이 가니 비가 뚝 그쳤지요. 그리고 병원에 도착하여 이층에 올라가니 다시 비가 억수로 쏟아졌지요. 하늘이 노하셨는지 마구 천둥 번개를 치고 말입니다. 저는 그 뒤에도 주님의 일을 할 때 비가 쏟아지면 기도를 했지요. 그 때마다 주님은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지요.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죠. 저의 초등학교 동창이 위암에 걸려 입원을 한 일이 있지요. 친구 누님의 말로는 3기라고 하더군요. 본인도 안다고 하기에 저는 봉사자들에게서 들은 대로 한번 해 보았지요. 일단 그 동안 미워했던 사람들을 모두 용서를 하라고 했지요. 본인의 확인을 받고 심령기도를 했지요 얼굴을 마구 찡그리고 고통스러워하던 친구는 이제 평안을 찾았지요. 그리고 금방 죽을 것 같던 친구는 회복이 되어 다시 수술을 받고 입원을 하여 다시 병원으로 찾아가 밤을 새워 기도를 해 주었지요. 아주 무식한 기도는 백지장 같던 얼굴이 붉으스레 혈색을 찾는 것을 보고 퇴원을 하면 아예 저의 옆집에 가서 살라고 다른 침대에 있던 환우들이 말을 하더군요. 평안해지면서 진통도 되고 때로는 치유도 일어나고... 하는 모양입니다. 봉사자 분들이 늘 하시는 말씀은 믿음과 사랑만 있으면 기적은 언제나 일어난다고 하셨지요. 믿음과 사랑이 기적을 일어나게 한다는 이 말은 늘 기억해 둘 만한 말이 아닌지요. 고통을 대신하겠다는 사랑이 기적을 가져 온다는 말입니다. 한 예를 더 들까요. 신부전증으로 투석을 하던 형제가 하루는 전화를 하더군요. 그 형제는 기도회에 나오던 환자였는데 하루는 토머스 토머스 나 죽는다. 빨리 빨리 와 주어 성 바오로 병원에서 이미 가망이 없다고 한 모양입니다. 대변을 보지 못해서 체독이 일어나 전혀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변비약도 관장도 별무 소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차를 5번이나 갈아타고 지팡이를 짚고 혼자서 물어 물어 찾아 갔지요. 아마 제가 빈첸시안이 아니었다면 결코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돈을 아주 많이 준다고 해도 결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속감은 결국 외면 할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저는 결국 그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에 협조를 하고 말았지요. 침을 놓고 기도를 하니 몇일 동안 보지 못했던 변을 한꺼번에 보았고 그 환자는 몇 년을 더 살게 되었지요. 허나 가족들한테는 그리 환영을 받지 못했지요. 긴 병에 효자없다고... 저는 가끔 회의가 생기곤 합니다. 선은 무엇인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선인가. 아 그러나 주님은 저의 조그마한 희생을 보시고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병원에서 죽는다던 사람이 다시 살아 난 것입니다. 믿음도 별 볼 일 없던 저의 기도도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적을 말씀드리죠. 저는 철야 기도회를 다니는데 동성고등학교에서 기도회 참석하던 때인데 한번은 녹음기가 찍 소리를 내면서 들을 수가 없어서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리시는 주님께 기도를 했지요. 그랬더니 소리가 아주 맑게 되더군요. 온 우주를 지배하시는 주님을 체험한 것이지요. 이번에는 성사와 기도를 통한 은혜에 대하여 말씀드리지요. 한번은 묵주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말로 형언 할 수없는 기쁨이 밀려오더군요. 세미나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인데 묵주 알을 하나하나 돌릴 때마다. 환희의 꽃다발을 주님께 바친다고 하더니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성모님이 같이 기도를 해 주신다고 하더니 아 그리도 충만한 기쁨을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이 기억이 납니다. 다음은 고백성사를 보고 느낀 점에 대하여 말씀드리지요.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자부하던 저도 마음으로는 끔직한 생각을 할 때가 많지요. 한번은 누구에게 말하기 어려운 잘못을 고백하고 났는데 갑자기 손이 뜨거워지더군요. 저는 어떤 일이 있을 때 손이 더워지는데 성사를 보고 난 뒤에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고백실을 떠나 집에 오는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지요. 성사를 보고 나니 마음이 이리도 가벼울 수가 있구나! 그 전에도 성사를 보았지만 그런 느낌은 없었는데. 그날따라 매우 마음이 가벼웠어요. 아 주님은 이것을 원하셨구나 형식적인 성사가 아닌 정말 잘못한 것을 당신은 고백하기를 원하는 구나 그래서 저는 가끔 명동성당의 지하를 이용 합니다. 거기서는 매일 성사를 주시고 있자나요. 아 그리고 성체성사를 통해서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요., 놀랍게도 그 조그마한 성체를 먹고 나면 배가 부르더군요. 저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여러분이 믿거나 말거나 사실이지요. 저는 이밖에도 선교회에 여러 가지 제안을 하게 되지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매일 보시는 독서나 복음 말씀 들을 저도 알고 싶어서 사서함에 녹음을 해 달라고 했지요. 상당히 오래 전에 한 것인데 지금도 그것은 지속되고 있지요. 