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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방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2013,8.1.(목) 오전 6시 새벽 미사 참석 못함

어제 이삿짐 정리로 피곤하고, 거리가 가까운 죽전 성당에는 새벽 미사가 없고, 좀 거리가 먼 구미동성당에는 새벽미사가 있으나 참석 못함

 

2013. 8.2(금) 오전 6시 구미동성당 미사 참석

 

전화로 택시를 불러 타고 가서 성당에 오전 5시 35분에 도착하였습니다. 8월 매일미사 책을 미처 사지 못하여, 책 없이 참석하였습니다. 매일미사 책 순서로는 지금 마태오복음이 선포되고 있어, 신자좌석에 비치된 성경에서 마태오 복음을 찾아 펼쳤습니다. 마태오의 복음서 제18장 형제가 죄를 지으면 15절이 나왔습니다.

 

신약성서

마태오의 복음서 제18장

형제가 죄를 지으면

15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

16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 그리하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을 들어 확정하여라.' 한 말씀대로 모든 사실을 밝혀라.

17 그래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내 이름으로 모인 곳

19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20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21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22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마침 고향 이웃마을에 사는 형제(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가 요사이 저에게 잘못을 저지른 언행과 관련이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펼쳐진 것입니다.

 

진입로가 없는 저의 밭에 진입로를 이번에 새로 내어준 두 분 중 한 분인, 이웃 밭의 소유주 H씨의 임차경작인 이며 고종사촌인 이장(里長)이, 저의 소유 밭을 임대를 못하게 방해하여 금년농사를 못 짓게 되었습니다. 이장이 의도적으로 억지를 쓰고 있다고 판단하여, 단 둘이 만나서 대화를 하려고 하였으나, 저보다 14살 연하의 형제분인 이장이, 어성을 높이고 자리를 떠서 대화가 안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이일에 관여한 저의 친척과 함께 세 사람이 함께 만났을 때에도, 이장이 먼저 어성을 높이면서, 이장 자신은 억지 주장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저는 이장이 상식과 법률에 맞지 않는 억지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장이 진입로를 막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먼저 떠 버렸습니다.

 

이장에게 서신으로 경위를 자세히 온건하게 설명하면서, 해당 법률 조항을 기술하여 보냈습니다. 저희 고향친구이며 법률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은바 있습니다. 친구는, 이장이 법률을 너무 모르고 억지를 쓰는 것 같고, 농사를 못 짓게 방해하는 행위는 용서하기 어려운 행동이라고 말하며, 내용증명을 온건하게 쓰지 말고, 강경하게 써서 보내라고 충고를 해 주어 그대로 하였습니다.

 

그 후 7월 27일, 진입로를 스스로 먼저 내어준 Y 사장(Y 사장 부친이 진입로를 내주라고 아들에게 명령함)과 H씨의 소유 밭의 임차인인 이장, 저 세 사람이, 고향 밭 현장에서 만났습니다. Y 사장이 직접관여하고 작업도 같이 하며, 저의 밭에 설치해준 배수로(비용은 제가 지불함)가 이 번 비로 파손이 되어, 철거하여 원상 복구하고, 새로 U자관 배수로를 설치하는 것을 협의하는 현장에서, 이장은 어성부터 높이며, 진입로 에 편입된 두 소유주의 토지 면적과 형태를 알기위하여, 저의 비용부담으로 먼저 지적측량을 한 후에 U자관 배수로를 어느 지역에 설치 할 것인가를 정한 후에, 하라고 조건을 답니다. 이장의 친척인 H씨의 소유 밭 진입로에는 U자관 배수로 설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비칩니다. Y 사장은 배수가 잘되도록 누구의 소유 토지 불구하고 하라고 권유합니다.

 

Y 사장이 천사라면, 이장은 악마로 비유됩니다. 7월 7일 기도에서 ‘지금까지는 좀 멀리 바라보고 폭넓게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는 좀 멀리바라보고 폭넓게 생각하면서 세속의 일들도 처리하고 대처해 나가겠습니다.’ 라고 예수님께 반성하는 내용의 말씀을 드린 것으로 기록하였으나, 그 후에 이 내용은 예수님의 뜻이 저에게 전달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013.7.29.(월) 오전 6시 성 마태오 성당 미사에 참석하였을 때에, 틈새 기도, 영성체 후 기도를 예수님께서 받아 주시지 않았던 것은, 이 못난 작은이가 이장을 고소하는 쪽으로 생각을 점점 굳혀 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후에 깨달았습니다. 이일에 처음부터 깊숙이 관여하여 이장과 대화도 많이 나누었던 저의 친척(저는 천사같이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역시 고소하지 않으면 내년 농사도 못 짓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여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읽은 마태오의 복음서 제18장 15~22절 에서 예수님께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에서 고향 사람 형제를 고소한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흔 번이라도 설득시켜 반성하도록 하여 앞으로는 방해를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 옳습니다.

 

이 마태오의 복음서 제18장 15~22절은 전에도 여러 번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이 의미를 이처럼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미사 전에 20분 간 여유가 있어 깊이 생각하며 읽고 깨달은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못난 작은이가 읽도록 인도하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참고로 후에 확인해 보니, 오늘 8월 2일의 매일미사 복음은 마태오 복음 13장 54~58절까지입니다.)

 

성체 축성문을 사제께서 기도하시는 말씀(미사통상문)을 들으며, 틈새 기도를 드릴 때에도 감응을 주셨고, 주님의 기도에서 저의 기도내용(천상의 책에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내용)에서도 감응을 주신다고 느꼈습니다.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영성체 후 기도

 

흠숭하올 예수 그리스도님, 어제 8월 1일 새벽미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밤늦게 까지 이삿짐 정리를 했다는 핑계보다는, 구미동 성당에서는 새벽미사가 있다는 것을 며칠 전 인터넷 검색으로 알고는 있었으나, 기억이 희미하고, 택시를 타고 가면 가능하다는 생각을 미처 못 하여 참석을 못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마태오 복음 18장 15~22절을 이 못난 작은이가 읽도록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향 농촌 분들은 순박하신 분들이므로, 만약 악을 저지른다면, 지식 부족으로 판단을 잘못하여 저지르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악에 빠지지 않으려면, 인간 생활 에서도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물며,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을 목표를 세웠다면, 하느님 뜻에 관한 지식을 가능한 한 많이 소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다시 깨달았습니다.

 

천상의 책 등 루이사 피카레타께서 쓰신 책 모두를 정독을 하고 묵상하고 기도를 드려 지식을 소유하고 깨닫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아멘.

 

크게 머리를 숙이고 ,엎드려 절하는 것을 상상하며,

 

흠숭하올 성부님, 인성과 신성을 겸비하신 성자 예수그리스도님, 성령님, 오늘도 이 못난 작은이에게 깨달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찬미와 영광 받으시옵소서.

이 부족한 작은이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께 맡기(의탁)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머리를 들고 기도의 창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한 후에 아멘, 아멘, 아아아아멘. 소리 없이 마음속으로 하였습니다.

 

영광송을 하고 눈을 떴습니다. 감실을 바라보고 성호경을 하고 ‘감실에 계신 성체 예수님, 오늘도, 인간생활이나 하느님 뜻 안에서의 생활 모두, 지식이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흠숭하올 성체 예수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일어나 90도로 절하고, 다시 성당 출구에서 감실을 바라보고 90도로 절을 하고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