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성부 하느님 뜻만이 소유하신 참된 선의 본성을 받기를 청하는 기도◆
2014. 6.19(목 )집에서 아침 식사 후 오전 9시 22분부터 15분간 기도
흠숭하올 창조주 성부 하느님,
이 못난 작은이의 심장 박동 안에서
창조주 성부 하느님의 심장 박동이
기도드릴 때마다, 천상의 책을 읽고
하느님 뜻에 대하여 깊은 묵상을 할
때, 성당 미사통상문 기도와 다른
모든 기도, 성가합창에서도
고동쳐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창조주 성부하느님,
하느님 뜻의 태양빛이 주시는
신적생명을 저에게 계속 주시어
변화된 모습으로 차츰 바꾸어 주시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립니다.
덕분으로 이 못난 작은이는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 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더욱 굳건하게 하면서
기도, 사랑, 감사하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외람되이 청하오니
창조주 성부 하느님 뜻만이
소유하시는 참된 선(善)의 본성을이 못난 작은이에게도 베풀어 주시옵소서.
참된 선의 본성의 특성에 대하여
루이사에게 말씀하여 주신 내용을
천상의 책에서 읽고 묵상하였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으므로, 언제나 똑 같고
언제나 가득 차 있고
언제나 안정감이 있으며
어떤 변화도 타지 않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영혼이 지고하신 창조주 성부하느님 뜻 안에 들오게 하는 모든 것, 곧 너의 사랑, 너의 기도, 너의 감사 및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곧 이 하느님 뜻 안에서 영혼이 행한 모든 행위는
참된 선의 본성을 획득한다. 그 이유는 그 모든 행위가, 영원하며 헤아릴 수 없는 선들을 내포하고 있는 하느님 뜻 안에서, 안정적이고 확고부동한 이 뜻 안에서 수행되었기 때문이다. 너의 사랑, 너의 기도, 너의 감사 및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결코 끝나지 않는 영원한 시작 안에 자리를 잡았기에,선 고유의 본성인 완전 충만을 얻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못난 작은이의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 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보시고
하느님 뜻 안으로 들어가게 하여주시어
저의 기도가,
영원하며 헤아릴 수 없는
선들을 내포하고 계신 하느님 뜻 안에서
안정적이고 확고부동한 하느님 뜻 안에서 수행되어,
하느님 뜻의 참된 선의 본성을 조금 씩이라도 얻는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악의 유혹으로
하느님 뜻에서 벗어나 잃어버렸던 하느님 뜻의
참된 선의 본성을 되돌려 받기를 원하나이다.
선에서 멀어지고 악에 물들어 버린 이 못난 작은이는
하느님 뜻 안에서 산다고 하면서도 선의 모습이
상상으로 떠올려지지가 않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천상의 책에서 말씀하시기를
‘참된 선의 본성은 시작도 끝도 없으므로
시작이 있는 피조물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구나, ‘하느님 뜻의 창조력은 내 뜻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내 뜻의 본성이 통하게 하여
그들을 내 뜻 자신의 행위로 바꾼다.
왜냐하면 내 뜻은 그 자신의 행위와는 다른 행위들을
자기 안에 지니는 것을 못 견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뜻 안에서 수행되는 피조물의 행위는
하느님의 측량할 길 없는 신비 안으로 들어가고, 따라서 아무도 그 수없이 많은 효과를 다 알 수 없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못난 작은이가 하느님 뜻 안에서
수행하는 행위의 효과 내지는 결과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니,변화시켜주시는 모습에서 스스로가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뜻만이 영혼을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자라나게 할 수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 이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 뜻만이 소유한,
‘참된 선의 본성’을 받기를 청하면서도 두렵습니다. 이멘.
