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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안성맞춤박물관(유기그릇)과 죽산 칠현산의 칠장사

안성에서 같이 학교를 다닌 동기동창들의 모임에서 한 친구의 발상으로 안성의 유적지관
그리고 남사당 공연을 보기로 하고 2005년 6월11일 토요일 관광버스로 안성으로 향하
였다.

 

 

중앙대학교안성분교 입구 좌측에 있는 안성맞춤박물관에 들어섰다. 안성맞춤으로 유명한
기(놋)그릇의 역사와 제조과정 등을 자료와 다양한 모형,움직이는 모형 등을 만들어 전
시해 놓았고, 시청직원이 하루 동안 전담안내를 해주어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유기의 원산지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아랍국가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회
명권이 예전에는 선진문명권이었음을 이곳에서도 확인 하게 되었다. 아랍인들이 자
심이 강하고 유럽문명권과 지금도 충돌을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조시대에 유
가 오직 안성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 안성유기가 유명해진 이유를 나름대로 이곳
박물에서 알 수 있었다. 주물에는 사용하는 흙이 중요한데 인근 평택에서 나는 갯벌 흙
(갯토)이 가장 적한 흙이 여서 주물유기그릇을 만드는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고, 또한
개성 수원 함께 상품집산지역할을 하여 상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생산제품의 판매
에도 유리 조건을 갖 추었다.
유기그릇은 사기그릇보다 고가이므로 초기에는 주문생산형태를 유지했다. 양반계급층에
필요한 종류와 수량을 맞추었을 것이다. 양복이 맞춤 생산에서 기성복생산방식으로
바뀐 것 처럼 유기도 그러한 과정을 거쳤다. 안성유기그릇은 품질과 모양이 우수하고 뛰어
난 솜씨로 정성껏 만드는 장인정신이 수요자의 마음을 만족시켜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러나 유기의 약점은 녹이 생기며 녹을 제거하는 노력이 많이 들어 지금은 사양산업으로
전락했다. 안성남사당패에서 사용하는 괭가리 징 등은 놋쇠를 두드려서 만든 것이다. 방자
제작법(方字製作法)이다. 안성유기와 남사당패도 유기에서 상관관계를 찾을 수 있다.

 

 일주문

 대웅전

 대웅전

 
다음 목적지 죽산의 칠현산에 있는 칠장사(七長寺)로 향하였다. 칠현산(七賢山-516m)은
려때 혜소국사(慧炤國師)가 일곱명의 도적들을 가르쳐 깨달음을 얻게 하여 현인으로
만들어 칠현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죽산에서 남쪽으로 광혜원으로 가는 국도로 가다가
안성컨트리 골프장을 조금 지나 우측으로 들어섰다. 서쪽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산의 봉우
리가 아마 일곱 개인가 보다.
지금은 관광버스가 들어가지만 예전에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쳐 칠장사에 도달한 기억이
있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세가 심산유곡처럼 느껴진다.

 

 범종루

이곳은 KBS드라마 태조왕건으로 널리 알려졌다. 70세 가까이 된 이곳 유지인 자원봉사자
현지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궁예가 유모의 품에 안겨 경주에서 1,000여리나 떨어져있는
이곳으로 도망을 와 1세부터 10세까지 자랐다고 한다. 죽주 지금의 죽산의 호족(豪族)이며
장군인 기훤(箕萱)은 태조왕건 드라마에도 나온다. 궁예는 기훤의 부하장수들과 규합하여
웅지를 펴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칠장사와 죽주(지금의 죽산)는 궁예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다.
칠장사가 경주 불국사보다 먼저 세워졌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선덕여왕5년(636년)에
자장율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며, 이곳에서 수도하고 입적한 고려 때 고승 혜소국사가
현재 비각이 있는 자리에 홍제관(弘濟館)이라는 수행처를 세웠고 현종5년(1014년)에 크게
수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궁예 

임꺽정(산정호수에 있는 작품)

 

 

 

오불회괘불탱(五佛會掛佛撑)-큰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불을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
 
칠장사에는 인목대비가 쓴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대승불교 경전중의
나)”10권 1질과 자신의 한스런 심정을 토로한 시 친필족자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전해오고 있다. 조선 선조의 부인인 인목대비는 인조반정으로 복위되자
당쟁으로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을 위하여 이곳을 원찰로
삼고 자주 찾았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국보제296호인 오불회괘불탱이 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소설에는 임꺽정의 스승 갖바치(가죽신 만드는 장인)가 칠장사에
거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갖바치 역시 백정출신이지만 도력이 탁월하여 열반
에 든 후에 병해대사로 추앙받았다고 한다. 모방송국 드라마 “임꺽정”에서 칠장사에서 의
적을 훈련시키는 장면, 죽산현감을 기습하여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장면
갖바치의 활약상 등을 본 기억이 생생하다.

 

 보물제983호 석불입상

오래된 절로 단청칠이 발하여 더욱 초라해 보이고 절의 규모도 작아 역사를 모르면 보잘것
절로 보인다. 그러나 풍수지리의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를 갖추었고 가운데 뻗어 내린
산의 끝 절벽에 절을 지어 명당처럼 보인다. 대웅전 우측에 서있는 크지 않은 보물제983호
인 석불입상(죽산 장터 동쪽입구에 있는 봉업사터에서 출토)은 얼굴이 훼손되어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워 보인다. 새로 절을 지어 확장하고 탑도 만들어 세웠다. 탑은 정교하고
예술적가치도 있어 보이고 아름답다. 그러나 돌의 재질이 단단해보이지 않는다. 건물들은
평범해 보인다.

 

  새로 세운 석탑과 건물

  새로세운 탑 전경

 약수물터의 조각작품