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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방

✺십자고상과 성체성사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랑' 묵상기도에서 울음을 주십니다.

 

✺십자고상과 성체성사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랑' 묵상기도에서 울음을 주십니다

 

2014.1.26(화) 집에서 오전 6시 40분부터 7시 20분까지 40분간 기도

 

성호경을 하고

 

흠숭하올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 책을 읽겠습니다. 정신을 집중하여 읽겠습니다. 깨달음을 주시옵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제23시간 돌아가신 후 창에 찔리시고 십자가에서 내려지신 예수님’을 읽는데 집중이 잘 안됩니다.

눈을 감고 묵상을 시작하였습니다.

 

죽전성당 십자고상은 제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 중에서, 예수님께서 고통 받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모습을 가장 실감나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배경조명도 아주 잘 조화를 이룹니다.

 

 

십자고상을 바라보는 이 못난 작은이의 마음에 지난번 기도로 알려주신 내용에 이어, 변화(깨달음)가 있어야 하는 데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 지상에 살고 있는 70억 인간들은 아담의 후손들입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70억이지만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하나의 인간입니다. 하느님은 이 하나인 전체 70억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하느님처럼 한 번에 전체 70억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담이 악에 물든 이후에 점점 더 악의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는 인간들을 불쌍하게 여기시어, 악에서 구원하시려고 성부께서 성자를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보내셨는데, 간악(奸惡)한 인간들이 온갖 고통을 다 겪게 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용서하시어 보속하셨고, 성부께서도 그 용서를 받아 주셨습니다.

 

왜 이런 잔인하고 잔학한 과정들을 인간들에게 보여 주시어야 만 하셨습니까?

하느님 뜻의 지고하고 지극하신 사랑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이런 끔직한 십자가 죽음을 인간들에게 보여 주셨습니까?

 

구약성서에도 부족 간에 전쟁을 하면 상대방을 완전히 전멸시키는 내용이 나옵니다.(사무엘기 상권15장 18-20절)

악이 극도로 잔인하여져서, 먹고살기 위해서는 농지를 넓히고 농작물 재배기술을 개발하여 수확을 늘리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이웃 부족을 죽여 농지를 빼앗고 전리품으로 호의 호식하는 전쟁의 악습이 지속되어 왔습니다.

 

평화는 선에서 오고 전쟁은 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악의 뿌리가 깊어졌습니다. 악이 극에 달하여, 인간들을 선으로 되돌리고 사랑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성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는 극약처방을 택하셨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당에는 십자고상을 제대 뒤 중앙에 설치하여, 신자들이 보고 반성하여 악에서 벗어나 선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성체성사를 제정하시어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당초에 아담을 창조하면서 주시었던 영원하고 순수한 사랑의 생명과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사랑으로 창조하신 그 사랑을 신자들에게 부어 넣어 주시기를 2,000년 가까이 항구하게 계속하여 오고 계십니다.

 

지고하고 지극한 인간 사랑이십니다. 사랑과 선을 회복하여 주시려고 무진 애를 쓰고 계십니다.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부께서는 하느님 뜻의 사랑을 우주 만물과 인간에게 부어넣어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을 주시는 것으로 창조를 하셨으므로,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서로 사랑하여야 빛을 발합니다.

 

악에 물들지 않은 조물(자연)을 사랑하면, 사랑은 주는 것이므로, 조물은 즉시 인간에게 사랑을 주어, 인간들이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악에 물든 인간들이 서로 사랑할 때에,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는 경계(警戒)하는 마음부터 생깁니다. 바로 즐거움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고통의 과정을 거쳐서 즐거움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이 이처럼 무섭습니다.

 

예수님께서 온갖 고통을 겪으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고통을 귀감삼아, 고통을 각오하고 서로 사랑하여야합니다. 그래야만 수천 년(육천년?)동안 뿌리 깊이 박혀온 인간들 안에 있는 악을 없앨 수 있습니다.