영광이
지고하시고 거룩하신 ‘피앗’이시며 하느님 뜻의 태양이시고
시작도 끝도 없는 수없이 많은 효과를 주시는 참된 선의 본성이시며
지극하신 사랑이시고 거룩하신 생명이신 창조주 성부 하느님께,
인성과 신성을 겸비하신 예수님께서
성모님과 함께 인간 구원사업을 수행하시면서
루이사를 택하시어 그를 키우시고 성화시키시어
성화사업은 성령님에게 위임하여
성부님 성자님 루이사님의 뜻을 수행하시도록 하시고
창조사업과 구원사업과 성화사업을 단일한 행위로 이루시어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나라를 이룩하시는
‘지고한 성부하느님의 피앗의 승리’를
얻어 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
이 못난 작은이를 선택하시어 기도에 눈물감응과 느낌을
주시어 확고한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으로 성삼위
하느님을 흠숭하고 찬양하고 사랑하고 감사할 줄 알게
인도하여주시며, 제안에 머무르시어 성화사업의 은혜를
받도록 가까이서 보살펴 주시는 성령님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눈물이 맺힙니다.)
(머리를 깊숙하게 숙이고)
봉헌 기도
흠숭하올 창조주 성부하느님,
이 못난 작은이의 청원기도를 들으시고
신적 생명을 주시어 그 것이 저의 몸과 영혼 안에서
성장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성장하고 있는 저를 창조주 성부하느님께
봉헌합니다. 바칩니다. 맡깁니다. 받아 주시옵소서. 아멘.
고개를 들고 기도의 창을 응시합니다.
하느님 뜻의 작은 딸이시며
하느님 뜻의 자녀세대의 어머니이신
루이사 피카레타님,
루이사님의 인내와 순명과 항구하심으로 고통을 이기시고
말씀을 받아쓰시고, 루이사님의 영적 성장 내용을 간략하게 쓰신
천상의 책을 읽고 묵상하면서 갈수록 어려워지는
하느님 뜻의 지식들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루이사님을 따르겠습니다. 점점 말씀들을 이해하기 어려워지지만
루이사님을 생각하면서, 사랑하면서, 그 사랑으로 극복하겠습니다
.
루이사님, 보살펴주시고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찬미와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성호경을 하고 눈을 뜹니다.
(눈에 고였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
아래에 '천상의 책 제19권 52장 1926년 8월 29일, 요약 및 풀이한 내용' 을 첨부합니다.
천상의 책 제19권 52장 1926년 8월 29일, 요약 및 풀이한 내용2014.6.18.(수) 작성
하느님의 뜻만이 참된 선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 ‘나는 네가 언제나 내 뜻 안에 있기를 바란다. 내 뜻 안에 선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선이 절대로 끝나지 않을 때, 그러니 시작도 끝도 없는 선일 때, 그때에만 비로소 참다운 선이라 할 수 있다.’
선의 특성
1. 시작도 끝도 없으므로, 언제나 똑같고2. 언제나 충만하고,3. 언제나 안정감이 있으며,4. 어떤 변화도 타지 않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영혼이 지고하신 뜻 안에 들어오게 하는 모든 것,(너의 사랑, 너의 기도, 너의 감사 및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1. 이 지고하신 뜻 안에서 영혼이 행한 모든 행위는 참된 선의 본성을 획득한다.2. 그 이유는 그것이-그 모든 행위가, 영원하며 헤아릴 수 없는 선들을 내포하고 있는 하느님 뜻 안에서, 3. 안정적이고 확고부동한 이 뜻 안에서 수행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 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한 사람은 너의 사랑, 너의 기도, 너의 감사 및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하느님 뜻 안에서 수행 된다고 제가 해석하여 봅니다.) 너의 사랑, 너의 기도, 너의 감사 및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1. 결코 끝나지 않는 영원한 시작 안에 자리를 잡았기에,2. 선 고유의 본성인 완전 충만을 얻는 것이다.
너의 기도는
1. 풍부한 가치와2. 완전한 효과를 거두면서,3. 너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곳까지 그 열매와 선익이 널리 퍼져 나간다.4. 그것은 영원토록 두루 돌아다니며 모든 이에게 그 자신을 주겠지만,5. 동시에 그 효과가 항상 완전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너의 사랑도
1. 참사랑의 본성을 획득한다.2. 그것은 결코 쇠진(衰盡)하지도3.끝나지도 않는 4.확고부동한 사랑이요.5.모든 이를 사랑하고6. 모든 이에게 자신을 내어 주지만 7. 언제나 참사랑의 본성적 선이 완전하게 남아 있는 사랑이다.(너의 기도와 사랑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도 그렇다.
