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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방

◆하느님 뜻의 태양-해-이 가지신 충만성 과 신적 충만에 대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느님 뜻의 태양-해-이 가지신 충만성 과 신적 충만에 대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2014.3.27(목) 오후 1시 30분 점심 식사 후 기도에서

 

천상의 책 제19권 19장 1926년 5월 10일, 20절에서 ‘딸아, 피조물이 내 뜻 안에서 하는 기도사랑활동은 참으로 아름답다! 피조물의 행위들에 모든 신적 충만이 가득하고, ....’ 피조물의 행위들에 모든 신적 충만이 가득한 것은, 피조물의 반복적인 기도와 사랑과 활동으로 얻어지는 것인 줄 알고 기도를 드리자 머리가 아파옵니다.

 

24절 ‘내 뜻의 태양이 그 충만성을 가지고 영혼을 다스릴 때에는 이 뜻의 빛이 모든 곳에, 곧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의 마음과 정신 안에 스며든다.’ 가 기억에 떠오릅니다. ‘창조주 성부 하느님 뜻의 태양이 충만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뜻의 태양 빛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의 마음과 정신에 스며들고, 높이 솟아올라 모든 조물들 태양과 별들과 하늘에게도 창조주 하느님 뜻의 빛이 입맞춤을 주십니다.’

 

기도의 창이 파란색으로 바뀌면서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기억이 완전치 않지만 기도를 계속하였습니다. ‘하느님 뜻의 태양-해-은 모든 조물 안에 남아 있으시면서,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과 여왕 성모님까지도 전부 감싸십니다. 하느님 뜻의 태양은 아무 것도 떠나지 않고, 모든 것을 데려와 함께 있을 수 있으십니다. 하느님 뜻의 태양의 충만성은 이처럼 큽니다.’

 

기도를 마쳤습니다.

 

위의 말씀에서 ‘신적 충만’은 하느님 뜻의 태양-해-이 주시는 것이지 인간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식사 후 기도가 부담스러웠으나 이제 부담에서 헤어나기 시작합니다.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의문점을 해소해주시는 창조주 성부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전에는 식사 후 기도는 식후에 바로 드렸으나 지금은 식사 후에 여유를 가지고 생각도 하고, 기도드릴 내용의 천상의 책도 읽은 후에 기도를 드립니다.

 

아무래도 가장 높으신 창조주 성부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므로 기도 전에는 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합장을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성호경을 하고 ‘흠숭하올 창조주 성부 하느님’, 또는 ‘전능하신 창조주 성부 하느님’, 시작하면 바로 심장 박동이 고동치기 시작합니다. 기도가 끝나고 난 후에도 고동이 멈추지 않으므로 고동이 멈출 때가지 기도를 끝내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여, '성부 하느님'을 되풀이 반복하여 부르거나  침묵을 오래 지속시킨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녁에 식사 후에 성당에 갈 시간이 다가오거나, 기도드릴 말씀이 더 이상 없으면 심장이 고동치더라도 어제부터 기도를 끝냈습니다. 이처럼 심장 박동이 고동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늘려주시는 배려를 베푸시는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을 해봅니다.

 

고동치는 시간이 길수록 하느님 뜻의 생명을 제안에 더 많이 부어 넣어 주시거나, 제안에서 하느님 뜻의 거룩한 생명을 창조하시는 것(천상의 책 제 19권 19장 13절)일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너무나 큰 배려이며, 큰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직 저의 생각이 맞거나 옳은 것인지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또는 성령님께서 심장 박동이 고동치게 하여 주신다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성화사업은 성령님에게 위임하셨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화사업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나라‘에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천상의 책에 쓰여있는 예수님이 만드신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루이사 피카레타를 선택하시어, 프로그램 순서대로 실행하여 성화시키시었습니다. 성모 마리아와 같은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 되셨습니다. 이 못난 작은이는 ’하느님 뜻 안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초보 단계의 성화사업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 기도를 드려오다가 성부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데 오히려 예수님보다 더 배려를 해 주시는 것 같아 부담스럽습니다. 성령님께서 창조주 하느님의 심장 박동이 제 심장 박동 안에서 고동치게 해 주시는 것이 맞았으면 좀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