전화를 걸어 소리로 성서 말씀을 들을 수 있지요 그리고 맹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기도라고 생각하여 푸른 군대 창설을 제안했지요.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줄 압니다. 이번에는 저의 하루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리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우선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기도를 하고 예수님 성모님 수호천사님을 각각 7번 5번 3번씩 마음속으로 크게 부르지요 그리고 식사를 할 때마다 식사 전 후 기도를 하지요. 그리고 12시와 6시에 삼종기도를 거의 매일 하지요. 그리고 오후 세 시경에 주님께 자비를 비는 기도를 하고 묵주기도를 하루에 15단을 하지요.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를 통하여 주님의 일생을 묵상해 보지요. 그리고 예수 고난의 15기도도 하지요. 저녁에는 저녁기도를 통해 하루를 반성하고 자기 직전에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지요. 주님 저는 이제 잠자리에 듭니다. 그러나 제 심장은 뜁니다. 제 심장이 한번 뛸 때마다 연옥에 있는 영혼을 한분씩 영원한 나라 생명의 나라로 인도해 주세요. 그리고 길을 갈 때에는 이리 기도를 하지요 주님 제 다리가 당신께 기도합니다. 한 걸음걸음마다 기도를 합니다. 이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빕니다. 그리고 차를 탈 때에는 우선 이렇게 기도하지요. 주님 이차를 운전하는 기사 아저씨 항상 안전하게 운행하게 하시고 이차를 타는 모든 분들께 평화를 빕니다. 하고 기도하지요. 그리고 치료를 할 때에는 사랑의 주님 이 자매님의 영혼의 상처 마음의 상처 기억의 상처를 모두 고쳐 주시고 아울러 육체의 병도 고쳐 주세요. 하고 기도하지요. 저는 무생물도 기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산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바다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새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다니엘의 친구들이 부른 찬양의 기도가 아닌가요. 하물며 우리의 신체가 기도를 못하겠습니까? 어떤 날은 이리 기도도 하지요. 제 영혼과 맥박과 호흡이 사랑의 주님을 찬미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 할 것은 성서에 관한 것인데 세미나를 받고 난 뒤에 여러 강사님들로 부터 성서를 읽으라는 권고를 많이 받았는데 한 이년간의 권고를 받고서야 읽기 시작했지요. 처음에 시작하기가 힘들었으나 구체적으로 방법을 듣고 나서는 시작 할 수가 있었지요. 그것은 창세기부터 읽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레위기에 가서 거의 막혀서 읽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부터 읽는 것이 좋은데 신약도 마태복음부터 읽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요한1서부터 읽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시더군요. 요한 1서는 신구약 총 결정판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무튼 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요. 가장 중요한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요. 이렇게 방법을 터득하고 나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라고 하시더군요. 구약은 총 930여장으로 되어 있으니 하루에 3장씩만 보면 1년에 한번은 볼 수 있다고요. 그리고 신약은 총 260장이니 이것도 3장씩 보면 3개월이면 모두 볼 수 있지요. 저는 실천에 들어갔지요.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거의 매일 성서를 보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 한대로 구약 3장 신약 3장씩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말씀이 좋아서 주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은 아모스서 8장 11절입니다.. ' 주 야훼의 말씀이시다 양식이 업서 배고픈 것이 아니요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야훼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 굶주린 것이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요한1서 3장 18절을 좋아하는데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또 복음서 에서는 마태복음 7장 12절을 마음에 새기고 삽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아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웃어 주기를 바라는 가 그러면 웃자 인사 받기를 좋아하는 가 그러면 인사하자. 이 말씀은 생각보다 살기가 매우 힘든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허나 하고자 하면 되겠지요. 