 

고통 없이는 악을 없앨 수 없습니다. 십자고상은, 자기를 사랑하지만 말고 자기를 비우고,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악의 뿌리가 깊으므로 고통이 없는 사랑으로는 악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고통을 두려워말고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두 손으로 얼굴을 싸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오! 지고하시고 지극하신 사랑으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감사합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들이 하느님 뜻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아담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어 악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하셨고, 경험을 하여야만 온전히 하느님 뜻의 지고한 사랑과 선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인간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하여 이런 과정을 겪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지고하신 의지와 사랑에 감복(感服)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흠숭합니다.

 

영광이여, 사랑이신 우리 주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다시 흐느껴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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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전성당 십자고상 (조명의 일부를 끈 상태에서 촬영하여 좀 어둡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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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5. 오전 6시 30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 부록1을 읽었습니다. 아래 11.항을읽으면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은 1914년경에 루이사 피카레타가 집필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 604 ‘모든 것이 너희에게 계시되었다.’ 1997년 12월 31일에 스테파노 곱비 신부가 성모 마리아의 말씀을 받아 쓴 것입니다.(아래에 스캔 복사하여 올렸습니다.) 83년간의 차이, 둘 다 1900년대에 쓴 것입니다.

 

이글에 ‘곧 끝나려하는 너희의 이 세기는 나의 원수에게 허락된 강력한 권세의 표징 아래 놓여 있다.’ ‘원수에게 허락된’ 저는 이 허락을 성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해석합니다.

 

악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때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루이사를 선택하시어 쓰신 ‘천상의 책’이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  책 등은 악이 마지막으로 끝나는 때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신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입니다.

 

‘지고한 피앗의 승리’ 풀이하면 성부 하느님께서 ‘피앗’을 발하시어, 두 번 다시 인간들이 아담처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이 승리를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는다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천상의 책 20권 19장 1926년 11월 12일 22절'에서 말씀  하시었습니다. (이 블로그 '지고한 피앗’의 승리가 ‘구원의 나라’를 완성하는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 말씀' 2013.7.20.참조)

 

 

 

 

천상의 책 제11권 143장 1917년 2월 2일

 

이 세상이 마음의 평형을 잃게 된 까닭은

주님 수난에 대한 생각을 잃었기 때문이다.

 

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다가 나 자신의 바깥에 나가 있음을 알았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피를 뚝뚝 흘리시며 끔찍한 가시관을 쓰고 계셨다. 눈을 찌르는 가시들 사이로 간신히 나를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2. “딸아, 이 세상이 마음의 평형을 잃게 된 것은 내 수난에 대한 생각을 잃었기 때문이다.

 

3. 어둠 속에서, 세상은 자기를 비추어 줄 내 수난의 빛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이 빛을 찾아내었더라면 나의 사랑을 알려 주고 영혼들을 구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게 했는지를 알려 주었을 것이니, 세상이 자기를 참으로 사랑한 분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내 수난의 빛이 세상을 인도하면서 모든 위험에서 지켜 주었을 것이다.

 

4. 나약함 속에서, 세상은 자기를 떠받쳐 주었을 내 수난의 힘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참을성 없음 속에서, 세상은 자기에게 평온과 고요한 자기 포기의 정신을 불어넣었을 내 참을성의 모범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찾아내었더라면 내 참을성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자기 지배를 마땅한 의무로 여겼을 것이다.

 

5. 고통 속에서, 세상은 고통을 지탱해 주며 고통에 대한 사랑을 불어넣어 주었을 하느님 고통의 위로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죄 속에서, 세상은 그것과 마주 서서 그 안에 죄에 대한 증오를 불어넣었을 나의 거룩함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6. 아! 인간은 이렇듯 모든 것을 악용했다. 모든 것 속에서 자기를 도울 수 있는 분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세상이 평형을 잃은 것이다.

 

7. 그것은 마치 더 이상 제 어머니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와 같이, 또는 스승을 부인하며 더 이상 그의 가르침을 듣거나 교훈을 배워 익히려고하지 않는 제자와 같이 굴었다. 그런 아이와 제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겠느냐?

 

8. 그들은 그들 자신의 고통이 될 것이고, 사회의 공포와 고통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인간이 공포와 고통이, 그것도 동정의 여지조차 없는 고통이 되고 만 것이다.

 

9. 아, 갈수록 더욱 악화되고 있는 인간 - 이 인간을 내가 피눈물을 흘리며 통탄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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