하느님 뜻의 창조력은
내 뜻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내 뜻의 본성이 통하게 하여 그들을 내 뜻 자신의 행위로 바꾼다. 1. 왜냐하면 내 뜻은 그 자신의 행위와는 다른 행위들을 자기 안에 지니는 것을 못 견디기 때문이다.2. 그러므로 내 뜻 안에서 수행되는 피조물의 행위는 하느님의 측량할 길 없는(신비) 안으로 들어가고, 3. 따라서 아무도 그 수없이 많은 효과를 다 알 수가 없다.4.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은, 시작이 있는 피조물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5. 그들 가운데는 시작이 없는 행위를 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6.신적인 모든 것과 내 뜻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그들의 통찰과 이해를 벗어나는 것이다.
창조 때의 선의 본성으로 되돌려 받음
1.그러니 보아라, 위대한 선 곧 내 뜻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 피조물을 얼마나 높은 위치에 들어 올리는지.2. 그리하여 피조물이 창조주의 배 속에서 나왔을 때와 똑 같은 선의 본성을 어떻게 되돌려 받는지를 보아라.(선의 본성을 되돌려 받기위하여 반드시 실천해야 할 기도, 사랑, 감사, 및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느님 뜻 안에서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이처럼 놀라운 효과를 주십니다. 놀라운 하느님 뜻의 지식을 알려주십니다.)나의 뜻만이 영혼을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자라나게 할 수 있다.--------------------------------------------------------------------------
2014. 6.17(화) 오전 10시 죽전성당 미사 참례
입당성가 가톨릭 성가 46번 ‘사랑의 송가’를 합창할 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고린도 1서 13장 내용을 성가로 만든 것이라 성경을 찾아서 다시 깊이 되새겨 읽었습니다.
모든 말은 사랑이 실려 있는 말로 하여야 하고 ‘사랑의 언어’로 말하여야 합니다.
실제로 실천하려면 정말 어렵습니다.
이 못난 작은이의 생각은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자유의지로 악에 물들어 버려, 참된 선(善)의 으뜸인 사랑을 잊어버리고 살아 온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악에 속하는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교만과 오만과 격정(激情-fury)을 더 가까이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아래에 악보와 고린도 1서 13장의 일부를 스캔 복사하여 올립니다.
2014. 6. 18(수) 오전 10시 하늘의 문 성당 미시 참례
사제 윤민재(1994년 사제 서품)신부님께서 치유은사를 받으신 분임을 지난해부터 들어 알면서도 가보지 못하다가, 더구나 최근에 평화방송 밑줄 자막 소식에서 윤민재 신부님의 성함을 자주 보게 되어, 모처럼 참례를 하였습니다.
저를 성령님으로부터 선택을 받게 하여주신 중개자 김정희 에프렘 수녀님도, 치유은사를 받으신 분이기 때문에, 꼭 윤민재 사제신부님 미사에 참례하고 싶었습니다.
미사 입당성가 봉헌 성가 파견성가를 기도공동체 성가로 합창을 하여 오래간만에 기도공동체 성가를 불러보는 기쁨으로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봉헌성가로 기도공동체 성가 618 ‘내 생애의 모든 것’을 합창을 할 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디에 앉아 있어도 당신 알고 계시며’부터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 성당에 와서 앉아 있는 것을 성부하느님께서 알고 계시다.’ 이 그이하의 가사 내용도 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니 더 감격하였습니다.
저의 심장 박동 안에서 창조주 성부 하느님의 심장 박동이 고동쳐주시고, 눈물을 흘리는 감응도 주시니 두 배로 감사합니다.
성가가 이처럼 중요합니다. 이 성가는 성령세미나에 참석하여 처음 합창을 따라한 이후부터 기억에 남는 성가였습니다.