그리고 계명으로는 8계명을 많이 생각하는데 저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좋은 거짓말을 하지 말자 상대방을 위해서도 하지말자 거짓은 처음부터 사탄에게서 왔고 진실은 성령의 열매이고 거짓은 어둠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거짓말을 하게 되지만 하지 않으려고 하면 또 진실하게도 살게 되지요. 이번에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냉담자 회두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30년 동안 냉담한 자매를 회두를 시킨 적이 있는데 물론 제가 한 것은 아니고 주님이 도구로 쓰시어 하신 것이지요. 별로 심각한 병도 아닌데 유명한 병원이란 병원은 다 찾아가도 낫지를 않는다고 했지요 물론 한의원에도 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다고 했지요. 저는 그것은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이고 영혼이 병든 것이라고 일러 주었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지요. 그 자매는 조당 상태였는데 신부님께 말씀드려 고백성사를 보게 했지요. 저는 안 되는 줄 몰랐지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런데 주님은 탓하지 않으시고 신부님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어 그 자매에게 은총을 허락하시어 고백성사를 보게 하시고 보석까지 하게 하셨지요. 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주님이시지요. 아 지금은 다시 하라면 못 할 것입니다. 너무도 기뻐하시는 신부님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 사랑의 주님 당신을 찾는 자녀를 그리도 기뻐하십니까? 그리도 오래 떠나 있던 당신의 자녀가 돌아 왔다고 그리도 좋하 하십니까? 그리고 10년 냉담자 도 있었고 2 ,3년 냉담자는 회두 시킨 예는 아주 많지요. 이번에는 추기경님이 직접 집전하신 미사에서 제가 한 기도를 소개해 드리지요. 10여년 전의 일인데 아 그 때 세계 성체 대회 때의 일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놀랍게도 이 부족한 죄인에게 영광을 허락하셨지요. 본당에서 신자들의 기도도 하기 어려운데 여러분들은 많이 하시겠지만 저 같은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지요. 추기경님의 미사에 신자들의 기도를 하게 하신 주님 저는 마음을 담아 기도문을 작성하고 여러 번 읽어 보았지요. 지금도 조금은 생각이 나는데 '사랑의 주님 저 동방 끝 땅 모퉁이 작은 나라 한국에서 이제 세계의 많은 분들이 모여 기도를 합니다. 사랑의 주님 보지 못하더라도 듣지 못하더라도 걷지 못하더라도 말하지 못하더라도 생각 할 힘이 부족하더라도 장애를 느끼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어 주세요.' 장애를 가져도 장애를 느끼지 못하는 사회 그 사회는 지상 천국이 아닐까요. 저는 생각해 봅니다. 아 왜 성당은 1층에 없는 것일까 2000년전에는 아 평지에서 주님이 설교하신 것 같은데 그리고 농아자를 위해 성당 앞에 자막을 설치 할 수는 없을 까? 그리고 맹인을 위해서 안내 종을 설치하면 안 되나 딩동 여기는 명동성당입니다. 어서 오십시요 이런 방송이 미사 시간만이라도 울린다면 맹인들이 혼자서도 미사에 참석하는데 많 은 도움이 될 텐데 말입니다. 아 꿈이지요. 이제 저의 부족한 말을 여기서 줄이고자 합니다. 부디 사랑의 주님께 한없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만 권고해도 좋다면 자매님들 제발 자기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철저하게 사랑하십시오. 누구나 자기 자신은 사랑한다는 말은 남자들의 이야기이고 자매님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다못해 밥 한 그릇 푸더라도 내 밥 먼저푸시고 옷을 사도 내 옷부터 사고 그 다음은 서방님 그 다음에 아들딸의 순서가 됩니다. 이순서가 바뀌어 아들 딸 먼저 서방님 먼저 하다 보면 남는 것은 분노와 원망뿐입니다. 기억하세요. 순서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추신 : 이 글은 신부님만 읽으시고 버리셨으면 합니다. 저는 생각보다 죄 많은 인생이고 남 앞에 설 수 없는 사람임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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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침술원 원장 이창원 토마스 아퀴나스와의 만남
3월 22일에 김정희 에프렘 수녀님에게서 받은, 침을 잘 놓는 분의 명함은 ‘라파엘
침술원’원장 이 창 원 (토마스 아퀴나스) 02-416-3806 이었다. 천주교신자인 한의
사이려니 가볍게 생각을 하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아’ 2권을 읽는 중에 김에프렘
수녀님께서 치유기도를 해주시는 파킨슨씨병 환자분에게 지금 다니는 서울대학병원
에 꼭 가보라는 권유를 하여 가서 치료를 받고 난후에 다시 매주 성령기도회에 참
석하여 수녀님에게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여 보니 의
사분이 다 나았다고 하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수녀님이 권유하시는 의사에게는 꼭
가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함께 라파엘침술원을 4월 1일에 찾아갔다.