오늘 강론에서 바다와 강물을 갈라지게 한 분은 모세(홍해)를 비롯하여 모세의 제자 여호수아(요단강), 그리고 엘리야(요단강) 세분이라는 말씀을 하여 주셨습니다.
-------------------------------------------------------------------------------------
천상의 책 19권 52장 1926년 8월 29일
오직 지고하신 뜻만이 참된 선의 본성을 지닌다.
당신 뜻에 대한 글과 그 제목을 축복하신 예수님.
1. 나의 빈약한 정신은 언제나 하느님의 영원하신 뜻의 지고한 중심으로 돌아오곤 한다. 이따금 다른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 말씀으로 내 주의를 끄시어,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뜻의 끝없는 바다를 횡단하게 하신다.
2. 그러므로 (얼마 전에도) 내가 딴 생각을 하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경계하시려는 듯 나를 꼭 끌어안고 이르셨다. “딸아, 나는 네가 언제나 내 뜻 안에 있기를 바란다. 내 뜻 안에 선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선이 절대로 끝나지 않을 때, 그러니 시작도 끝도 없는 선일 때, 그때에만 비로소 참다운 선이라고 할 수 있다.
3. 하나의 선이 그 시작과 끝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쓰디쓴 괴로움과 두려움과 불안, 또한 환멸이 가득한 선이다. 이 모든 것이 선 그 자체를 나쁘게 만든다. 그러므로 사람은 흔히 부(富)라는 선에서 곤궁으로, 행운에서 불운으로, 건강에서 질병으로 옮겨가기 십상이다. 시작이 있는 선은 불안정하고 덧없고 수명이 짧으며, 결국 무위로 끝나기 때문이다.
4. 오직 내 뜻만이 참된 선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 시작도 끝도 없으므로, 그 선이 언제나 똑같고 언제나 충만하고 언제나 안정감이 있으며, 어떤 변화도 타지 않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영혼이 지고하신 뜻 안에 들어오게 하는 모든 것, 곧 이 뜻 안에서 영혼이 행한 모든 행위는 참된 선의 본성을 획득한다. 그것이 영원하며 헤아릴 수 없는 선들을 내포하고 있는 하느님의 뜻 안에서, 안정적이고 확고부동한 이 뜻 안에서 수행되었기 때문이다.
5. 너의 사랑, 너의 기도, 너의 감사 및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결코 끝나지 않는 영원한 시작 안에 자리를 잡았기에, 선 고유의 본성인 완전 충만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의 기도는 풍부한 가치와 완전한 효과를 거두면서, 너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곳까지 그 열매와 선익이 널리 퍼져 나간다. 그것은 영원토록 두루 돌아다니며 모든 이에게 그 자신을 주겠지만, 동시에 그 효과가 항상 완전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6. 또 너의 사랑도 참사랑의 본성을 획득한다. 그것은 결코 쇠진하지도 끝나지도 않는 확고부동한 사랑이요, 모든 이를 사랑하고 모든 이에게 자신을 내어 주지만 언제나 참사랑의 본성적 선이 완전하게 남아 있는 사랑이다. (너의 기도와 사랑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도 그렇다.
7. 내 뜻의 창조력은 내 뜻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내 뜻의 본성이 통하게 하여 그들을 내 뜻 자신의 행위로 바꾼다. 왜냐하면 내 뜻은 그 자신의 행위와는 다른 행위들을 자기 안에 지니는 것을 못 견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뜻 안에서 수행되는 피조물의 행위는 하느님의 측량할 길 없는 (신비) 안으로 들어가고, 따라서 아무도 그 수없이 많은 효과를 다 알 수가 없다.
8.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은, 시작이 있는 피조물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시작이 없는 행위를 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신적인 모든 것과 내 뜻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그들의 통찰과 이해를 벗어나는 것이다.
9. 그러니 보아라. 위대한 선 곧 내 뜻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 피조물을 얼마나 높은 위치에 들어 올리는지, 그리하여 피조물이 창조주의 배속에서 나왔을 때와 똑같은 선의 본성을 어떻게 되돌려 받는지 보아라.
10. 그와 반대로, 내 뜻의 밖에서 행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비록 그것이 선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참된 선이라고 불릴 수 없다. 무엇보다도 신적인 양식과 그 빛이 없어서 이 행위들은 나의 것과 다르고, 따라서 영혼에게서 하느님의 모상을 앗아 가기 때문이다.
11. 사실 나의 뜻만이 영혼을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자라나게 할 수 있다. 내 뜻이 제거되면 가장 좋은 것이, 곧 인간 행위의 가장 위대한 가치가 제거된다. 따라서 본질이 비어 있고, 생명도 가치도 보상도 없는 행위가 되어, 더할 수 없이 튼튼한 사람의 손발도 지치게 한다.
12. 오! 내 뜻 안에서 활동하는 것과 내 뜻 밖에서 활동하는 것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그러니 너는 주의하여, 내가 내 행위와 같지 않은 행위를 단 하나라도 네 안에서 보는 비통을 느끼지 않게 해 다오.”
13. 그 후 그분은 사라지셨다. 하지만 조금 뒤에 다시 오셨다. 쏟아지는 모욕들 때문에 편히 쉬실 수 없어진 듯, 내 안에 피신하여 안식을 취하고자 하신 것이다. 나는 그래서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14. “저의 사랑이시여, 드릴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당신과 저 사이에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저는 당신의 뜻이 알려지고 당신 뜻의 나라가 완전한 승리를 거두도록 당신께 간청해야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당신께서 쉬시면 저는 아무 말씀도 드릴 수 없습니다. 쉬시도록,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합니다.”
15. 그러자 예수님은 내 말을 가로막으셨다. 형언할 수 없도록 다정하게 나를 붙안으시며 입을 맞추시고 이르시기를, “딸아, 너의 입술에 지고하신 뜻의 나라의 승리를 간청한다는 말이 떠올라 있으니 여간 아름답지 않구나!” 하셨다.” 그것은 바로 내 간청의 메아리요, 내 탄식의, 내 모든 활동의 메아리다. 지금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내 뜻에 대한 글에 붙여진 제목에 대하여 내가 쓴 대목이다.”
16. 그러면서 그분은 이 일기장을 손에 드시고 바로 앞의 일기를, 그러니까 8월 27일에 내가 쓴 글을 읽으시는 것 같았다. 생각에 잠겨 읽고 계셨는데, 너무나 깊이 잠겨 계신 모습이어서 나는 입을 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다만 그분의 심장이 곧 폭발이라도 할 듯 세차게, 매우 세차게 뛰는 소리만이 들렸다.
17. 그때 그분은 일기장을 당신 가슴에 붙여 드시고, “나는 이 제목을 축복한다. 진심으로 축복한다. 그리고 내 뜻에 관한 모든 말을 축복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올리시고 매혹적인 위엄을 떨치시며 축복 말씀을 발하셨다. 그런 다음 모습을 감추셨다.
Book of Heaven Volume 19 August 29, 1926
Only the Supreme Will possesses the nature of true good. Blessing of Jesus of the title to be given to the Writings about His Most Holy Will.
My poor mind is always returning to the supreme center of the Eternal Will; and if sometimes I think about something else, Jesus Himself, with a speaking of His, calls my attention to crossing the unending sea of His Most Holy Will. So, since I was thinking about something else, my sweet Jesus, jealous, clasped me to Himself and told me: “My daughter, always in my Will do I want you, because in It is the nature of good. only when a good never ends and has no beginning and no end, then can it be called true good. When it has its beginning and its end, a good is full of bitternesses, of fear, of anxiety, and also of disillusion. All this renders good itself unhappy, and many times one passes easily from the good of riches to miseries, from fortune to misfortune, from health to sickness, because all the goods that have a beginning are unstable, fleeting, short-lived, and end up in nothing.