환자분이 몇 분 와서 계시므로 기다리는 중에, 임신한 딸을 데리고 와 진료를 받게
하는 중년아주머니께서 김정희 에프렘 수녀님이 여기 오셔서 침을 맞고 가시는 것
을 보았다고 한다. 대기실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아’ 책도 진열해놓고 팔고 있다.
희망기도라는 책도 있고 다른 천주교 서적도 많았다.
김에프렘 수녀님이 신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환자분들이 다 가
고 아내가 진료를 받으러 진료실로 들어가자 원장님의 어머님과 나만의 대화를 했
다. 원장님은 52세, 어머님은 80세 김에프렘 수녀님이 여기 자주 오신다는 이야기
와 아들인 원장이 눈을 못 보게 된 사유 등을 간략히 말씀해주신다. 송파에서 침술
원을 하다가 이곳 면목동으로 오게 된 경위도 간략하게 말해준다. 4상체질 감별을
하여 침을 놓고 마음의 병도 치료를 한다. 침으로 치료를 마친 후에 아내의 체질을
나는 태음으로 알고 있었는데, 소양이라고 말한다. 아내가 좋아하는 빵, 커피, 우유,
사과, 튀김, 소고기 등을 먹으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나도 1994년도에 8상
체질을 개발한 권도원씨로부터 체질감별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금양체질(태양)이라
고 했으나, 20여회 침을 맞은 후에는 수음체질(소음)이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갸우
뚱하였다. 그래서 나는 태양과 소음의 혼합체질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창원 원장
은 아내에 체질에 대하여 너무 자신이 있게 말을 한다.
그리고 김에프렘 수녀님이 아내에게 안수기도를 해 주신 후에 악령에 관해서 말씀
이 없으셨다고 하였더니, 말씀을 안 하셨다고 안심하지 말라고 원장님은 말한다. 돈
을 빌려주었다 떼인 것에 대한 억울한 울분의 응어리가 아직도 아내의 마음에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1995년 경 직장에 다닐 때 북창동에 있는 장님 안마사를 여러 명 고용하여 영업을
하는 곳에서, 안마를 계속해서 일주일 정도 받은 적이 있다. 이분 맹인들은 보지 못
하므로 오히려 정신집중이 잘되어 노력을 하면 정신면, 영적인 면에서 특별한 능력
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오늘 그런 분, 이창원
원장을 만났다. 반갑고 기쁘다.
집에 와서 다음날 인터넷에서 라파엘침술원을 검색을 하였더니 침술원 홈페이지가
나왔다. 이창원 원장의 글이 있어서 복사하여 이곳에 전재하는 것이다.
찾아가는 길은 지하철 7호선 용마산역 1번 출구로 나가 남쪽 사거리에서
우회전 하여 방약국에서 남쪽으로 좌회전하여 길을 건너 가면 제천부동산
간판이 작게 보이는 건물을 지나 바로 오른쪽 좁은 골목길 일반 주택에
라파엘 침술원 간판이 작게 걸려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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