It is my Supreme Will that possesses the nature of true good, because It has no beginning and no end, and therefore Its good is always the same, always full, always stable, not subject to any change. This is why all that the soul makes enter into the Supreme Will - all of her acts formed in It - acquire the nature of true good: because they are done in a stable, immovable Will, which contains eternal and immeasurable goods. So, your love, your prayer, your thanksgivings and everything you can do, take their place in an eternal beginning that never ends, and therefore acquire the fullness of the nature of good. So, your prayer acquires full value and complete fruit, in such a way that you yourself will not be able to comprehend where the fruits and the goods of your prayer will extend. It will go around throughout eternity, it will give itself to all, and at the same time it will remain always full in its effects. Your love acquires the nature of true love – of that unshakeable love that never fails, that never ends, that loves all, gives itself to all, and remains always with the fullness of good of the nature of true love; and so with all the rest.
To everything that enters into my Will, the creative power of my Will communicates Its own nature and converts it into Its own acts, because It does not tolerate having within Itself acts dissimilar from Its own.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the acts of the creature done in my Will enter the inscrutable ways of God, nor can anyone know all of their innumerable effects. That which has no beginning and no end renders itself incomprehensible to created minds, which have a beginning, because since the power of an act that has no beginning is missing in them, all the divine things and everything that enters my Will render themselves impenetrable and inscrutable. See then, the great good of operating in my Will – to what high place it raises the creature, how she is given back the nature of good, just as she was delivered from the womb of her Creator. on the other hand, anything that can be done outside of my Will, be it even good, cannot be called true good – first of all, because the divine nourishment and its light are missing, and these acts are dissimilar from my acts, taking away from the soul the likeness of the divine image. In fact, it is my Will alone that makes her grow in my likeness; once my Will is removed, the best is removed – the greatest value of the human works. Therefore those are works emptied of substance, of life and of value – they are like plants without fruit, food without substance, statues without life, works without retribution, which tire the limbs of the strongest. Oh! how great is the difference between operating in my Will and operating without It. Therefore, be attentive, and do not give Me this sorrow of making Me see even one act in you which does not give of my likeness.”
After this, He disappeared, but He came back a little later, as though restless because of offenses received. Taking refuge in me, He wanted to take rest, and I said to Him: ‘My Love, I have many things to tell You – many things to establish between You and me; I must ask of You that your Will be known and that Its Kingdom have Its full triumph. If You rest, I cannot tell You anything – I must be silent to let You rest.’ And Jesus, interrupting my speaking, with unspeakable tenderness pressed me so very tightly to Himself, and kissing me told me: “My daughter, how beautiful on your lips is the prayer for the triumph of the Kingdom of the Supreme Will. It is the echo of my own prayer, of my sighs and of all my works. Now I want to see what you wrote about the title to be given to the writings about my Will.” And as He was saying this, He took this book in His hands, and He seemed to be reading what is written on August 27. As He was reading, He remained pensive, as though placing Himself in profound contemplation, in such a way that I did not dare to tell Him anything; I could only hear that His Heart was beating very, very strongly, almost wanting to explode. Then He pressed the book to His breast, saying: “I bless this title – I bless it from my Heart, and I bless all the words that regard my Will.” And raising His right hand, with enchanting majesty, He pronounced the words of the blessing. Having done this, He disappeared.
---------------------------------------------
'사랑의 송가' 동영상을 아래 youtube 주소를 클릭하여 들으세요.
http://www.youtube.com/watch?v=Tqzde8Z7EWk
-----------------------------------------------------------------------------------------------
'종교의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의 기억 지성 의지 능력이, 성삼위 하느님과 조화와 질서를 이루는 묵상과 기도에 눈물감응◆ (0) | 2014.06.22 |
---|---|
‘천상의 책 제19권 46장 1926년 8월 12일’에서 말씀하신 조화와 질서에 대하여 (0) | 2014.06.21 |
◆하느님 뜻의 참된 선의 본성을 획득하는 것을 기도의 목표로 정하였습니다. (0) | 2014.06.16 |
◆하느님 나라의 조화와 질서에 관한 묵상기도에서 눈물 펑펑 쏟음 (0) | 2014.06.11 |
◆창조주 성부하느님 뜻의 태양빛이 주시는 신적 생명이 계속 성장하여 주시도록 청하는 기도 (0) | 2014.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